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혜의 interview-e] 함명진 장로, 김귀형 집사 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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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어린아이와 같은 믿음’으로 나아오라고 말씀하신다. 그러나 많은 교인이 ‘어린 믿음’ ‘어린 신앙’으로 교회를 다니다가 삶의 위기가 닥칠 때 깊이 뿌리내리지 못한 믿음으로 인해 교회를 떠나는 경우가 많다. 설령 교회를 다닌다고 해도 직분을 맡기려 하면 무조건 거절하는 사람, 불평불만이 많은 사람, 교과공부에 부담을 갖고 예배만 드리고 가는 사람도 많다.
최근 만난 함명진 장로와 김귀형 집사 부부(석계교회)는 굳건한 신앙인의 모습을 보여 주는, ‘어린아이와 같은 믿음’을 가진 이들이었다.
함명진 장로는 모태교인으로 태어나 서해삼육(구 광천삼육)에서 초중고를 졸업했다. 관광영어통역과(당시 삼육병설전문대)에 입학했다가 졸업 후 사회복지학과로 편입했다. 한 학기를 다닌 후 군대에 갔는데 안식일 문제로 어려움이 많았다. 군대에서 하나님을 더욱 의지할 수밖에 없었고, 힘들 때마다 기도하고 인도하심을 기다리는 경험이 점점 쌓이면서 하나님을 만나게 됐다고 한다.
그런데 군대 제대 후 IMF가 터지는 것을 보고 나서 ‘근로자로 살아서는 안 되겠다’ 생각하고 두 번째 선택한 학과였던 ‘사회복지학과’를 그만두었다. 세무사가 돼서 경제적 어려움 없이 살고 싶어서였다. 공부하던 중 김귀형 집사를 만나 결혼했는데, 어린이집 교사로 일하는 아내의 수입으로 생활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김귀형 집사는 모태 신앙은 아니지만 한국삼육중학교에 진학했다가 사슴의동산에 간 적이 있는데 무심코 올려다본 밤하늘의 수많은 별을 보고 ‘하나님이 나를 이렇게 많이 사랑하시는구나’라고 느낀 후 하나님의 존재를 확신하게 됐다고 한다. 남편과 결혼 후 혼자 살 때보다 생활비가 더 들어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지만 월급을 받으면 십일금과 각종 헌금부터 구별했다.
“당시 월급이 130만 원 정도였는데 헌금을 떼고 나면 100만 원 남짓 남았지만 두 식구 사는 데 아무 어려움이 없었다. 다만, 결혼 후 3년이 지나도 아이가 생기지 않자 친정어머니가 많이 걱정을 하셔서 유명한 불임치료병원에 다니기 시작했는데 오히려 그때가 힘들었던 때로 기억에 남는다”고 한다. 약 3년간 병원을 다니다가 먼 거리까지 가는 것도 힘들고 스트레스를 받는 것 같아서 ‘하나님, 저희에게 아이 주실 거죠?’ 기도하며 마음을 비웠단다.
2007년, 남편이 공부를 시작한 지 8년 만에 드디어 세무사 시험에 합격했다. 칠전팔기로 이루어낸 결과는 더없이 값질 수밖에 없었다. 김 집사는 “남편이 합격하고 나서 1년 후에 첫 아이가 태어났다. 우리 가정이 경제적인 염려를 하지 않도록 하나님은 그분의 계획표대로 진행하신 것이었다”고 말한다.
김 집사는 두 번의 이사를 통해서도 하나님의 일하시는 방법을 경험했다고 스토리를 들려줬다. 첫째가 유치원에 다닐 때 유치원 행사가 토요일일 때가 많았다. 삼육유치원으로 옮기고 싶은데 남양주시 호평동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별내 지역에 있는 아파트를 보러 갔다. 보자마자 마음에 든 집이 있어서 살고 있는 집을 내놓기도 전인데도 바로 계약을 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다음 날 부동산에 집을 내놓자마자 바로 계약이 됐다. 유치원도 이사 당일에 당첨이 됐고, 이사 간 집이 제일 아래층이어서 세 자녀는 층간소음 걱정 없이 보드도 타고 줄넘기도 하며 행복하게 자랐다. ‘별내로 이사가는 것의 목적이 안식일을 제대로 지키며 교육하고 싶은 마음이었기에 하나님이 즉각적으로 해결해 주신 것이라 믿는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 날, 첼로를 하는 큰딸이 ‘6학년이 됐으니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방이 4개인 집을 찾다가 동네의 다른 아파트 단지에 집을 보러 갔는데 어느 한 집이 아파트 테라스가 정원처럼 꾸며져 있어 고층인데도 단독주택처럼 느껴질 정도였단다. 이번에도 계약을 먼저 했다. 4개월 내로만 이사를 하면 된다는 조건이 있었기에 별걱정은 안 했다. 그런데 두 달이 지나도 집이 나가지 않아 마음이 조금씩 불안해졌다.
김 집사의 설명 도중 함 장로가 입을 열어 “큰 액수의 계약금이 들어가 있는 상황이라, 출근할 때도 그 집 앞을 지나가며 기도를 하고 갔고, 퇴근을 할 때도 그 집 앞에서 기도하고 들어왔다. 그때처럼 간절히 기도해 본 적도 없는 것같다”고 전했다.
이어 김 집사가 “그런데 우리가 살던 집이 그 사이 집값이 올랐고 그때 집이 팔렸다. 이사할 때 부담이 조금이라도 줄었고, 10년쯤 된 아파트이다 보니 인테리어도 해야 했는데 마석에 가지고 있던 작은 땅이 갑자기 올라서 인테리어 비용도 생겼다. 집이 팔린 시기와 땅이 팔린 시기를 생각하면 모든 것이 하나님의 도우심이었다”고, 부부는 마치 경쟁이라도 하듯 기도하며 응답받은 일을 앞다투어 말했다.
그러나 언제나 맑은 날만 있는 건 아니었다. 함 장로는 “한동안 구리 지역에서 나름 ‘잘 나가는’ 세무사라고 자만한 적이 있는데, 작은 실수로 벌어진 일로 3000만 원이나 되는 벌금을 낸 적이 있다. 단돈 10만 원 받고 한 일인데 억울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 일로 인해 더 큰 것을 얻었다. ‘그 어떤 일을 할 때라도 나 자신을 믿지 않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게 됐다’는 것이다.
이때부터 아침 기도를 더욱 성실히 하게 됐고 ‘이 시간을 통해 성공과 영적 승리가 올 것이다’라는 말씀을 읽고 하루를 시작한다”고 말하며 “그때부터는 그날 할 일을 목록에 적고 이 모든 일에 아무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함께해 달라고 기도하는 습관이 생겼다. 그렇게 할 때 후회할 일이 별로 없다는 걸 알게 되고 기도의 힘으로 마음 편히 일하고 있다”고 한다.
감사함을 잊지 않기 위해서 십일금을 포함한 각종 헌금도 주 단위로 드리고 있다. 예상치 못하게 들어온 부수입에 대한 십일금을 드릴 때는 그중 또 십일금을 구별해 ‘하늘통장’에 입금하는 중이다. “어떻게 보면 한 사람의 연봉에 해당하는 큰 액수일 때도 있지만 전혀 아깝지 않고, 드릴 수 있는 헌금이 많아질수록 선교활동을 위해 일하라고 주신 것이라 믿는다”고 말하며 함박웃음을 짓는다.
부부는 함께 JDTS 제자훈련을 하며 ‘믿고 의지할 때 도움 주시는 하나님’을 전하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다. 집 근처에 있는 큰 교회로 옮기면 잘 짜여진 프로그램으로 아이들에게 도움이 될 것 같아 고민을 하긴 했다. 그러나 교회를 위해 봉사할 기회는 많지 않아 여전히 석계교회를 섬기고 있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분을 계속 찾게 만드시는 것 같다. 매일 말씀을 읽고 순간순간 기도를 하다 보면 계단을 올라갈 힘이 생기고, 딛고 올라서면 그 다음 계단을 올라갈 힘이 또 생긴다”라는 함 장로의 말을 들으며 나 자신이 약함을 인정할 때, 하나님께서 나의 약함을 채우시고 의로운 길로 인도하신다는 것을 또다시 깨닫게 된 인터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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