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개막식 은혜로 수놓은 스페셜 음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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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회 북아태지회 패스파인더 국제캠포리의 첫날 밤, ‘Special Concert’란 제목으로 음악회가 마련됐다. 2시간 가까이 개막식과 개회예배를 지켜 본 참석자들의 집중력이 과연 음악회에서도 유지될 수 있을까, 고개가 갸우뚱 하던 참에 첫 무대의 막이 올랐다.
웨일스 작곡가 조셉 패리(Joseph Parry)의 <독주 하프를 위한 소나타 D장조>. 모차르트를 연상시키는 고전적이면서도 밝고 유려한 선율이 돋보이는 곡이다. 연주자로 무대에 오른 윤효원 양(대치초 5학년)은 나이답지 않은 안정적이며, 단아한 연주를 선보였다.
윤효원 양의 무대에서 가장 돋보인 부분은 순간적인 위기 대처능력이었다. 앞선 프레이즈를 마무리하고 다음 프레이즈로 넘어가기 위해 잠시 연주가 멈춘 순간이었다. 연주에 감동받은 관객들의 박수가 터져 나왔다. 당황해서 연주가 흔들릴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박수가 잦아들기를 기다렸다 언제 그랬냐는 듯 연주를 이어나갔다. 연주 실력이 좋아도 무대에서 그것을 펼쳐 보이지 못한다면 연주자로서의 미래를 기대하긴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윤효은 양에게선 어떤 무대에도 설 수 있을 것 같은 오라(Aura)를 느낄 수 있었다.
서양 고전음악으로 문을 연 음악회는 우리 가락인 대금산조로 이어졌다. 산조(散調)란 비교적 최근인 19~20세기에 등장한 국악 중 한 갈래로, 기악 독주곡으로 이해하면 쉬울 것이다.
연주자는 국악예고 1학년에 재학 중인 박예찬 군이며, 곡명은 <청성자진한잎>. 여기서 ‘청성’(淸聲)은 높은 소리를 의미하며, ‘자진한잎’은 가곡의 원형이었던 ‘삭대엽’(數大葉)의 순우리말이다. 그런데 청성은 단순히 높은 소리를 뜻하는 것만은 아니었다. ‘청’(淸)이란 글자에 ‘맑다’란 의미가 있는 것처럼, 깨끗하고 맑은 소리를 요구하는 것이다. 이날 박예찬 군의 연주는 작품의 요구에 딱 들어맞는 소리를 들려줬다. 군더더기 없이 맑은 울림은 구성진 소리에 익숙한 관객들에게도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
박예찬 군의 연주에서 눈여겨 볼 부분은 다름 아닌 ‘요성’(搖聲)이다. 서양음악의 비브라토(Vibrato)가 여기에 해당한다. 맑은 소리의 산조에 풍성함을 가져다 줄 수 있지만 자칫 과하게 사용할 경우 소리의 균형을 무너뜨릴 수 있어 신중한 접근이 요구된다. 그런데 박예찬 군은 그 미묘한 줄타기에서 승리했다. 이른 나이에 절제의 미덕을 쟁취한 것이다. 청성으로 가늘고 곱게 공중으로 떠올린 선율을 요성으로 흩어 무대에 가득 채우는 박예찬 군의 무대는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다음 무대는 한층 애절하게 관객들의 가슴을 두드렸다. 우리 현악기인 해금을 들고 무대에 오른 국악예고 3학년 윤성빈 군의 연주였다. 선보인 곡은 <지영희류 자진모리>. 곡의 제목 중 ‘지영희류’는 일제강점기 지용구(池龍九) 선생의 산조를 전승한 지영희 선생의 유파를 의미한다. 섬세하고 선율의 굴곡이 심한 편이, 경쾌하고, 가볍고, 재미있는 것이 특징.
윤성빈 군은 우리가 국악에 흔히 기대하는 구성진 느낌에 현대적인 정서를 가미해 애절한 연주를 선보였다. 대범한 시도였다. 단순한 재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해석으로 재창조의 영역으로 발검을 옮긴 것이기 때문이다. 윤성빈 군의 새로운 도전은 국악의 새로운 세계로 우리를 이끌었다.
이어진 윤성빈 군과 박예찬 군 그리고 피아니스트 임한나 집사가 함께 호흡을 맞춘 <저 높은 곳을 향하여> 연주는 ‘국가와 민족, 언어와 문화를 넘어 한 곳을 바라본다’는 이번 국제캠포리의 비전을 그대로 녹여낸 무대였다.
맑고 고운 대금이 아리랑 선율을 서주로 제시하자, 피아노가 ‘저 높은 곳을 향하여’를 주제로 다성 음악의 풍성한 울림으로 발전시켰다. 그리고 해금이 녹진하게 주제선율을 연주하자 관객들의 두 눈은 무대를 넘어 저 하늘로 초점이 맞춰졌다.
트리오 무대의 여운은 그대로 솔리스트 한솔 양의 독창으로 이어졌다. <보이지 않은 길> <내 길 더 잘 아시니>(You know better than I) 두 곡을 연달아 선보였다. 저음에서 고음까지 하나의 음색으로 이어진 그의 연주는 상당히 굴곡이 있는 곡이었음에도 편안하게 느껴지도록 했다. 또한 고음에서 소리가 앞으로 뻗어 나오지 못하고 목 안에 머무르는 ‘인골라’(in gola)가 발생할 수 있는 순간들을 노련하게 피해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드라마틱하진 않지만 레체로(Leggero) 특유의 밝은 음색이 기분 좋은 무대였다.
마지막 무대는 이날 연주회에서 가장 어린 연주자들의 몫이었다. 태강삼육초등학교중창단(지도교사 이희성)이 주인공이다. 첫 곡인 <Y’all come>은 미국 서부 개척시대의 향기가 느껴지는 컨트리음악으로, 중창단원들의 율동과 어우러져 홀의 분위기를 다채롭게 바꿔놓았다. 이어진 <찬양 메들리>는 그 안에 담긴 곡들의 다양함만큼이나 다채로운 언어로 노래해 박수갈채를 이끌어냈다. 특히 안무를 곁들여 무대를 소화함에도 가창에서 흔들림을 거의 느낄 수 없었단 점은 태강삼육초중창단의 무대를 논함에서 반드시 언급해야 할 정도로 훌륭했다.
모든 무대가 마치고 연주회의 막이 내려지자, 2시간 가까이 개막식과 개회예배를 지켜 본 참석자들의 집중력이 과연 유지될 수 있을까, 갸우뚱했던 고개는 어느새 인정으로 끄덕이고 있었다. 연주자 각자 무대의 완성도는 물론 레퍼토리에 담긴 의미와 미학 역시 수긍할 수 있었다.
이날 연주회에 함께 4000여 명의 성도들은 아직 경험한 적 없는 하늘을 향한 노스텔지어(nostalgia)를 느끼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아니 어쩌면 이미 하늘을 경험했다고 말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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