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명 선교사훈련원 본부에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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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태 기자
kbtlove@kuc.or.kr
입력 2006.04.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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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세기 최대의 도전’ 그 발자취를 따라...
이 목사는 1000명 선교사운동에 대한 계획서를 싱가포르의 지회 본부에서 열린 아태지회 대학원 이사회에 제출했으며, 이사회는 협의를 거쳐 세계 복음화운동에 대한 이 계획서를 승인하기로 결의했다.
계획안은 곧 아태지회 연례회의에 상정되어 의논되었으며, 13개 연합회에서 참석한 100여명의 대표들은 선교사 파송운동을 전개해 나가기로 만장일치로 승인했다. 아태지회는 이후 1000명 선교사운동을 아태지회 신학대학원의 주관 하에 시작하도록 전권을 위임했다.
이후 한국을 비롯한 필리핀, 일본, 대만, 인도네시아, 미얀마 등 아시아 각 국의 연합회에서 1000명 선교사운동을 후원하기 위한 움직임이 계속 이어졌으며, 이러한 관심과 지원의 물결은 미국과 호주, 러시아 등으로 퍼져나갔다.
1992년 2월에는 1000명 선교사운동 출판물 시리즈 제1호인 ‘Preach the World’가 인쇄되었으며, 3월에는 공식회보인 ‘마라나타’ 창간호가 한국어와 영어, 일본어, 중국어 등 7개 국어로 발행되었다.
같은 해 12월 23일에는 1000명 선교사훈련원 캠퍼스 마련을 위한 부지가 아태지회 대학원 캠퍼스에서 약 3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마련되었다.
약 1만2,000평 규모의 이 대지에는 이듬해 1월, 본격적인 선교사훈련을 위한 4개의 대형 막사가 세워졌으며, 이 천막을 집회장으로 감격적인 첫 안식일예배가 드려졌다.
한국인 22명을 포함한 60명의 제1기 1000명 선교사들이 이 천막 강의실에서 선교사훈련을 위한 강의를 받았다. 이들 선교사들은 헌신예배와 선교사 임명식을 통해 각 선교지로 파송되었다. 땅 끝까지 복음을 전파하기 위한 선교사들의 본격적인 항해가 시작된 것이다.
1993년에는 지명훈, 김은경, 하용환 선교사 등 3명의 제1기 선교사들이 러시아의 사할린에 파송됐다. 이들의 이름은 1000명 선교사로 해외에 나가 봉사하는 첫 번째 선교사들로 역사에 기록된다.
이러한 움직임은 이후 1996년 11월 1000명 선교사로서는 처음으로 독일로 파송되는 최대열 선교사와 일본으로 첫 발을 내디딘 김세미 선교사 등 세계 각 지역으로 선교사운동이 보폭을 넓히는 ‘신호탄’이 되었다.
1994년 2월, 훈련원 캠퍼스에서는 1년 동안의 선교지 봉사를 마치고 돌아온 1기 1000명 선교사들을 환영하는 뜻 깊은 특별예배가 드려졌다. 1기 선교사들은 이 자리에서 442명의 침례자와 13개 교회당을 건축하는 결과를 보고했다.
이즈음, 1000명 선교사운동은 세계적으로 큰 주목을 받기 시작한다. 1995년 6월 네덜란드에서 개최된 제56차 대총회에서 4만 여명의 청중들에게 1000명 선교사운동이 소개된 것.
이 감동적인 순서는 위성을 타고 북미주지역 전역에 중계되었으며, 별도로 마련된 부스에서는 1000명 선교사운동에 대한 홍보가 진행되어 많은 이들의 관심이 모아졌다.
이에 앞서 1994년 6월 미국에서 대총회 세계선교부 주최로 열린 세계선교 담당자 집회에서는 이재룡 목사가 초청강사로 초빙되어 1000명 선교사운동에 대한 현황과 비전을 소개하기도 했다.
1995년 11월 열린 아태지회 연례회의와 곧 이어 열린 지회 총회는 1000명 선교사훈련을 아태지회 직속 기관으로 결의하고, 신임 훈련원장에 김시영 목사(현 SDA삼육외국어학원장)를 임명했다. 선교사 교육담당에는 김요한 목사가 내정됐다.
1998년 3월 8일은 1000명 선교사운동의 또 다른 이정표가 세워지는 날이었다. 바로 선교사 1000명 파송 및 침례자 1만명 돌파기념식이 열린 날이기 때문이다. 이날 기념식에는 당시 대총회 부회장이었던 얀 폴슨(현 대총회장) 목사와 북아태지회장 전병덕 목사 등 교단 지도자들이 자리를 같이해 선교사 운동의 발전을 기원했다.
이날 예배에서 말씀을 선포한 얀 폴슨 대총회장은 2001년 11월 다시 1000명 선교사훈련원을 방문해 선교사와 관계자들을 격려하는 등 이 운동에 대한 자신의 깊은 관심을 표명해 보이기도 했다.
2000년 9월에는 5년 동안 1000명 선교사훈련원 원장으로 봉사한 김시영 목사가 SDA삼육외국어학원장에 부름 받음에 따라 귀국하였으며, 후임으로 김요한 목사가 취임했다. 김 목사는 재임 기간 동안 다목적관, 여자 기숙사, 영어연수센터 건축 등 훈련원을 새롭게 조성하는 대규모 공사를 진행했다.
2003년 1월 23일에는 1000명 선교사훈련원 10주년 기념행사가 거행되었다. ‘세계를 복음의 빛으로 환하게 비추라!’라는 주제로 열린 이 기념식에서는 감사음악회, 파송의 탑 제막식, 현황 보고 등 눈물과 수고로 써내려간 선교사들의 발자취와 노고를 기리는 각종 행사가 펼쳐졌다.
1000명 선교사운동은 특히 미얀마, 방글라데시, 인도네시아, 러시아 등의 국가에 8개의 분원을 설립해 복음전파에 매진하고 있다. 미얀마분원은 1994년 3월, 30명의 제1기 선교사 지원자들로 시작되었으며, 제2분원인 방글라데시 훈련원은 1998년 16명의 청년들과 함께 문을 열었다.
1999년 5월 24일에는 러시아 연합회의 협조와 훈련원의 후원자금으로 제3분원이 러시아에 설립되어 많은 선교사들이 순교의 순간까지 세천사의 기별을 전파할 것을 다짐했으며, 2002년 3월에는 칭기스칸의 후예들에게 복음을 전할 몽골분원이 문을 열었다. 올 1월 1일에는 1000명 선교사운동 말레이시아 분원이 제1기 28명의 선교사들로 시작되었다.
지난 3월 1일부터 열린 1000명 선교사 이사회는 10년간 선교사들을 뒷바라지해 온 김요한 목사에 이어 주민호 목사를 새로운 1000명 선교사훈련원장에 선임했다. 2000년 필리핀으로 건너간 주 목사는 그동안 교수, 목회, 선교사 지원사업 등 다양한 영역에서 봉사했다.
매년 약 550명의 청년들을 훈련시켜 세계 36개국으로 파송하고 있는 1000명 선교사운동은 지금까지 53개 나라에서 3,440명이 지원했다. 이 중 한국연합회는 필리핀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선교사를 파송하고 있다.
이들의 헌신으로 지난해 연말 현재 3만3721명의 영혼이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받아들이고 침례를 받았으며, 354개의 교회가 건축되었고 598개소의 집회소가 마련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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