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증] 홍소연 자매 “내가 AM선교사에 자원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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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 - 김범태 기자
kbtlove@kuc.or.kr
입력 2019.11.22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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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S 전도단 – 천명선교사 – AM선교사로 이어지는 ‘평생 선교사 로드’
그는 SOS 전도단원으로 영남합회에서 활동하다 1000명선교사(51기)로 자원해 1년을 봉사했다. 이후 6개월 동안 자비를 들여 다시 캄보디아에서 현지 청년들의 전도훈련과 선교를 위한 활동을 펼쳤다.
지난달 귀국과 동시에 AM선교사로 신청해 이제는 국내선교를 위해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그의 이러한 발걸음은 평생 선교사로서의 ‘로드’를 보여주는 것이어서 더욱 감동을 준다. 홍소연 선교사의 간증을 여기 옮긴다.
쳇바퀴처럼 교회만 왔다갔다하던 속 빈 재림청년
사실 저는 말이 재림청년이지, 단지 교회만 왔다갔다하는 속이 텅 빈 교인이었습니다. 삶의 우선순위에서 신앙이 가장 아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렇게 살다간 언젠가 하나님을 잊고 살아가겠다’는 두려움이 찾아왔습니다. 그래서 신앙을 바로 잡고자 1000명선교사에 지원했습니다. 주변의 반대가 심했지만, 6개월간 기도하며 준비했습니다.
캄보디아의 바탐봉이라는 아주 작은 도시가 저의 선교지였습니다. 집집방문과 성경공부를 통해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어린이사업과 한국어교실, 음악교실을 통해 간접적으로 하나님을 알릴 수 있는 일을 했습니다. 캄보디아는 불교가 국교입니다. 국민의 90% 이상이 불교신자입니다. 재림교인은 제가 알기로 0.1%도 되지 않습니다.
저는 선교지에서 제 인생 중 가장 절망적인 순간을 맞이했습니다. ‘하나님’이라는 이름조차 선뜻 꺼낼 수 없는 곳이었기 때문입니다. 주민의 절반이상이 합판을 얼기설기 엮어 만든 판자촌에 살거나 아예 집이 없었습니다. 하루에 한 끼를 구걸하면서 사는 사람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들에게 예수님이 가장 필요하다는 걸 알면서도 예수님을 알릴 수 없었습니다. 음식을 갖다 대주지 않는 이상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을 거 같았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하나님의 사랑을 전할 수 있을까 늘 고민하며 눈물로 기도했습니다.
하루는 사탄이 정말 무섭다는 걸 깨닫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선교사 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습니다. 그날은 처음으로 성경공부를 하고자 하는 구도자를 만났던 날이자 청년캠프를 하기로 한 날이었습니다. 오토바이를 타고 교회로 돌아오는 중 갑자기 급발진을 하는 바람에 제 몸이 공중으로 붕 떠올랐습니다.
교회 건축 현장의 철근이 솟아 있는 곳으로 몸이 솟구쳐 곤두박질쳤습니다. 하마터면 큰 부상을 입을 뻔 했는데, 다행히 철근과 철근 사이에 떨어졌습니다. 그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던 호주인 목사님이 깜짝 놀라며 “천사가 너를 들어서 옮겨놓은 것처럼 보였다”고 말했습니다. 바닥에 떨어지면서 마치 사탄이 행복해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사업을 방해하는 사탄이 참 무섭게 여겨졌습니다.
이 사건을 겪으며 예수님의 보호와 사랑에 감사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몇 개월 동안 팔에 깁스를 해야 하는 상황에 다다르자 만사가 귀찮고, 의욕이 꺾였습니다. 선교지에 발을 디딘 지 몇 달이 지나도록 변변한 구도자를 만나지 못하던 상황에 겪은 일이라 더욱 의기소침해졌습니다.
희망 없는 사람에게 영원한 희망을...
절망에 빠져있던 제가 다시 힘을 얻게 된 계기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집집 방문을 하다 한 여성을 만났습니다. 한눈에 보기에도 영양이 부족해 보였습니다. 문도 없는 집에 살던 그는 HIV 환자였습니다. 그저 약에 의지해 하루하루를 연명할 뿐이었습니다. 구걸로 끼니를 해결해야 할 정도로 가난한 사람이었습니다. 영양이 너무 부족해 변변한 일을 할 수 없을 정도로 힘이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어디서 돈을 구할 수 있는 처지도 아니었습니다. 희망 없는 사람이 있다면 저런 모습일 거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그에게 가장 필요한 분이 예수님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선뜻 예수님의 이름을 꺼낼 수 없었습니다. 어떻게 복음을 전할까 기도하다 용기를 내어 대화를 시도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삶을 원망하면서 살고 있었습니다. 십자가의 사랑과 영생의 약속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저에게 가진 게 그것밖에 없었고, 그에게 필요한 게 그것밖에 없었으니까요.
“절망에 빠질 때, 저는 제가 믿는 하나님께 기도를 드려요. 그러면 그분은 저의 간구에 응답해 주시고 저의 인생을 바꿔주십니다. 지금까지 저를 보살펴 주고 계신 하나님께서 당신의 인생도 보살펴 주시리라 확신합니다. 결코 희망을 버리지 마세요”
“선교사님, 나도 살고 싶어요. 희망을 놓고 싶지 않아요”
“그럼 저와 성경을 공부해 보시겠어요?”
“너무 좋아요. 저도 하나님에 대해 알고 싶어요”
저의 조심스러운 제안에 그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의 웃는 모습을 본 건 그때가 처음이었습니다. 그를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교회나 우리의 형편이 그럴 만한 상황이 되지 않았습니다. 바탐봉교회는 대총회의 지원으로 건축하던 중이었고, 교회도 별다른 후원 없이는 운영이 힘든 지경이었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거라곤 그저 기도뿐이었습니다.
그때부터 사비를 조금씩 털어 다른 사람 몰래 그에게 음식을 갖다 주었습니다. 자칫 그 사실이 알려졌다간 ‘교회가 돈으로 사람을 산다’는 불필요한 오해를 받을 위험성이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제가 귀국하기 전에 그가 진리를 발견하고, 하나님의 품으로 나아오길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마침 그즈음, 삼육대학교에서 봉사대가 저의 선교지를 방문했습니다. 귀국 바로 2주 전이었습니다. 그의 딱한 사정을 전해들은 봉사대는 호주머니를 털어 그의 1년분 양식을 후원해주기로 했습니다. 우리의 간절한 기도가 응답되는 순간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내가 살아 있다’고 말씀해 주시는 것 같았습니다.
그는 지금도 약을 복용하면서 영양섭취를 잘 해 차츰 건강을 되찾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반가운 건 교회에 꾸준히 출석하며 하나님을 배우고,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그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가장 기본적인 게 충족되었음에도, 그 축복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감사하지 못한 채 매번 의심하고 불순종하는 것 같아 부끄러웠습니다.
“영혼을 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영혼을 구할 청년이 없는 현실”
1000명선교사 생활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온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캄보디아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그 사이, 저는 SOS(Salvation, Only jesus, Service) 청소년선교사운동에 참여했습니다. 아이들에게 성경을 가르치고 침례를 결심시키면서 함께 헌신할 청년들이 너무 부족하고 필요하다는 걸 절실하게 깨달았습니다. 영혼을 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영혼을 구할 청년이 없는 현실에 마음이 답답했습니다.
그래서 다시 선교지로 돌아간다면 청년들을 대상으로 전도회를 열자고 다짐했습니다. 여러 가지 계획을 하고 캄보디아의 청년들을 위한 전도회를 준비했습니다. 이들에게 침례는 기대할 수조차 없고, 단지 하나님에 대해 알게 하자는 게 최고의 목적이었습니다. 감사하게도 적은 수였지만, 청년들이 모였습니다.
그 중 교회에 남은 학생은 딱 한 명이었습니다. 저는 사실 한 명도 남지 않을 줄 알고 가슴이 조마조마했습니다. 이 친구는 “자기 신이 가장 싫어했던 하나님을 이 전도회를 통해 가장 좋아하게 됐다”고 고백했습니다. 의과대학을 목표로 공부하는 그는 상급학교 진학을 위해 머잖아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는데, 얼마 전 들은 소식으로는 혼자서 지금도 매주 안식일에 꼬박꼬박 교회에 나가고 있다고 합니다. 저는 이 영혼이 앞으로 선교사로써 하나님의 빛을 비출 거라 확신합니다.
저와 함께 전도회에 참여했던 현지 청년들은 이제 겨우 침례를 받은 지 1, 2년 밖에 되지 않은 상태에서 투입됐습니다. 처음엔 “이제껏 누구에게 성경을 가르쳐본 적이 한 번도 없다”며 어렵고, 하기 싫다고 고개를 가로젓던 그들이 지금은 “하나님을 소개하고, 전도하는 게 이렇게 기쁘고 보람 있는 일인지 처음 알았다”며 자신감을 내비치고 있습니다. 저는 이들이야말로 영혼구원 사업에 꼭 필요한 일꾼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AM선교사운동에 자원한 까닭
저는 11월부터 AM(Always Missionary)로 자원해 대구강북교회에서 사역하고 있습니다. 복학해 어서 빨리 학업을 마쳐야 하는 제가 AM선교사운동에 참여한 건 영혼구원의 중요성을 잊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건 제게 주어진 복음전도 사명을 다른 재림청년들에게도 나눠주기 위해서입니다.
과거의 저처럼 단지 교회에 쳇바퀴 돌 듯 다니는 게 아니라, 리더로 성장해 장차 교회의 기둥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함께 선교를 하면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얻어 하나님의 빛을 더욱 힘 있게 비출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솔직히 국내선교가 해외선교보다 더 어렵습니다. 차원이 다릅니다. 때로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혼자 울기도 하고, 방향을 잡지 못해 갈팡질팡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저를 향한 분명한 뜻이 있기 때문에 이 일을 허락하셨을 것입니다. AM 선교봉사를 잘 해낸다면 훗날 지금보다 더 성장한 저에게 보다 큰일을 맡겨주시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갖고 있습니다.
저는 예수님께 칭찬받는 선교사가 되고 싶습니다. 재림의 그날 “소연아, 수고 많았어”라는 말씀을 꼭 듣고 싶습니다. 그렇기 위해서는 제가 다른 청년들에게 조금이라도 모범이 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부족하지만, 청년들을 리더로 성장시키는데 도움을 주는 평생 선교사가 되고 싶습니다. 여러분도 재림청년들 그리고 아직 하나님의 사랑을 모르는 교회 밖 청년들을 위해 많은 기도와 응원을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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