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기획] 청년, 길을 묻다 - 조문양 교수 편(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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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 - 김범태 기자
kbtlove@kuc.or.kr
입력 2019.07.26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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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CCM의 문제는 그것이 세속문화라는 데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고린도후서 6장15절 말씀을 소개합니다.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CCM은 그리스도교회 예배와는 상관없는 음악입니다.
▲ 아울러 ‘찬미가와 CCM이 공동 발전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부탁드립니다.
- 이에 대한 것은 이미 앞서 드린 말씀 중에 포함이 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 글을 처음 읽으시는 분들을 위해 다시 정리해 말씀드립니다.
어떤 분은 ‘CCM이 죄인가?’라고 질문합니다. 세상에는 죄와 선으로 설명되지 않는 것이 많죠. 성경에 “주홍빛 같은 죄”라는 말이 있습니다만, 붉은 빛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아름다운 색깔일 뿐이지 죄는 아니죠.
그리고 기타(guitar)를 애용하시는 젊은이 중에서 “기타가 죄입니까?”라는 질문을 많이 하십니다. 기타 역시 죄가 아니고 악기일 뿐입니다. “타악기가 죄입니까?”라는 질문도 같은 맥락의 것입니다. 타악기 역시 죄가 아닙니다. 붉은 색은 하나님의 창조하신 아름다운 색깔 중 하나이며, 기타는 사람이 만든 악기이지요.
그러나 CCM이 죄가 아니기 때문에 예배음악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논리는 성립이 안 됩니다. 다만 CCM은 기독교 예배와는 상관없는 음악일 뿐입니다. CCM은 교회가 수용할 수 없는 세상문화의 하나일 뿐입니다. 그것이 ‘죄냐?’ ‘선이냐?’라는 이분법적 논쟁은 자칫 감정싸움으로 번질 위험성이 있습니다. CCM 찬송 현장에서 일어나는 눈물의 감동이 성령감동이라고 주장하기도 하지요.
이에 대한 기별이 예언의 신 <가려 뽑은 기별> 2권 1장 2항 <초기의 광신주의가 반복될 것임>과 3항 <거룩한 육체에 관한 교리> 26-44쪽 에서 아래와 같이 경고하고 있습니다.
1890년 “인디아나주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에 대하여 그대들이 묘사한 것과 같은 일들이 집행유예 기간이 끝나기 직전에 있을 것에 대하여 주님께서 나에게 보여주셨다. 온갖 기괴한 일들이 벌어질 것이다. 큰 소리로 외치며 드럼과 요란한 음악소리가 들리며 춤추는 광경을 재현할 것이다. 이지적인 인간의 감각들은 혼란을 일으켜 올바른 결정들을 할 수 없게 된다. 그런데 저들은 이러한 현상을 성령의 역사라고 부른다.”
선지자는 이어서 다음의 기별을 기록하고 있죠.
“성령께서는 결코 잡음의 광태와 같은 그러한 방법으로 자신을 나타내지 않으신다. 이것은 이때를 위한 순결하고 성실하고 고상하고 고결하며 성화시키는 진리를 무력하게 하기 위해 만든 교묘한 방법을 은폐시키려는 사탄의 발명품이다”
CCM과 같은 광란의 음악이 재림 직전에 일어날 것이라는 예언은 CCM으로 인해 지금 우리들 눈앞에서 성취되고 있는 것입니다. 위에서 언급된 ‘인디아나주에서 벌어진 일들’이란 1890년 인디아나 주 장막부흥 집회 때에 일어났던 광란의 음악을 말합니다. <가려 뽑은 기별>을 꼭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CCM은 교회와 상관없는 음악입니다. CCM과 찬미가의 공존발전은 불가능합니다.
1990년 삼육대학 합창단이 대총회의 초청을 받아 총회 안식일 아침 찬양시간에 특별 연주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 때는 미국 내 여러 곳에서 CCM 찬양이 일어나고 있었으므로 CCM 찬양예배에 대한 논란이 한창이었죠. ‘CCM에 대한 재림교회의 입장이 무엇이냐’는 저의 질문을 받은 총회기간 음악 담당자는 “기다려 보자”라는 유보적인 입장이라는 대답을 했습니다.
그때는 이미 대총회가 제정한 <음악지침[1970년대 지침]>이 있었기 때문에 재림교회의 CCM에 대한 입장은 분명한 때였습니다. 아마도 CCM 찬반 논란이 사탄에게 틈을 주어 교회 분열의 빌미가 되지 않게 하려는 신중한 조치로 생각합니다. 당시 재림교회 안에 CCM 중심의 목회로 성공하고 있었던 교회 중 하나가 LA에서 두어 시간 거리에 있었습니다.
귀국 도중 저는 어느 장로와 함께 그 교회를 방문했습니다. 우리 일행을 태운 차가 교회 어귀에 들어섰을 즈음, 쿵쿵거리는 저음의 음향이 들려왔습니다. 그 소리는 유흥장 앞을 지날 때 들리는 그런 음향이었죠. 주차장으로 들어가니 어깨에 환영의 띠를 두른 친절한 안내원들이 우리를 맞이해 주었습니다. 미국이라는 나라에서는 쉽게 만날 수 없는 광경이었죠. 안내를 받아 교회에 들어갔습니다. 교회 안은 복도 바닥에 박혀 있는 미등만 켜져 있었기 때문에 캄캄했어요. 손전등을 가진 안내집사를 따라 자리를 잡았습니다.
차차 동공이 열리면서 강단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뒤에는 타악기 세트가 자리를 잡았고 그 앞의 강대상에는 마이크를 든 바리톤의 인도자가 찬미를 인도하고 있었습니다. 풍부한 볼륨의 반주와 함께 인도자의 목소리가 교회를 가득 채운 가운데 회중들은 몸을 좌우로 흔들면서 찬미를 부르고 있었지요.
우리도 찬미를 같이 불렀는데 이상한 것은 우리들 옆에서 같이 찬미 부르는 사람들이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 것이에요. 회중들은 찬미 인도자의 압도적인 노래에 대리만족하고 있는 듯이 보였습니다. 말씀드렸듯이 그 교회는 교인 수가 급속하게 팽창하는 소문난 교회 중의 하나였는데, 당시 교인 수는 1500명이었는데, 제 기억이 맞는다면 250여명의 교인이 1500명으로 늘어 난 기간은 5년이었다고 했습니다.
그 후 30여 전이 지난 오늘, 그 교회 소식은 듣지 못하고 있습니다. 만일 그날 이후 CCM 찬송 위주의 교회들이 그처럼 팽창했다면 얼마나 좋은 결과가 우리 눈앞에 나타나고 있겠습니까?
성경에는 오늘날 CCM축제 예배를 능가하는 축제예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춤과 환호성이 뒤범벅됐던 예배를 성경에서 찾을 수 있는데, 이스라엘이 홍해를 건넜을 때에 미리암의 북춤으로 시작된 ‘축제예배’와 법궤를 운반할 때에 다윗의 춤이 곁들어진 ‘길거리 축제예배’입니다.
이들은 CCM 예찬론자들의 방패막이가 되는 축제예배의 모형인데 선지자 화잇은 이 축제예배에 나타난 춤을 거룩한 춤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홍해 바닷가에서의 감사와 기쁨에 못이긴 찬송축제와 다윗의 길거리축제예배의 감동을 어느 누가 감히 성령감동의 결과가 아니라고 부인할 수 있겠습니까?
미리암의 축제예배나 다윗의 축제예배에 사용된 음악요소들은 모두 이스라엘의 거룩한 음악요소였다고 생각합니다. 결단코 애굽이나 블레셋의 신들을 예배하는 음탕한 축제음악을 빌려 쓰지 않았죠. 가나안에 정착한 이스라엘의 민속음악 축제가 성경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시편 68편 24절과 25절을 소개합니다.
“하나님이여 저희가 주의 행차하심을 보았으니 곧 나의 하나님, 나의 왕이 성소에 행차하시는 것이라 소고 치는 동녀 중에 가객은 앞서고 악사는 뒤 따르나이다”
우리는 이 말씀에서 아름다운 거리축제 광경을 읽을 수 있습니다. 특히 25절의 “소고 치는 동녀 중에 가객은 앞서고 악사는 뒤따르나이다”에 주목하기 바랍니다. 이 광경은 성소로 향하는 즐거움이 넘치는 왕의 행차 광경입니다. 즐거운 왕의 행차인데 성소로 가는 길거리 축제입니다. 이 행사는 하나님 앞에서 있었던 축제였습니다. 이스라엘의 민속 음악 자체가 모두 종교와 연관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이스라엘의 문화는 저들을 둘러싸고 있었던 변방 나라들의 문화와는 별개의 것이었다는 뜻이죠. 물론 성전봉사 제도와는 별개의 예배입니다.
미리암의 축제예배와 다윗의 길거리축제 예배보다 더 강열한 축제예배를 성경을 통해 상상할 수가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재림의 아침에 벌어질 <미리암의 축제>나 <다윗의 길거리축제>를 능가하는 대단한 축제예배일 것입니다. 재림을 맞이하는 어떤 그림처럼 얌전하게 두 팔 들어 구름 타고 오시는 주님을 환영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은 분명합니다. 우리의 구원이 확정되는 그 순간 우리들의 반응은 속옷 사이로 속살이 드러나기까지 열렬한 춤을 추었던 다윗의 춤과 비교가 되지 못할 것 같아요.
CCM의 문제는 그것이 세속문화라는 데 있습니다. CCM은 세속문화에 의한 새로운 교회음악인데 역사상 전무후무한 “기독교 대중음악”입니다. CCM 찬양에서 하나님께 향한 외경심(畏敬心)은 찾기 힘들죠. 방자한 춤사위와 유행가 가수들과 동일한 몸동작으로 노래하는 모습은 교회문화와는 별다른 것입니다. 성경 어디에서도 하나님을 만나는 자리, 예배에서 CCM 가수들의 모습은 찾을 수 없죠. 모세가 하나님께 나아갈 때 시내산 밑에 엎드렸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두려움과 경애심으로 눈을 들어 시내산 정상을 바라보지도 못했습니다. CCM은 예배음악으로는 부적절합니다.
현재, ‘찬미가’와 ‘CCM’ 간의 한 판 결투는 CCM의 완전한 승리로 끝난 상태로 보아야 합니다.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개신교의 각종 TV 채널에서 방송되는 CCM찬양예배 광경을 보면 그 사실을 알게 됩니다. CCM은 앞으로 승승장구해서 교회 전반의 행사를 주관하는 음악으로 발전해 나갈 것입니다. 그것은 이미 인용한 예언의 신에 기록된 예언이 성취돼야 하기 때문입니다.
“인디아나주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에 대하여 그대들이 묘사한 것과 같은 일들이 집행유예 기간이 끝나기 직전에 있을 것에 대하여 주님께서 나에게 보여주셨다” <가려 뽑은 기별 2권 40p>
말씀드린 대로 ‘크리스천 대중음악’(CCM)은 이미 교회 강단을 점령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물론 한국 재림교회는 아직은 그 영향권에 완전히 들어가 있지 않지만, 이대로 방치하면 CCM찬양이 확산될 확률은 대단히 높습니다. 만일 그렇게 되면 재림 직전에 나타날 것이라고 예언된 CCM 찬양에 대한 예언을 성취시키는 데 재림교회도 한 몫 단단히 하게 되는 것입니다. - 다음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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