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지남 공동기획] ‘희망 2020 - 섬기는 교회’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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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태 기자
kbtlove@kuc.or.kr
입력 2018.10.31 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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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 문해교육으로 희망 선물하는 죽변하늘소망교회
“옛날부터 공부하고 싶었지만, 당장 눈앞에 사는 게 바쁘다보니 그렇게 하지 못했어. 늘 가슴에 응어리가 있었지. 이제라도 이렇게 공부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아? 친구를 만나건 술을 먹건 다른 건 하고 나면 다 허탈한데, 공부는 남는 게 있잖아. 안 그래?”
경북 울진군 죽변면. 고깃배들이 어디론가 바삐 오가고, 갈매기가 한가로이 노니는 전형적인 어촌마을이다. 인근 연안에서는 꽁치, 오징어, 명태 등이 많이 잡힌다고 한다. 자동차로 20분 남짓 달리면 삼척시 호산면과 맞닿으니 강원도와 경상북도의 경계에 서 있는 지역이다. 누구 말마따나 언덕하나 넘으면 ‘동중한’이다.
이 마을에서 벌써 70년째 터를 잡고 복음을 전하는 죽변하늘소망교회(담임목사 김동열). 이 교회는 요즘 특별한 봉사활동으로 지역사회에 감화력을 전하고 있다. 지난해 4월부터 시작한 성인 문해(文解) 교육과 중학과정 검정고시반이 그것이다. ‘울진희망학교’라는 문패를 달고 운영하는 이곳에서는 날마다 새로운 희망이 싹트고 있다.
기자가 방문했던 이날도 약속한 시간이 되자 ‘학생’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뱃일을 하다가 서둘러 작업을 접고 오기도 하고, 시장에 갔다 급한 마음에 시장바구니를 그대로 들고 오기도 한다. 김영자(가명) 할머니는 감기에 걸렸지만, 아파도 학교에 가서 아파야 한다며 부랴부랴 책가방을 챙겨 왔다. 아무리 바쁘고 힘들어도 결석은 하지 않는다며 활짝 미소 짓는다. 배움에 대한 늦깎이 학생들의 열의와 의지가 오롯이 느껴진다.
10평이나 될까. 아담한 교실에 하얗게 머리가 쇤 만학도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았다. 수업은 ‘배움의 나무반’과 ‘소망의 나무반’으로 나뉘어 진행한다. 그야말로 수준별 눈높이 교육이다.
“굳이 – 구지” “같이 – 가치” “맏이 – 마지”
이날은 우리말 앞 글자의 받침 ‘ㄷ’ ‘ㅌ’이 뒷글자의 첫소리가 ‘ㅣ’ ‘ㅑ’ ‘ㅕ’ ‘ㅛ’ ‘ㅠ’로 시작할 때 발음이 변하는 현상에 대해 공부했다. 선생님을 따라 책을 읽는 소리가 쩌렁쩌렁하다. 칠판을 보는 눈빛이 초롱초롱 반짝인다. 짝꿍과 함께 번갈아 소리 나는 대로 읽기도 하고, 공책에 써보기도 하며 글을 익힌다. 창문 밖으로 흘러나오는 웃음소리가 생기 가득하다.
갑자기 “휴~”하는 한숨소리가 들려왔다. ‘공포의 받아쓰기’가 기다리고 있다. 처음에는 쉬운 것 같았는데 점점 어려워진다며 푸념 아님 푸념이 새어나온다. 아직은 밑받침도 어렵고, 헷갈리는 글자도 많다. 그러나 한 글자 한 글자 정성을 다해 또박또박 써내려가는 표정이 사뭇 진지하다.
“보기에는 엉망인 거 같아도, 우리에게는 배우는 게 얼마나 재미있고 의미 있는 일인지 몰라. 늦었지만 이렇게 글을 깨우칠 수 있다는 게 정말 감사해. 교회와 선생님들께는 미안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지. 우리가 욕심만큼 따라가지 못하니까 미안하고,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 배움을 가르쳐 주니까 정말 고맙고. 아휴~ 그걸 어찌 다 말로 설명해... ...”
아는 언니의 소개로 왔다는 60대 중반의 한 수강생은 이제야 배움의 갈증을 조금이나마 풀 수 있게 됐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깊게 패인 눈가의 주름과 검게 그을린 얼굴이 그간의 모진 삶을 대신 말해주는 듯했다.
못 배운 설움은 가난보다 더하다는 말에 절로 코끝이 찡해졌다.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른다’는 속담처럼 글자를 앞에 놓고도 읽을 수가 없어서 답답했던 가슴을 한 움큼 잡아 뜯어내고 싶었던 게 한두 번이 아니라고 했다.
물론 배움의 과정이 쉽지는 않다.
“선생님 말씀을 들을 때는 알겠는데, 나중에 시간이 지나면 다 모르겠어. 금방 까먹고 말아. 그래서 복습을 열심히 해야 돼. 처음에는 누가 볼까 창피해 남 몰래 숨어서 공부했는데, 이제는 그러지 않아. 오히려 이것도 복이라고 생각하지. 더 이상 까막눈이라는 소리 듣지 말아야지. 서울에 사는 손주 녀석들에게 할미가 직접 쓴 편지를 써 보내는 게 소원이야”
그래서인지 수업시간에 조는 학생 하나 없다. 아니, 쉬는 시간에도 책과 씨름하며 공부에 열중이다.
교사로 봉사하는 박진규 집사는 “이 활동은 글을 모름으로 인해 받았던 상처와 인생의 회한을 풀어주는 일”이라며 “특히 선생님의 입장에서 진행되기 때문에 기타의 봉사 프로그램보다 훨씬 더 효과적이다. 수혜자의 충성도와 수용성이 매우 높은 게 특징이다. 게다가 지역사회에서 좋은 일을 하는 교회로 인식되면서 조금씩 관심을 갖는 사람이 늘어나는 등 확장성을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울진희망학교는 최근 들어 단순히 문해교실을 넘어 구원의 통로가 되고 있다. 지난 8월에는 한글반에 다니던 3명이 침례를 받고,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영접했다. 모두 글을 배워 성경을 속 시원히 읽는 게 바람이었던 사람들이다. 요즘은 찬미가사도 보면서 찬양하는 즐거움에 푹 빠져 있다.
교사로 사역을 돕고 있는 장숙희 집사의 말이다.
“침례의 의미를 깨닫자 이분들이 저마다 눈물을 흘리는 거예요. 이렇게 큰 죄인인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날 수 있다는 사실에 감격한 것입니다. 이제는 희망학교 학생이기도 하지만, 같은 교회의 성도가 되었습니다. 그러니 이전에 느끼지 못했던 감동이 있지요. 인간에 대한 신뢰가 신앙으로 이어지는 특별한 경험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침례 그 자체가 사업의 목적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김동열 목사는 “(문해교실은)지역사회 역할 찾기의 한 방편이 되어야 한다. 희망학교는 주민들과의 접촉점이다. 나아가 목회자 중심에서 교인 중심의 사역을 펼쳐야 한다. 목회자가 떠나더라도 지속되어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성도들이 교사로 봉사한다. 관계 기관으로부터 비영리법인 고유번호를 발급받아 정상적인 학교로 인가를 받았다”고 귀띔했다.
교회가 마을에서 감당해야 할 가장 좋은 길을 고민하다 시작했다는 희망학교는 이처럼 삶의 궁극적인 희망을 발견하고, 지상에서의 희망뿐 아니라 하늘의 희망을 선물하고 있다. 그렇다면, 죽변하늘소망교회는 이러한 시설을 마련하기 위해 어떻게 준비했을까.
■ <재림마을 뉴스센터>와 <교회지남>은 [연중기획] ‘희망 2020 – 섬기는 교회’ 탐방 시리즈를 공동 연재합니다. <재림마을 뉴스센터>는 선교가 실제 이뤄지는 현장을 생생한 스케치 기사로 전달하고, <교회지남>은 이러한 사례를 다른 교회에서 접목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준비하고, 어떤 점을 유의해야 하는지 살펴봅니다.
성인 문해(文解) 교육으로 희망을 선물하는 영남합회 죽변하늘소망교회의 이야기는 <교회지남> 11월호 ‘희망 2020 – 섬기는 교회’ 23편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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