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 120주년 기념] 권태건의 내러티브 리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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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산책을 마치고 돌아온 마승용 목사의 전화가 울리기 시작했다. 번호를 보니 미국에서 걸려온 전화였다. 7년간 선교사로 브라질에서 생활했지만, 미국에서는 전화를 걸어올 만한 사람이 없었다. 아무리 얼굴을 떠올려봐도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벨이 끊기기 전에 얼른 전화를 받았다.
“성산교회 담임하고 계신 목사님이시지요? 저는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살고 있는 최OO 집사라고 합니다.”
“네, 안녕하세요. 미국에서 무슨 일로 이렇게 연락을 주셨습니까?”
“다름 아니라, 저희 아버지께서 연로하신데 어릴 적 다니시던 성산포교회를 보고 싶어 하십니다. 건강 때문에 직접 가보지는 못하시지만 교회가 어떻게 됐는지만이라도 알고 싶어 하셔요”
마승용 목사는 최 집사에게 오래전 오조리 마을 입구에 새 예배당을 지어 이사했노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묵은 교회(옛 교회란 의미, 피난교회) 건물은 남아 있지만, 지금은 식당으로 쓰이고 있다고도 덧붙였다. 전화를 끊고 책상 앞에 앉았다. 그러나 좀처럼 책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 듯했다. 그는 결국 외투를 챙겨 들고 사택을 나섰다.
교회 리모델링이 한창이라 각종 공사 장비로 좁아진 계단을 빠져나왔다. 작업 준비를 하고 있는 인부와 잠깐 이야기를 나누고 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오늘따라 마 목사 왼편으로 모습을 드러낸 성산일출봉의 자태가 웅장했다. 동남초등학교를 지나 골목길로 접어드니 지역 맛집으로 유명한 식당과 관광호텔이 일행을 맞이했다. 마 목사의 시선은 그 사이에 위치한 어느 음식점으로 향했다.
우거진 나무 사이로 오래된 석조건물이 자리하고 있었다. 따로 알아보지 않아도 마 목사는 이 건물이 언제 지어졌는지 알고 있었다. 1951년이었다. 누가 지었는지도 알고 있었다. 피난 온 재림교인들이었다. 지금은 ‘부촌식당’이라는 간판을 달고 있지만, 바로 여기가 성산포 피난교회였다.
마 목사가 성산교회를 담임한 지 5년째다. 강관규 장로, 한공숙 장로는 물론 최고령의 부복수 집사로부터 피난교회에 대해 여러 번 이야기를 들었다. 혹시라도 근처를 지날 일이 있으면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피난교회를 바라보고는 했다. 현재 피난교회 건물을 소유하고 있는 식당 주인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기도 했다. 그는 성산교회 교인들과도 가깝게 지내는 동네 주민이기도 하다.
교회로 돌아온 마 목사는 얼른 씻고 다시 책을 펼쳤다. 행복한 삶에 관한 내용이었다. 최근 들어 매일 아침 조금씩 읽고 있다. 하지만 지금 마 목사의 마음은 행복과는 거리가 멀었다. 답답한 마음에 책을 덮고 방문을 가기로 했다. 방문이라고는 하지만 사실 교회에 출석하는 고령의 어르신들 안부를 확인하는 것에 가까웠다. 오조리 마을의 꼬불꼬불한 길을 따라 도착한 곳은 부복수 집사의 집이었다.
“집사님, 어디 불편한 데 없으세요?”
마 목사가 묻자 부 집사는 현관의 처마를 가리켰다. 콘크리트가 부서져 있었다. 자칫하면 떨어지는 콘크리트 조각에 부 집사가 크게 다칠 수도 있어 보였다. 마 목사는 그 자리에서 처마를 수리하는 방안을 알아봤다. 그렇게 안부를 확인하고 마 목사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조금 전에 묵은 교회에 갔다 왔어요”
그러자 부 집사가 말했다.
“목사님, 묵은 교회를 하루빨리 되찾아야 할 텐데 큰일입니다.”
마 목사는 부 집사를 마을회관에 모셔다 드리고 돌아왔다. 하지만 머릿속에는 ‘묵은 교회를 되찾아야 한다는 부 집사의 말이 계속 맴돌았다. 마 목사는 오랫동안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 성도 그 자체라고 생각해왔다. 성도들만 있다면 건물은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다. 그런데 오늘 아침 멀리 미국으로부터 걸려온 전화 한 통에 마음이 어지러웠다.
성산포항에 잠시 차를 세웠다. 차가운 바닷바람이 옷깃을 타고 들어왔다. 1951년 1월이었으니 꼭 이맘때쯤이다. 이 항구로 LST(Landing Ship Tank)라 부르는 철갑수송선이 도착했다. 그 배에서 약 1000명의 재림교인이 내렸다. 모두 피난민이었다. 성산포항에서 바람을 맞으니 그날이 눈앞에서 펼쳐지는 듯했다.
다시 교회로 돌아오는 길, 부촌식당을 지났다. 문득 주변에 관광호텔과 신식 건물이 들어서는 중에 피난교회만이 그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그리고 “묵은 교회를 하루빨리 되찾아야한다”던 부 집사의 말을 떠올렸다. 새삼 여태까지 하나님께서 피난교회를 보존하고 계셨다는 사실이 피부에 와 닿았다. - 다음 호에 계속 -
* 이 기사는 <삼육대학교>와 <삼육서울병원>의 지원을 받아 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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