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MA 수기] 김재원 양의 다시 찾은 해외의료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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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 - 김범태 기자
kbtlove@kuc.or.kr
입력 2019.08.25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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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가 ‘있는’ 마음 VS 그리스도가 ‘없는’ 마음 ... 나는?
무엇보다 앞으로 의료현장에 나서야 할 ‘예비의사’들에게 봉사의 소중함을 피부로 체감할 수 있도록 산교육의 장을 제공한다는 점이 가치 있다.
실제로 많은 참가자들이 “봉사는 물질이나 육체뿐 아니라 마음의 끝자락까지 모두 비우며 헌신하는 것이란 교훈과 진정한 행복의 방법을 터득하는 시간이었다”고 고백한다. 활동을 마칠 때면 오히려 자신이 나눌 수 있는 사랑의 크기가 이것 밖에 되지 않는 점을 아쉬워 할 정도다.
때때로 나약해진 신앙심을 회복하는 ‘선교지’가 되기도 한다. 김재원 양(강릉원주대 치의예과)에게 올 해외 의료봉사가 그랬다. 그는 학교에서, 세상에서 느끼지 못하는 그리스도가 있는 마음이 얼마나 따스한지 이곳에서 느꼈다고 했다. 뜨뜻미지근한 자신의 신앙을 재점검하는 기회가 됐다고 고백한다. 준 것 없이 받기만 하고 돌아왔다는, 그래도 참 행복했다는 그의 참가소감을 정리해 옮긴다.
■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큰 위로가 된 사람들
“그리스도가 없는 가슴마다 선교지이고, 그리스도가 있는 가슴마다 선교사이다”
지난 6월 말, 삼육대에서 열린 전국 재림청년대회 중 1000명선교사 부스에서 나눠주던 부채에 적힌 문구다. 처음엔 그저 꽤 기발한 표현이라고만 여겼다. 내 자신은 둘 중 후자에 속한다고 스쳐지나가듯 생각했는지 모른다.
봉사대 출발 3주전만 해도 올 SMA 봉사대가 필리핀 실랑의 1000명선교사본부에서 진행될 것이라 생각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건 예정에 없던 일이었다. 그만큼 시작부터 많은 변화와 난항을 겪어야했다. 그 때문인지 출발 직전까지 내겐 걱정만 앞서는 봉사대였다.
개인적으로는 올해 총무의 직책까지 맡아, 지난해에 비해 신경 쓸 게 너무 많았다. 고백컨대, 봉사대를 출발하는 마음에 신앙을 위한 자리는 없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그저 별사고 없이 무사히 돌아오길 바랄 뿐이었다.
나는 미적지근한 그리스도인이다. 여느 그리스도인과 같이 이 땅에서 살면서 가끔은 다니엘과 같이 되어보려 노력하기도 하고, 때로는 요나처럼 하나님을 피하고만 싶을 때도 있다. 자주는 배운 대로 계명을 지키고, 또 주로 아는 대로 당연한 듯 세상의 것들을 포기하기도 한다. 그러다 어느 날은 계명을 지켜야 할 이유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확실하지 않은 다른 길을 택할 자신도 없다.
나는 한때 그리스도의 이름을 생각만 해도 눈물이 나는 뜨거운 신앙을 했었고, 어린 시절엔 이상하리만큼 의젓한 신앙을 가졌던 학생이었다. 다른 누군가에 비한다면 물론 그마저도 별 볼일 없을 수도 있겠으나, 적어도 지금의 나와 비교하면 과거엔 굉장히 성숙했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초등학교 5학년 즈음부터였던 것 같다.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기도를 하고 성경을 읽었다. 또 밥을 먹으면서, 수업을 들으면서, 하교길에 버스를 갈아타고 집에 오면서, 친구와 대화를 하면서도 늘 기도했다. 어떤 동기로 그렇게 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이 습관은 꾸준히 고등학교 3학년 때까지 이어졌다.
따라서 다른 모든 것보다 내가 자신 있는 한 가지는 신앙이었다. 또래 아이들이 하지 않는 고민을 할 줄 알았고, 나이에 맞지 않은 위로도 얼추 흉내 낼 줄 알았다. 나를 극심히 미워하는 이를 위해 진심으로 걱정 어린, 사랑의 기도를 할 줄 알았다. 나의 아버지께서는 그 사람조차 사랑하신다는 것을 알았고, 나도 그를 사랑하고 싶었다.
작은 일은 물론 큰일에도 동요하지 않는 평정심을 갖고 있었다. 전지전능하신 절대자이신 나의 아버지께서는 내게 최선이 아닌 것을 허락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던 까닭이다. 더 나아가 다른 이와는 비교할 수도 없는 값진 것을 알고 있다는 생각에 누군가를 시샘하거나 부러워한 적도 없다.
고등학교 생활을 집에서 먼 타지에서, 일반 학교에서 유일하게 나 혼자 신앙을 할 때에도, 내가 신앙을 잃지 않았던 것은 하나님께서 직접 나를 키우셨다는 것 말고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그리스도가 있는 가슴은 참으로 강인하다. 그러나 처음으로 신앙을 잃었다 싶은 때에 나는 그 사실을 미처 알지도 못했다. 시간이 한참 지나서도 모든 것의 시작이 신앙을 잃었기 때문이라는 인식조차 하지 못했다. 그저 마음이 너무 힘들다는 생각뿐이었다.
처음 대학에 진학했을 때, 고등학교 때만큼의 감흥은 없었다. 고등학교에 진학할 때는 다니엘과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일념 하에 결심이란 결심은 제 혼자 다해 떨리고 긴장되는 마음이었다. 그러나 대학에 입학할 땐, 기대감도 두려움도 없이 ‘그저 이 길로 가야하나보다’ 하는 심정이었다.
1년 반이라는 시간은 너무나 빨리 지나갔다. 그동안 말씀을 보았던 시간은 작년 봉사대 기간 전후가 유일할 정도였다. 신앙을 잃었다는 생각이 든 계기는 사람들과의 비교로 인한 괴로움 때문이었다. 올 봉사대에 오기 직전, 여름방학이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즈음이었다.
세상의 모든 사람이 부러웠다. 이 사람의 학력이 부럽고, 저 사람의 성품이 부러웠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외모가 샘났다. 내가 가진 건 어느 것도 자랑스러운 게 없었고, 부끄러운 것 투성이였다. 아무리 사람을 만나도, 멋진 곳에 가도, 맛있는 음식을 먹어도, 새로운 물건을 사도 채워지지 않았다. 오히려 공허함이 나를 가득 채웠다.
그리스도가 없는 가슴은 참으로 나약하다. 어느 누구와 대화를 해도 마음이 채워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를 바꾸기 위한 어떤 시도도 하지 못한 채, 그러한 마음가짐으로 나는 봉사대에 임했다. 책임감만으로 똘똘 뭉쳐, 누구보다 부족한 상태로 봉사대 활동을 시작했다.
누군가 나에게 봉사대에서 어떤 기도를 제일 많이 했냐고 묻는다면, 나는 고민 없이 소그룹 시간을 위해서라고 말할 것이다. 봉사대에 오기 전, 이만큼이나 마음이 약해진 상태에서, 정말이지 다른 대원들 앞에 나서서 소그룹 리더로서 신앙적인 말씀을 나눌 자신이 없었다. 그 당시 내겐 어느 한 점도 아버지의 모습과 비슷한 점이 없었고, 누군가에게 하나님에 대해 말할 여유도 내겐 없었다. 특히나 작년 봉사대에서 가장 은혜로웠던 이 시간을 다른 이들에게 올해, 그것도 내가, 재현해줄 자신은 더더욱 없었다.
“그리스도가 없는 가슴마다 선교지이고, 그리스도가 있는 가슴마다 선교사이다.”
소그룹을 이끌어야 했던 사람으로서 부끄럽지만, 실은 이 기간 동안 나의 마음은 봉사지고, 선교지였다. 처음 봉사대를 가겠다고 마음먹었을 때만해도 나에겐 봉사지에서 나눌 사랑보단 책임감이 우선이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나와는 다른 이들을 보여주셨다. 사랑을 나누는 이들을 보여주셨다. 환자 한 분마다 눈을 맞추고, 그들의 마음을 안아주는 이들을 보여주셨다. 그들과 함께 웃고, 기뻐하고, 또 슬퍼하고, 그들을 안심시켜주는 이들을 보여주셨다.
그런 이들은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큰 위로가 됐다. 다른 이의 마음을 살펴야 했고 살피고자 간 봉사대였지만, 올해는 나의 마음을 살피는 이들뿐인 봉사대에서 나는 받기만 하다 돌아왔다. 그리스도가 있는 가슴은 곁에만 있어도 따뜻하다. 나의 빈 마음을 채워주는 다른 대원들의 사랑을 바라보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옆 사람을 위해 무엇을 하면 좋을지 찾는 분주한 눈동자를 보았다.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는 부지런한 손을 보았다. 무엇을 도우면 좋을까 고심하는 낯빛을 보았다. 남을 위한 애정 어린 기도소리를 들었다. 남을 위해 뛰는 발걸음소리를 들었다. 그렇게 준 것 없이 받기만 하고 돌아왔다. 지난 열흘간 참 행복했다.
나는 내년에도 봉사대에 갈 것이다. 뜨뜻미지근한 나의 마음을 채우기 위해 갈 것이다. 넘치는 것으로는 봉사할 수 없지만, 부족함을 채우시는 아버지의 모습에서 누군가는 은혜 받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핑계 삼아 나는 앞으로 빠짐없이 봉사에 참여하고 싶다. 한 해에 한 번은 꼭 학교에서, 세상에서, 느끼지 못하는 그리스도가 있는 마음이 얼마나 따스한지 다시금 느끼기 위해. 그래서 내 곁의 선교사들에겐 선교지가 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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