우크라 난민돕기 팔걷은 유럽한인 재림청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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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태 기자
kbtlove@kuc.or.kr
입력 2022.05.02 0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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쉘터 자원봉사, 구호물품 운반, 위로음악회 등에 함께
이들은 현지 시각으로 21일 오후 대응팀에 합류해 3박4일 동안 현지에 머물며 쉘터(임시보호소) 자원봉사, 구호물품 포장 및 운반, 난민 위로음악회 등 다양한 활동으로 힘을 보탰다.
자동차로 각각 8시간(오스트리아)과 13시간(독일)을 걸려 아드라 원정대가 베이스캠프를 차린 폴란드의 제슈프에 도착한 이들은 “생각보다 훨씬 열악한 환경에서 생활하는 난민들의 모습에 눈물이 날 것 같다”며 “마치 캠핑을 나온 것처럼 천진난만하게 뛰노는 아이들의 모습과 부모들의 서글픈 눈망울이 교차하면서 어서 빨리 전쟁이 끝나길 기도했다”고 소감을 밝혔다.
가장 먼 거리인 독일 베를린에서 온 곽율아(별내교회 / 드레스덴대학원 피아노 전공) 자매는 “누가 가라고 권유한 것도 아닌데 소식을 듣자마자 바로 자원해 신청했다”면서 “러시아의 침공 뉴스를 접한 뒤부터 꼭 오고 싶었다”고 지원동기를 밝혔다.
이어 “그저 멀리서 매체를 통해 접한 것과는 현실이 전혀 다르다. 상황이 훨씬 더 심각하다”고 걱정하면서 “이곳에 온 후로 전쟁에 대한 인식이 완전히 달라졌다. 만약 전쟁이 없었더라면 저들은 자기 나라에서 우리처럼 평화롭고 행복하게 잘 살고 있었을 것이다. 무고한 시민들의 소중한 일상이 하루아침에 무너졌다.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난민들이 지쳐가는 모습에 가슴이 아프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가녀린 몸으로 구호물품 운반 등 여러 활동을 소화한 그는 “임시보호소에서 했던 연주회를 평생 잊지 못할 거 같다. 함께 노래를 부를 때는 잠시나마 난민들의 해맑은 미소를 볼 수 있어 행복했다. 우크라이나 국가를 부를 때 눈물을 보이는 모습에 나도 같이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큰 도움은 되지 않았겠지만, 그래도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 뿌듯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사태를 보면서 “재림이 정말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고통을 호소하는 목소리를 들으며 예수님이 빨리 오셨으면 좋겠다는 간절한 바람을 갖게 됐다”면서 “피아니스트를 꿈꾸지만, 그게 인생의 최종목표는 아니다. 하나님을 삶의 최우선 순위에 놓는 것이 더 궁극적이다. 이번 경험은 그런 생각에 더욱 확신을 갖게 했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뮌헨교회에서 온 김애련 집사는 “난민을 도울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혼자서라도 오려고 했다. 마침 아드라코리아에서 이런 자리를 마련해 주셔서 두 번 고민하지 않고 지원했다. 뮌헨에는 한인교회가 없어 평소 현지인 교회에 다니는데, 이렇게 한인 재림청년들과 뜻깊은 시간을 갖게 된 것도 기쁘다”고 인사했다.
그는 “현장에 직접 와서 보니 마음이 더 착잡해진다. 뉴스에서 볼 때와 느껴지는 체감이 훨씬 다르다”면서 “크든 작든 하나님의 사역을 위해 저마다의 자리에서 각자 할 수 있는 최선의 봉사를 하는 대원들의 모습을 보면서 감동을 받았다. 힘들었지만, 역시 오기를 잘했다”고 긍정했다.
김 집사는 “음악을 듣는 얼굴에는 잔잔한 미소를 짓고 있지만, 어두운 표정의 한편으로는 마음 깊은 곳에 여전히 남아 있는 상처와 불안이 엿보이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특히 우크라이나 국가를 불렀을 때 어른은 물론 아이들도 감격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울컥했다. 평생 잊지 못할 장면”이라고 되돌아봤다.
그는 “이곳에 오고 나서야 난민의 현실이 얼마나 지독한지 비로소 깨달았다”면서 “그들은 정말 소중한 사람이다. 예수님의 보혈로 사신 영혼이자 구원받아야 할 하나님의 자녀다. 그들을 잊지 말고, 진리와 복음을 전파해야 한다. 전쟁의 참상을 보면서 우리 삶에 진정으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본다”고 강조했다.
최연소 참가자였던 문예찬(푸랑크푸르트한인교회 / 14세) 군은 “난민들의 딱한 소식을 듣고 어떤 식으로든 돕고 싶었는데, 마침 아드라코리아가 봉사활동을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지원했다”고 참가 계기를 전했다.
아버지 문경석 집사와 함께 참여하는 그는 “뉴스로만 보던 현장을 실제로 와서 보니 마음이 무척 짠하다. 원치 않은 전쟁 때문에 가족을 잃거나 사랑하는 사람과 떨어져 지내야 하는 난민들을 보니 너무 슬프다”고 마음 아파했다.
문 군은 “음악회를 통해 난민들이 큰 힘을 얻은 것 같다”며 이번 활동 가운데 제일 기억에 남는 순간으로 위로음악회를 꼽았다. 그러면서 “앞으로도 우크라이나 난민을 위해 많이 기도하겠다. 조금씩 기부도 할 생각”이라며 의젓한 계획을 소개했다.
쾰른음악대학원에서 바이올린을 전공하는 임예경(금곡교회) 자매는 “김광일 교수님의 권유로 참여했다. 당초 개인 사정이 있어 오기 어려웠지만, 뜻깊은 자리에 함께하지 못하면 평생 후회할 거 같아 선약 일정을 조정했는데, 결과적으로 참 잘한 결정이었다. 도움 주신 모든 분과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했다.
러시아에서 유학한 경험이 있어 통역으로도 봉사하며 1인2역을 맡은 그는 “내가 더 많은 걸 할 줄 안다면 더 많은 것을 줄 수 있었을 텐데, 그렇지 못해 아쉬웠다. 사랑을 주러 와서 사랑을 받는다는 말이 있는데, 내가 그런 것 같다. 이렇게 어려운 상황에서도 하늘의 소망을 품고 살아가시는 우크라이나 난민 재림성도들을 보면서 내가 더 큰 용기를 얻었다”고 밝혔다.
이번 여행은 본인의 가치관에도 영향을 끼쳤다. 어려운 상황에 놓인 분들을 위해 음악으로 도움을 드려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계기가 됐다.
그는 “전문연주자가 되는 게 일차적 목표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하늘에 가까운 사람이 되고 싶다. 대부분의 사람은 물질적으로 풍부한 혹은 자극적이고 재밌는 삶을 찾아 방황하지만, 다른 사람을 위해 봉사하고 나누는 삶이야말로 진정한 가치와 보람이 있다는 걸 재차 경험했다. 난민뿐 아니라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이웃을 위해 더욱 열심히 봉사하겠다”고 결심을 드러냈다.
이들은 지속적인 후원의 필요성에 대해서도 공감했다. 문예찬 군은 “필요한 물품을 구입하려면 현재로서는 자금이 제일 요긴할 것 같다”고 제안했다. 실제로 국가의 지원이 거의 없어 대부분의 난민지원을 개인후원에 의지하고 있다.
곽율아 자매는 “솔직히 초코과자 한 상자 별 게 아니잖나. 그런데 이곳에서는 정말 귀하게 쓰인다. 음악연주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는 단지 서로의 재능을 나눈 것뿐인데 그들은 작은 것에도 감사한다”면서 “더 많이 챙겨주고 싶은데, 자금이 부족해 도울 수 없는 현실을 볼 때는 마음이 먹먹하다”고 안타까워했다.
김애련 집사는 “긴급구호도 중요하지만, 난민들이 자리를 잡고 살 수 있는 생활기반을 조속히 제공해야 할 듯하다”면서 “저들이 새로운 터전에 안착해서 아픔을 딛고 일어설 수 있도록 돕는 일도 있어야 할 것”이라고 제안했다.
임예경 자매는 “우리나라도 과거 전쟁의 아픔을 겪은 적이 있잖나. 사랑하는 가족과 친척, 정든 고향을 떠난 난민들의 애처로운 마음과 슬픔을 잘 헤아리는 서비스가 필요하다. 단순히 경제적, 물질적 도움에 그치지 말고 심리상담 등 정서적 지원도 해야 한다. 마음이 통하는 진정한 위로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물론, 우크라이나의 조속한 전쟁 종식과 세계평화, 난민과 자원봉사자들을 위한 기도요청도 빠지지 않았다.
#아드라코리아 #우크라이나전쟁난민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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