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혜의 interview-e] 동해시노인의료복지센터 장강훈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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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 수십 년 다니면서도 이웃이나 지역사회에 실제적인 봉사활동이나 선한 감화력을 끼치지 못하는 그리스도인이 많다. 기회가 없어서, 마음이 없어서라기보다는 해 본 적이 없으니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방법을 몰라 못하는 경우도 많을 터. 그럼에도 일상이 봉사이고, 선교인 사람은 어디에나 있다.
<재림신문>은 지난해 7월 개편을 기점으로 ‘선교’에 포커스를 맞춰 관련 기사를 싣고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는데, 신기하게도 ‘선교하는 이들’이 하는 말은 똑같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은 어디에나 있다. 가장 어려운 문제를 도와주다 보면 그들이 내가 다니는 교회에 관심을 갖게 되더라. 예수님의 방법도 결국 ‘아픈 이를 고치시고 도움이 필요한 자를 돕는 것’이었다”는 말이다.
이번 인터뷰이는 강원도 동해시노인의료복지센터 장강훈 원장(동해중앙교회 장로)이다. 본인은 내세울 것이 하나도 없다며 만남을 극구 사양했지만, 기자 개인에게는 오래도록 ‘선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으로 남아 있는 이였기에 꼭 만나고 싶었다.
그는 약 20년 전 한 문서전도인의 전도로 아내와 함께 재림성도가 됐다. 그런데 얼마 후부터 그가 교회에 올 때마다 어르신 한 분을 모시고 다녔다. 다닌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아버지까지 모시고 오는 것이 신기하다 여겼으나 알고 보니 그 어르신은 부부와 아무 상관 없는 노인이었다.
혼자 힘으로 아무 데도 나갈 수 없을 정도로 거동이 불편한 이웃이었고, 장강훈 성도(당시)가 안식일 아침마다 차를 몰고 직접 모시고 왔다. 그리고 수년간 2층 본당까지 업고 계단을 오르내리는 일을 이어갔다.
노인을 인도하기 위해서라도 그는 교회에 빠짐없이 출석했고, 이윽고 교회의 여러 사역에 솔선수범하며 날마다 ‘착한’ 성도로 성장해 갔다. 눈이 소복이 쌓인 한겨울에도, 걷기만 해도 땀이 줄줄 흐르는 한여름에도 그의 봉사 덕분에 어르신은 매주 교회에서 주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었고, 얼마 후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났다.
누군가를 위한 ‘한 사람’의 관심과 끊임없는 봉사가 아니었다면 얻지 못했을 소중한 영혼이다. “성전 미문에서 구걸하던 지체장애인이 얼마나 들어가고 싶었을까. 베드로가 나오면서 ‘예수의 이름으로 걸어가라’ 한 것처럼 내가 해 줄 수 있는 게 그것뿐이었다”는 이유였단다.
그 모습은 당시 대학생이던 기자의 마음에 오래 남아 있었으나, 기자가 여러 교회를 취재하러 다니는 동안에도 비슷한 봉사를 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이후 장강훈 장로의 소식을 종종 듣긴 했는데 그가 어쩌다 요양병원장이 된 건지 궁금했다. 이번 인터뷰를 계기로 그는 지나간 삶을 회고했다.
어릴 때 장로교나 감리교를 통해 성경학교에 다닌 적은 있으나 재림교회라는 곳이 있는 줄도 몰랐다. 평범하게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데 아내가 재림교회에 다닌다고 하니 같이 다니긴 해야겠고, 그러자 토요일 출근이 문제가 됐다. 안식일 문제로 고민하며 이렇게 기도했단다.
“하나님, 멀쩡히 잘 다니는 회사를 관둘 수는 없고, 이 회사가 문을 닫으면 그때부터 안식일을 제대로 지키겠습니다”
그런데 몇 달 후, 거짓말처럼 회사가 폐쇄됐다. 그는 “설마 내가 한 기도 때문에 회사가 망한 건가 싶어 다른 직원들에게 너무 미안했다”고 말한다. 그 후 요양보호사로 일할 기회가 생겼는데 얼마 후 출석하는 동해중앙교회의 최명섭 장로(현 삼육부산병원장)가 교회 직영 요양원을 운영하자고 제안했다.
교회에 그만한 자금이 있을 리 없었으나 그 일을 위해 기도하던 중 동해중앙교회를 다니다 다른 지역으로 이사 간 성도 중 한 명이 소식을 듣고 교회 앞에 가지고 있던 땅을 헌납했다. 교회 앞에 요양원을 짓기 위해 준비했지만, 이번에는 주민들의 민원으로 일을 뜻대로 추진할 수 없었다. 이후 적당한 자리를 찾던 중 현재 위치(동해시 평릉동)에 건물을 짓고 동해중앙교회에서 5000만 원을 빌려 6개월간 운영 자금을 확보해 두고 2011년 3월 ‘동해시노인의료복지센터’를 개원했다. 입원 환자 정원은 15명, 방문요양 환자 정원은 80명으로 인가받았다.
규모가 작다 보니 직원들이 일당백으로 일해야 했다. 단 한 명이라도 휴가인 날에는 전 직원이 빈자리를 채우며 어르신들에게 불편함을 드리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그 모습은 대내외적으로 많은 귀감이 됐고, 수급자 가족뿐 아니라 지방자치단체에서도 인정받았다. 이후 시에서 약간의 예산을 지원해 준 덕에 건물을 2층으로 증축하면서 정원도 26명까지 늘렸고, 약 8년 만에 교회에서 빌린 돈을 모두 갚을 수 있었다.
“원래는 나 아닌 다른 집사가 오려던 자리인데 그동안 ‘이레마을 노인요양원’에서 요양보호사로 일하던 경험을 살려 더 많은 일을 하라고 나를 이 자리에 두신 것 같다”며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는 다 이유가 있을 것이니 그저 순종하며 어르신들을 섬기고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런 마음으로 어르신들을 가족처럼 모시는 직원들이 있어 우리 요양원이 지금까지 유지되는 것이라며 동료에 대한 고마움을 덧붙였다.
“가장 가까운 곳에서 장애인이나 어르신을 섬기는 분이야말로 가장 대우 받아야 할 사람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기관에서는 직급이 높을수록 월급이 높지 않습니까? 그렇다고 우리 센터에서만 특별히 월급 체계를 바꾸는 일은 불가능하죠. 그저 더 나은 복지를 제공하고 명절 상여금을 조금이나마 더 챙겨드리려는 노력을 할 수 있을 뿐입니다”
목소리에 진한 아쉬움이 묻어있지만, 그렇다고 엄청난 액수로 보상할 수 있는 형편은 아니다. 그럼에도 직원들이 그 마음을 알아주고, 더 열심히 일해 주기 때문에 동해노인의료복지센터가 지금까지 잘 유지될 수 있었다고 그는 믿는다. 동료들에 대한 고마움이 그의 미소에 잔잔하게 담겨 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을 묻자, 인터뷰를 한사코 사양하던 이의 대답치고는 꽤 길다.
“구원에는 예외가 없습니다. 남루한 사람이 올 때와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이 올 때 우리의 태도가 같아야 합니다. 전쟁과 테러, 기근이 끊이지 않는 시대에 오늘이 오늘이고, 내일은 내일인 것처럼 살아서는 안 됩니다. 주변 어려운 이들을 향한 관심을 가져야만 예수님이 언제 오시더라도 우리 옆에 있는 이들과 함께 하늘까지 갈 수 있죠. ‘내가 안 해도 된다’는 생각을 버리고 ‘내가 해야만 예수님이 오신다’는 사명을 갖고 살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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