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청년 카이가 삼육대후문서 호떡을 굽는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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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태 기자
kbtlove@kuc.or.kr
입력 2018.11.16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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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강애초록뜰’ 천명애 사장의 유학생 사랑법 ... 자비로 장비 대여도 선뜻
이곳에 얼마 전부터 호떡가게가 문을 열었다. 겉보기엔 여느 포장마차와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낯선 풍경이 연출된다. 호떡장수가 베트남사람이다. 여청년 1명과 남청년 2명이 오전 10시부터 오후 7시까지 번갈아가며 불판 앞을 지킨다. 시작한 지 벌써 3주가 넘었다. 이들은 삼육대학교 한국어 과정에 재학 중인 유학생. 한 사람이 하루 3시간씩 번갈아 가면서 일하고, ‘알바비’를 받는다.
가난한 유학생인 이들이 쏠쏠하게 호주머니를 채울 수 있었던 건 순전히 ‘섬강애초록뜰’ 천명애 사장 덕분이다. 이들은 천 사장이 ‘고용’한 아르바이트생이다.
“제가 다니는 묵동제일교회에 올 봄부터 베트남 학생들이 많이 출석하기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20-30명 정도 모였죠. 시간이 지나면서 요즘에는 그렇게 많이 오지는 않아요. 하지만 이 친구들은 아주 성실하게 매주 교회에 나오고, 목사님께 성경을 배우고 있어요. 너무 대견해서 돕고 싶은데, 마뜩하게 할 만한 게 없더라고요. 고민하던 중에 ‘가게 앞에서 호떡을 구워 팔면 어떨까’ 생각해서 시작 했어요”
천 사장은 먼 이국에 와서 고생하며 공부하는 중에도 열심히 교회에 나오는 학생들에게 무언가를 베풀고 싶었다. 직접 사비를 들여 전용 포장마차와 장비를 업체에서 대여했다. 반죽도 사고, 호떡 굽는 법도 가르쳤다. 유학생들을 위해 손수 ‘일자리 창출’을 한 셈이다. 이후 학생들은 수업이 없는 시간이면 이곳에서 일을 한다. 아르바이트를 하고 싶어도 의사소통이나 방법을 몰라 쩔쩔맸던 이들에게는 여간 고마운 일이 아니다.
호떡을 만들어보기는커녕 본 적도 없었을 이들이 잘 구울 수 있을까 걱정했지만, 이제는 마음이 놓인다.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밀가루 반죽을 빚어, 적당히 설탕을 넣고 불판에 굽는 손길이 능숙하다. 달달한 냄새와 함께 노릇노릇 익어가는 호떡이 절로 군침이 돌만큼 먹음직스럽다.
“사실 저도 처음에는 걱정이 많았어요. 아무리 취지가 좋아도 돈을 받고 파는 건데, 맛있어야 하잖아요? 그런데 생각보다 기술도 빨리 익히고, 잘하더라고요. 여학생은 저도 깜짝 놀랄 정도로 센스 있고, 꼼꼼해요. 세 학생 모두 착실해서 제 입장에서는 고맙답니다”
속 깊은 이야기는 나누지 못해도, 사고파는 데는 무리가 없을 정도의 한국어구사를 할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돈계산도 실수 없이 척척이다. 장사 초반에는 낯설어하던 손님들도 이제는 익숙해졌다. 이야기를 건네 들은 학생과 교수들은 일부러 여기까지 내려와 사 먹기도 한다. 천 사장은 그런 그들이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다.
달콤하고 쫀득한 호떡은 한 개에 1000원. 5개를 사면 1개는 덤으로 얹어준다. 하루에 보통 150개 정도 팔리는데, 천 사장의 인심만큼이나 넉넉하다. 누군가는 빈대떡만하다고 하고, 누군가는 보름달만하다고 한다. 아무튼 다른 집에 비해 두 배는 돼 보인다. 맛도 일품이다. ‘국가대표 명품 호떡’이라는 홍보문구가 허튼소리가 아니다.
하지만 염려도 있다. 언제까지 계속 할 수 있을지가 제일 큰 고민이다. 무엇보다 점점 추워지는 날씨가 관건이다. 한국 사람이야 추운 날 따끈한 호떡을 ‘호~호~’ 입김 불어가며 먹는 게 별미지만, 생전 이런 추위를 경험해보지 못한 베트남 학생에겐 너무 매섭다. 그나마 잠시 짬이 나면 가게 안으로 들어와 몸을 녹일 수 있지만, 장사를 하려면 시린 발을 동동 구르며 찬바람을 맞아야 한다.
지금은 학기 중이라 매상이 괜찮은 편이어도, 곧 방학을 하면 손님이 얼마나 있을지 신경 쓰이는 건 어쩔 수 없다. 장비 임대료와 재료비를 제하고 나면, 3명의 학생 아르바이트비를 감당할 수 있을지 현실적 고민이 든다.
가게 앞에서 하루 종일 냄새가 나고, 기름도 튀기 때문에 임대업자인 천 사장 입장에서는 건물주의 눈치가 보이기 마련이다. 속 모르는 사람은 “가게 이미지 헤치는 거 아니냐”며 이제 그만 하라고 손사래를 치지만, 천 사장은 그럴 수 없다.
생전 처음 겪어보는 추위에도 오들오들 떨어가며 호떡을 굽는 학생들을 생각하면 여기서 멈출 수 없다. 그건 너무 야박한 것 같다. 기름이 튀고, 냄새가 밴 건 나중에 깨끗이 청소하면 된다는 생각이다. 사실 그런 건 크게 개의치 않는다. 건물주가 아직까지는 아무 말이 없어 다행이다. 이것저것 생각하면 참 감사한 일이다.
학생들은 그런 천 사장이 고맙기만 하다. 지난 4월 한국에 왔다는 카이 군은 “(호떡 굽는 게)어렵지 않고 재밌다. 손님들이 맛있다고 칭찬하면 기분이 좋다. 우리도 호떡 좋아한다. 맛있는 간식이다. 추위가 제일 힘들다. 아직 본격적인 겨울은 시작도 안했다는데, 여기서 더 추워지면 어떨지 벌써부터 걱정이다. 꿈이 한국어통역사인데, 열심히 공부해서 꼭 자격증을 따고 싶다. 우리에게 기회를 주신 사장님이 정말 고맙다”고 말했다.
천 사장에게는 바람이 있다. 바로 이들이 한국에서 자신의 미래를 개척하고, 영생의 소망을 발견해 자국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이 아이들이 저마다의 꿈을 안고 여기까지 왔는데, 이곳에서 열심히 공부해서 목표를 이뤘으면 좋겠어요. 무엇보다 세상의 학문뿐 아니라, 영생의 소망도 함께 배우고 깨닫길 바라죠. 훗날 우리는 잊더라도, 예수님의 사랑은 잊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제일 중요한 건 건강하게 돌아가는 거죠!”
오늘 저녁에도 이 작은 포장마차에는 베트남 청년들이 굽는 호떡을 맛보기 위해 손님들의 발걸음이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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