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기획] 청년, 길을 묻다 - 김기곤 목사 편(마지막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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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태 기자 기자
kbtlove@kuc.or.kr
입력 2019.03.01 0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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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여러분의 고통과 부르짖음을 결코 잊지 않으십니다”
- 앞선 질문과 맥락을 같이한다고 봅니다. 우리는 앞서 재림교회의 존재가치 즉, ‘왜 존재해야 하는가’ ‘존재할 필요가 있는가’를 살폈다면, 이번엔 ‘한국 사회를 위해 우리 교회가 해야 할 일이 구체적으로 무엇인가’를 고민하게 됩니다.
한국은 기독교 국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가톨릭신자까지 포함하면 대한민국에는 1300만 명의 기독교인이 살고 있습니다. 역대 정치 지도자들이나 사회 지도층 인사 중 많은 수가 기독교인이었습니다. 해마다 수천 명의 선교사를 지구촌 곳곳에 파송합니다. 세계에서 손꼽히는 대형 교회 가운데 상당수가 한국에 있죠.
이처럼 기독교 성향이 강한 나라에서, 우리 재림교회가 구체적으로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에 대한 성찰은 필요하다고 봅니다. 유감스럽게도 재림교회는 그동안 그 숭고한 존재가치나 활발한 봉사만큼 사회적으로 혹은 종교적으로 충분한 이해와 인정을 받지 못한 게 사실입니다. 아직도 이단 시비에서 완전히 벗어났다고 볼 수도 없죠. 심지어 우리를 제외시키려는 분위기도 없지 않습니다.
그러나 열등감에 빠져 있어서는 안 됩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한국 사회를 위해 공헌한 일들이 무척 많습니다. 그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가령 교육 분야만 해도 두 대학과 25개의 초.중,고등학교 그리고 영어학원을 통해 날마다 2만 명 가까운 학생들에게 올바른 가치관과 이웃을 위해 어떻게 살 수 있는가를 가르쳐 글로벌 리더로 양성했습니다.
건강 분야는 어떤가요? 한국은 그 어떤 나라보다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고 뜨겁습니다. ‘뉴스타트’로 대표되는 우리의 건강법칙이 얼마나 많은 죽어가는 환자를 살려내고, 질병으로부터 예방하는데 기여했습니까?
이름만 대면 알만한 미디어의 유명 건강정보 프로그램이 재림교회의 건강기별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았습니다. 한국의 중요 방송 프로그램이 삼육대에 와서 배우고, 재림교인 학자들의 이야기에서 아이디어를 얻었습니다. 이러한 활동을 통해 우리 국민들의 건강증진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충분히 자부심을 느껴도 좋은 일이죠.
그런데, 그런 것들을 크게 인식하지 않고 살아갑니다. 물론, 우리가 반성하고 짚어봐야 할 부분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는 일이 별로 없다거나 힘이 미약하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우리에게는 전능하신 하나님이 있습니다. 또한 앞으로 우리 사회를 위해 해야 할 일이 정말 많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면 한국 사회에서 좀 더 인정받는 신앙인이 될 것인가’ ‘어떻게 하면 좀 더 사랑받는 교단이 될 것인가’ ‘어떻게 하면 이웃을 위해 좀 더 많은 봉사를 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시킬까’ 하는 건설적인 고민은 계속 생각해봐야 할 문제입니다.
▲ 말씀하신 대로 교육과 건강, 구호와 봉사 등 많은 부분에서 사회발전에 기여했는데, 여전히 이단시비에 가로막혀 있는 모습이 안타깝습니다. 이 때문에 신앙적 정체성에 혼란을 겪거나 신앙적 자존감이 낮은 일부 청년도 있습니다. 이단시비에 대해 우리가 어떤 마음과 자세로 대응해야 할까요?
- 세계적으로는 재림교회가 아주 건전하고 보수적인 정통 기독교로 인정받고 있죠.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며 열심히 사는 사람들, 이웃과 사회를 위해 봉사하고, 깨끗하게 사는 사람들로 인정합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편견과 오해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지난 역사를 돌이켜보면 우리가 좀 더 성공적이고 공격적으로 했으면 좋았을 것들이 있고, 좀 더 반성해야 할 부분이 있고, 피할 수 없는 문제들도 있었습니다.
한국 기독교 사회에 재림기별이 전파되면서 기성 교인들에게 상당히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특별히 ‘안식일 진리’는 초창기 기독교인에게는 일찍이 들어보지 못한 메시지였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공부하고 주일 성수의 오류를 발견한 많은 사람이 안식일을 지키기 위해 재림교회로 개혁하게 됩니다. 아예 교회가 통째로 개혁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이게 옳고 맞으니까요. 안식일을 구별하여 지키는 게 하나님의 명령이고 계명이니까 말입니다. 그런 일은 지금도 계속 이어지고 있죠.
그런데, 이 과정에서 문제가 벌어집니다. 예컨대 1명의 신자가 재림교회로 개혁하면, 100명의 불편한 사람들이 생기는 겁니다. 만약 어느 교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던 한 신자가 재림교회로 가면 우선 해당 교회 목회자가 소속 교인들을 단단하게 교육시키겠죠. 그러면서 이단이라는 프레임을 씌워 재림교회의 전도를 미혹이나 현혹으로 왜곡시키는 겁니다. 과장해서 강습하게 되죠.
소위 ‘이단감별사’라는 사람들이 등장해 재림교회를 일방적으로 매도하며 공격합니다. 1명이 진리를 찾아 돌아오면 훨씬 더 많은 수의 미워하는 사람들이 생겨난 겁니다. 재림교회의 진리와 정통성에 대해서는 잘 알지도 못하면서 말이죠.
그런데, 이것은 피할 수가 없는 문제입니다. 이런 것이 쌓이고 쌓이다 보니, 그리고 세월이 흘러 100년이 넘다보니 편견이 굳어졌습니다. 이를 없애기 위해서는 좀 더 봉사하고 겸손해야 합니다. 어떤 이들이 이단이라고 한다고 해서 주눅 들거나 움츠러들 필요가 없습니다. 오히려 진리에 확실하게 서 있으면 더 당당할 수 있습니다.
저는 신학자들의 회의에 자주 참석합니다. 그런데 다른 교단의 신학자들이 유독 안식일 문제에 대해서는 거론을 피하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 성경에 너무나도 확실하게 나오기 때문이죠. 안식일이 주일로 왜, 어떻게 변경됐는지 본인들도 매우 잘 알기 때문에 반박이나 대답이 궁색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이단시비에 대해 전혀 위축될 필요가 없습니다. 진리의 편에 굳게 서 있다는 떳떳한 자긍심을 갖길 바랍니다.
▲ 어느 날 베드로전서 말씀을 묵상하다가 2장 9절에 나오는 ‘아름다운 덕’이라는 표현에 시선이 멈췄습니다.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아름다운 덕’은 무엇이며, 오늘을 사는 저희 재림청년들이 그것을 현대 한국사회에서 어떻게 구현할 수 있을까요? 그를 위한 재림청년의 역할은 무엇인가요?
- 베드로전서 2장에서 말하는 ‘아름다운 덕’은 인간의 덕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왜 우리를 부르셨는가’ ‘왜 우리를 제사장으로 부르셨는가’라는 물음에 하나님의 아름다운 덕을 이 세상에 전파하라는 사명으로 우리를 부르셨다는 말씀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하나님의 사랑과 희생, 그분의 완전한 품성과 인간을 향한 구원을 한데 묶어 ‘하나님의 덕’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저는 재림성도야 말로 이 아름다운 ‘하나님의 덕’을 세상에 전파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춘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계명(안식일)도 잘 지키지 않고, 부절제하며 순종하지 않는 이들이 어떻게 그리스도인이라고 자임하며 하나님의 덕을 전파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 순종해야 그 덕을 전할 자격이 있죠.
새로남교회라는 곳에서 몇 년 동안 예식담임으로 봉사한 적이 있습니다. 이곳은 다른 교단에서 재림교회로 개혁한 분들로 이뤄진 교회입니다. 신자의 대부분이 기성 교회를 다니다 성경을 깊이 연구해 진리를 깨닫고, 재림교인이 된 분들입니다. 그들에게 침례를 주면서 간증을 들을 기회가 많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한결같이 “재림교회에 와서 처음으로 참된 하나님을 깨달았다”고 말했습니다. 안식일 기별과 영혼불멸, 천당과 지옥 등 성경에 감춰진 진리를 발견하는 것도 기뻤지만, 이제야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올바르게 알게 됐다는 겁니다.
지금까지 수십 년 동안 신앙을 했고, 교회에서 직분을 맡아 봉사했고, 방언을 했지만 여전히 “치는 하나님”으로 오해하며 살아왔다는 고백을 했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을 지옥에 빠뜨리는 무섭고 두려운 하나님을 믿어왔다는 겁니다. 날마다 새벽기도도 빠지지 않고 다녔지만, 기복신앙에 젖어 있었다는 겁니다.
그런데, 재림교회에서 하나님의 참된 품성과 덕을 깨달았다고 말합니다.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목숨을 바쳐 돌아가신 예수님의 사랑을 뒤늦게 깨닫고, 침례를 받는 감격을 간증했습니다. 이는 우리 교회가 한국 사회와 기독교에 여전히 해야 할 일이 많다는 걸 보여줍니다. 비록 전체 인구의 약 28%나 되는 사람이 하나님을 믿지만, 그들이 그분을 오해하며 교회에 다니고 있는 겁니다.
한국 기독교를 연구하는 종교학자들 중에 한국 기독교인들이 통성기도를 하며 “주여! 주여!”하고 부르는 그 하나님이, 무당이 부르는 신과 무슨 차이가 있는지 잘 모르겠다며 비판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올바른 하나님의 덕, 아름다운 하나님의 품성, 참된 하나님의 사랑을 가르쳐야 할 엄숙한 사명과 책임이 재림교회에 주어져 있습니다. 이는 무척 중요한 일입니다.
▲ 그러한 사명을 감당할, 현실과 미래를 고민하는 이 시대의 재림청년들에게 용기의 말씀을 전해주세요.
- 우리 청년들에게도 많은 갈등이 있을 겁니다. 표준과 이상은 높고, 현실은 그렇지 못하니 고민이 클 겁니다. 어떤 면에서는 재림교회의 매우 보수적인 교리와 정서가 현대사회와는 잘 맞지 않는 것 같은 괴리감이 들기도 하죠. 때때로 너무 극단적으로 보여 마음에 동요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세상은 화려하고, 우리는 초라하게 보일 때도 있죠. 신앙 때문에 좋은 직장이나 결혼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기도 합니다. 열심히 공부했지만, 자격시험이 안식일에 걸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얼마나 갈등과 고민이 많겠습니까? 과거에 저도 그런 과정을 겪었기 때문에 그 외로움을 잘 압니다. 그래서 더 마음이 아프고 공감이 됩니다.
제가 삼육대 총장 재직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한번은 교수회의를 하면서 램넌트 사중창단을 초청해 음악회를 했습니다. 아주 감동적인 시간이었죠. 순서를 마치면서 사회자가 제게 마지막 기도를 부탁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기도를 하면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 자리에 있던 분들이 ‘왜 갑자기 총장이 눈물을 보이나’라고 의아해 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저는 사실 기도하러 나가기 전부터, 그들이 노래 부르는 모습을 보면서 이미 마음속으로 울고 있었어요. 그들의 노래를 들으면서 지금까지 100년이 넘는 세월동안 이 교회를 지킨 수많은 재림성도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진리를 지키고, 교회를 보호하고, 신앙을 고수하기 위해 자신의 이익과 명예를 포기하고 버려야 했을 고통을 생각하니 절로 눈물이 났습니다.
이 시간, 재림청년들을 위해 위로의 말씀을 드리자면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그 모든 고통과 부르짖음을 단 하나도 잊지 않으신다는 겁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이 남몰래 흘린 눈물을 기억하십니다. 은밀한 중에 보시는 아버지께서 여러분의 신음을 들으시고, 갚으실 겁니다. 그러니 용기를 잃거나 포기하지 마십시오. 아무리 어려운 일이 있더라도 주님께 매달린다면, 반드시 승리를 주실 겁니다.
요한복음 1장에 보면 빌립이 친구 나다나엘을 예수님께 데리고 옵니다. 나다나엘은 “갈릴리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며 의심하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나다나엘을 보자마자 “보라, 참 이스라엘 사람이로다.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자기 출신을 무시하고 오는 사람에게 오히려 칭찬을 하십니다. 생전 처음 만나는 사이인데 말입니다.
나다나엘이 “주님이시여, 저를 어떻게 아십니까?”라고 깜짝 놀라 묻습니다. 예수님께서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을 때 내가 너를 보았노라”고 말씀하시죠. 그 순간, 나다나엘은 예수님 앞에 완전히 엎드려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하며 제자가 됩니다.
나다나엘은 무화과나무 밑에서 혼자 울며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아무도 보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하나님의 아들이 세상의 외로움을 홀로 감당하는 자신을 보고 계셨다는 생각이 들자마자 즉각 예수님 앞에 엎드려 제자가 되기로 결심한 것이죠.
재림청년뿐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는 저마다의 ‘무화과나무’가 있습니다. 아무도 알아봐 주지 않고, 돌보지 않는 외롭고 고통스러운 사연이 있습니다. 때때로 부모나 형제도 몰라주고, 친구에게도 내색할 수 없는 무화과나무가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혼자 있다고 생각하지 말고, 나다나엘의 곁으로 오신 예수님을 떠올려 보십시오. 하나님의 아들이 오늘 내 곁에, 내가 처한 문제와 함께 계신다고 생각하면 따뜻한 위로와 용기가 생길 겁니다. 그분은 어떤 상황에도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 긴 시간동안 재림청년의 가치관, 사명에 대한 깊이 있는 말씀을 전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마지막으로 교회와 성도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으면 해 주십시오.
- 한국의 재림성도, 특별히 재림청년들이 ‘우리처럼 멋있게 사는 사람이 없다’ ‘우리는 세상의 운명을 거머쥔 사람’이라는 큰 설렘을 안고 살아가면 좋겠습니다.
이건 단순히 추상적인 말이 아닙니다. 세 천사의 기별을, 하나님의 마지막 기별을 세상에 전파해야 된다는 건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운명을 짊어진 것이거든요. 높은 신앙적 자존감을 갖고, 어깨를 당당하게 펴고, 감사하며 기쁘게 살면 좋겠습니다.
많은 갈등과 고민이 있을지라도, 세상의 운명을 거머쥔 사람에 걸 맞는 높은 꿈과 이상을 갖고 살길 바랍니다. 벌써 3월이 시작됩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기도와 소원을 들이시고, 이뤄주시길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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