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기획] 청년, 길을 묻다 – 이학봉 목사 편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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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태 기자
kbtlove@kuc.or.kr
입력 2019.01.25 0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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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이 시대의 ‘어드벤티즘’을 고민하다 ... “예수와 같은 마음을 품고”
△‘남은 무리’라 하는 재림교회와 재림성도의 정체성 △재림신앙과 삶 △교회의 미래와 청년 등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재림청년의 고민을 들여다보고, 신앙의 본질과 올바른 시대정신을 조명하기 위한 취지에서입니다.
인터뷰어 ‘청년’은 길을 묻고, 인터뷰이 ‘중진’은 이에 대한 방향과 지혜를 제시하는 대화식 기사입니다.
첫 회로 삼육대 대학원 상담심리학과에 재학 중인 주지향 양이 여수요양병원장 이학봉 목사를 만나 이 시대의 재림성도, 재림청년이 갖춰야 할 ‘어드벤티즘’에 대해 묻고, 그 의미와 구현 방안을 들었습니다. - 편집자 주 -
▲ 안녕하세요? 2019년 한 해가 시작됐습니다. 먼저 <재림마을 뉴스센터> 독자 여러분에게 새해인사를 부탁드립니다.
- 안녕하십니까? 새해 아침에 일궤십기(一饋十起)라는 말씀으로 여러분께 문안드립니다. ‘한 번 대접하기 위해 열 번을 일어난다’라는 뜻입니다. 사랑의 기쁨, 섬김의 기쁨 그리고 성자의 기쁨을 담은 사자성어입니다. 우리 병원 직원들과 연초에 나눈 덕담이기도 합니다.
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는 말은 어쩌면 ‘내가 그만큼 완성됐다’라는 말일지도 모릅니다. 성경적으로 표현한다면 ‘오리를 가자하면 십리를 가주는 마음’이랄까요? 이런 마음으로 얻을 수 있는 기쁨을 모든 재림성도, 특히 청년 여러분이 올 한 해 동안 넉넉하게 누리시길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 사는 세상이 더욱 따뜻해질 것으로 생각합니다. 즐겁게 사십시오.
▲ 오늘 저희가 <청년, 길을 묻다> 시리즈를 시작하며, 여러 가지 신앙과 삶의 주제 중에 어떤 말씀을 여쭐까 생각하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재림성도의 삶과 정체성에 대한 조명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어서’ 어드벤티즘에 대해 함께 이야기를 나누기로 했습니다. 우선 어드벤티스트 – 재림교인 – 그는 과연 어떤 정체성을 지닌 크리스천인가요?
- 아주 좋은 주제입니다. 많은 사람이 재림교회의 정체성에 대해 다양하게 언급합니다. 모두 일리 있는 주장입니다. 저 역시 ‘재림교회의 정체성을 어떻게 이해할까’ 개인적으로 매우 많은 고민을 한 사람 중 하나입니다.
재림교회의 정체성은 그 태동의 역사에서 읽어볼 수 있습니다. 중세역사가 종식되는 18세기에 ‘프랑스 혁명’이 일어납니다. 이를 기점으로 그동안 견고했던 봉건주의와 왕권사회가 몰락하고, 처음으로 시민사회가 등장하죠. 그러면서 사회에 대한 모든 구조가 변혁됩니다.
당시 시민사회의 기초를 이룬 게 ‘인간이성’이었습니다. 이성사회 자연과학의 발달로 ‘르네상스’라는 문예부흥이 일어나고, 사람들은 유토피아 건설을 기대했습니다. ‘인간의 이성은 가장 완벽한 세상을 만들 수 있다’ ‘신의 세계는 계급적이었다’ ‘성직자는 모든 부를 소유하고, 권력을 독점했다’ ‘시민들이 그에 맹종하는 사회는 하나님이나 인간이 추구하는 사회가 아니다’라며 유토피아를 꿈꿨습니다. 그러나 결국 마녀사냥, 공포정치 등의 비극으로 이어지며 디스토피아를 경험하고 맙니다.
이후 많은 사람이 신대륙으로 이주해 갑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미래에 대한 불안과 불안정으로 사회가 혼란을 겪고, 절망과 방탕이 만연합니다. 유럽이나 신대륙으로 간 개척자들도 생존을 위해 인디언과 싸워야 하고, 서부를 개척하면서 탈취와 약탈을 일삼았습니다. 부의 사회를 꿈꾸면서도 거기에는 온갖 혼란과 절망이 가득했습니다.
한 세대가 지날 즈음, 사람들의 마음에 자연스럽게 ‘이게 과연 우리가 바라던 미래인가’ ‘이게 희망의 나라인가’라는 반문이 일게 됩니다. 그런 와중에 ‘하나님은 이 사회를 어떻게 말씀하고 계시는가’라는 관심이 생겨납니다.
‘성경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초기 기독교 근본주의는 이러한 종교사회운동 가운데서 일어납니다. 성경을 버렸더니 그 사회가 안전하지 못했다는 거죠. 1830년대 윌리암 밀러도 이러한 불안정한 사회를 보면서 ‘하나님께서는 어떤 미래를 약속했을까’에 대한 관심을 성경 예언에서 찾게 되었고, 깊이 연구합니다.
재림운동은 이런 배경에서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희망을 배경으로 일어난 종교사회적운동이 됩니다. 특별히 성경에서 사회적 절망을 희망으로 바꿔내려는 열망이 그 시대의 공감된 희망이 되었죠. 즉, 재림운동은 ‘희망운동’으로 정의할 수 있겠습니다. 정체되고 불안정했던 사회문화가 ‘그리스도의 재림’이라는 희망으로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알코올중독자가 술을 끊고, 파괴된 관계를 개선해 삶의 성숙을 이루고, 숭고한 시대적 가치를 한 번 더 생각하는 희망운동으로 발현되었습니다. 비록 1844년 10월 22일, 기다렸던 재림은 실패했을지라도 그 희망의 정신을 품고, 이어 온 무리가 재림교회를 형성합니다. 따라서 재림교회의 정체성은 “절망하는 시대에 희망의 빛을 찾아 비춰주는 사람들”이라고 정의하고 싶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사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우리가 성경에서 더 밝은 희망을 찾아 제시하지 못한다면 재림교회의 정체성은 없는 것이나 다름없죠. 만약, 과거 어떤 시점으로 돌아가거나 신앙행위만을 강조하는 게 정체성이라고 이해한다면 오히려 정체성의 혼돈 속에 있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 ‘절망하는 시대에 희망의 빛을 찾아 비춰주는 사람’이라는 정의가 매우 인상적입니다. 제가 과연 그렇게 살고 있는지 되돌아보게 하는데요. 그렇다면, 우리가 지닌 ‘어드벤티즘’은 과연 무엇을 말하는 걸까요?
- 아시다시피 용어로 ‘The Advent’는 ‘예수의 강림’을 의미합니다. 그를 기다리는 사람들, 다시 말하면 예수의 강림이나 그를 기다린다는 뜻은 이 세상의 완성이나 궁극적 승리, 한 개인의 희망이라기보다는 이 세상의 희망과 완성은 언제 이뤄지는가에 예수로 더 큰 꿈을 꾸고 풀어가는 사람을 의미할 것입니다. 저는 그런 사람이 바로 ‘Adventist - 예수재림론자’라고 생각합니다.
단순하게 종교적 종말을 기다리는 사람이 아니라 ‘완성’ ‘승리’ ‘행복’을 품고 꿈꾸는 사람들, 예수로 인해 희망이 들끓는 사람들, 그 희망을 현실로 나타내려고 하는 사람들, 그게 바로 ‘Adventist’의 진정한 의미라는 것입니다.
재림청(소)년을 일컬어 흔히 ‘Adventist Youth’(AY)라고 하죠. 그런데 이게 하나의 종교적 활동에 그치면, 어드벤티즘의 본성적 이해에 미치지 못하고 말겁니다. 예수로 말미암아 완성될 미래와 삶을 꿈꾸는 사람이 바로 재림청(소)년입니다. 이게 훨씬 더 정확한 성서적 표현이고, 이 교회가 가지고 가야 할 AY의 의미입니다. 만약 그들의 마음에 예수와 그의 나라가 희망이 되어 들끓지 않는다면 진정한 AY가 아니죠. 이름 따로, 삶 따로 일테니까요.
어드벤티즘에 대한 바른 이해를 한다면 우리 마음은 설레고, 꿈꾸게 되고, 역동적으로 활동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게 명료하게 정의되지 않으니까 자꾸 보이는 것에 함몰되지 않나 되돌아보게 됩니다. 진정한 어디벤티즘이란 예수와 같은 마음을 품고, 예수가 희망하는 나라를 위해 아름답게 사는 사람들의 정신입니다.
▲ 그렇다면, 그것은 현대 한국사회에서 어떻게 구현할 수 있습니까?
- 제가 개인적으로 존경하는 분인 김기곤 목사님이 과거 한국연합회 청소년부장으로 봉사하실 때 그분의 어드벤티즘이 ‘자랑스러운 재림청년’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랑스런 재림청년, 진리의 말씀 따라 순종하며~”라는 노래도 있었죠. 이런 이상을 우리 사회에서 어떻게 실현해 갈 것인가가 굉장히 중요한 과제입니다.
사회와 신앙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인지 △공감 △행동 등 3가지 과정이 필요합니다. 어떤 단체나 한 개인이 변화하기 위해서는 제일 중요한 요소가 ‘인지’ 단계입니다. 어떠한 사실에 대한 인지체계가 공감으로 확산되면, 사회를 변화시킬 행동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재림주의’ ‘재림신앙’ 혹은 ‘재림청년’으로 정의할 때 가장 중요한 게 인지과정이라고 강조하고 싶습니다.
새로운 가치를 찾는 일을 해야 할 것입니다. ‘새로운 어드벤티즘이 보여줄 수 있는 가치가 무엇인가?’ ‘종교적, 사회적, 문화적 가치를 포함해서 이를 어떻게 실현할 수 있을까?’라고 묻는다면, 저는 “플랫폼이 필요하다”고 제안하겠습니다.
우리의 가치와 정체성을 바르게 인지하고 있는 재림청년들이 교회 안팎의 다양한 장에서 고민하고 대화하고 그것을 확산해 갈 수 있는 플랫폼이 필요합니다. 거기서부터 또 다른 에너지를 구현해 낼 수 있으리라고 봅니다. 전문적 연구기관에서 시행해야 하겠지만, 의식을 가진 젊은이들이 다양한 장에서 고민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플랫폼에 대한 인식이 필요합니다.
일본 소프트뱅크 회장인 손정의 씨에 관한 유명한 일화가 있습니다. 그는 오다 노부나가를 벤치마킹했습니다. 노부나가는 나가시노 전투에서 철포(조총) 3,000자루를 다이묘(영주)들로부터 모아 가장 강했던 케다군 기마대를 이기고 일본을 통일하게 됩니다. 그는 IT에서도 세상을 바꿀 ‘철포’ 즉 플랫폼을 애플과 연결해서 찾아냈습니다. 미래의 플랫폼이 아이폰과 같은 모바일이라면 차세대 철포는 무엇이 될까를 셈해 본 것입니다. 결론은 초강력 전원장치라고 판단했습니다.
영국의 반도체회사 연구진의 초강력 전원장치에 관심을 가졌고, 33조에 인수했습니다. 이는 일본 IT분야를 이끄는 동력이 되었고,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애플에서 미래 플랫폼을 셈했고, 전원장치의 미래가치에 근거하여 전문기업을 인수한 것처럼 재림청소년들의 미래 플랫폼이 무엇일지를 탐구하고 실현해 가려는 의지와 인식이 이 시대에 필요합니다. 아마 여기서부터 ‘갈 길’과 ‘살 길’에 대한 실행론이 나올 것이라 여겨집니다.
이 시점에서 ‘과연 지금의 재림교회가 미래 재림청년들의 삶의 플랫폼이 무엇인지 탐구하고 실현해 가려는 의지가 있는가’를 짚어봐야 합니다. 그냥 보는 대로 따라갈 것인가 아니면 그들의 마음에 어떤 가치의 플랫폼을 제시할 것인가, 무엇을 얻고 무엇을 버릴 것인가, 어떤 의미의 플랫폼을 보여줄 수 있을지 찾아가는 깊은 노력을 이제라도 시작해야 합니다.
우리 청년들은 지금 많은 고민에 빠져있습니다. 쏟아지는 문제들을 스스로 해결할 수도 없고, 누가 해결해주지도 않죠. 직업도 자신이 알아서 찾아야 합니다. 그러나 신앙은 지켜야 합니다. 때때로 누군가에게는 이게 답이 없는 문제처럼 여겨질 수 있습니다. 재림청년의 미래를 가지고 가야할 탁월한 플랫폼을 만들어 줬어야 했는데, 기성세대가 그걸 못해줬다는 반성을 하게 됩니다.
나아가 앞서 살펴본 재림교회의 정체성이 말하는 것처럼 어드벤티즘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사회적 희망 가치로 나타나야 할 것입니다.‘현 시대의 희망의 빛을 성서에서 밝혀주는 사람들’이라 정의한다면, 한국사회의 어둠이 희망이 되는 일련의 종교사회적운동이 일어나야 하겠지요.
▲ 그렇다면, 그런 플랫폼을 찾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요?
- 결국은 모더니즘 전-후 시대의 차이점이라고 봅니다. 모더니즘 시대의 가치는 한마디로 ‘내가 옳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더 낫다’ ‘나를 따라와라’ ‘우리가 맞다’는 게 기본적 사고였어요. 이것이 모더니즘 시대의 커리어였죠. ‘확신을 갖고 내가 더 맞으니까 와라’ 이것이 존재의 의미였고, 생존의 수단이었습니다.
그러나 다양성이 보장된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에 들어서면서 이런 가치가 무색해 졌습니다. 이제는 ‘나만 옳다’는 주장이 어색하고, 오히려 어울리지 않는 우스운 모습이 되었어요. 더 이상 매력이 없는 거죠. ‘그래. 너 맞는데, 그게 나에게 무슨 의미인데?’라고 반문하게 됩니다. 거기에 매달려 있는 한 더 이상 답이 없는 시대가 된 겁니다.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에는 ‘누가 더 의미가 있는가’ ‘무엇이 더 가치 있는가’ ‘누가 더 희망을 말하고 있는가’가 훨씬 더 중요해졌어요. 재림교회도 사회적으로 아름다운 가치와 희망, 실질적인 의미를 전달하지 않으면 아무도 따르지 않게 될 겁니다. 자신에게 의미도 없고, 희망도 없는데 왜 거기에 시간을 쓰고, 에너지를 들이겠어요?
재림청년들의 마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드벤티즘이 그들에게 진정한 삶의 의미와 신앙적 가치 그리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줘야 합니다. - 다음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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