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기록적 ‘물폭탄’에 폐허로 변한 신남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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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태 기자
kbtlove@kuc.or.kr
입력 2019.10.08 0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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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이 남긴 상처에 이재민 시름 깊어져 ... 생활터전 초토화
라디오에선 강원영동 지역에 천둥번개를 동반한 돌풍이 부는 곳이 있겠단 일기예보가 흘러나왔다. 실제로 대관령 터널을 지나자마자 강한 빗줄기가 차창을 때렸다. 일부 구간에선 앞이 잘 보이지 않아 비상등을 켜야 할 정도로 장대비가 쏟아졌다. 마치 한여름 장맛비를 대하는 듯 했다.
강릉에서 삼척으로 향하는 고속도로 전광판에는 ‘해안가 너울성 파도 주의’라는 경고문구가 깜빡였다. 동해휴게소에서 바라보는 바다에서는 높이가 수 미터에 이를 것 같은 거친 파도가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쉴 새 없이 밀려왔다 부서졌다.
때마침 핸드폰에 ‘09시20분 동해중부 앞바다(강원북부 앞바다, 강원남부 앞바다, 강원중부 앞바다) 풍랑경보, 어선 출항 금지, 해안가 낚시야영객은 안전지대로 대피바랍니다’라는 안전안내 메시지가 요란하게 울렸다. 이날 동해상엔 풍랑특보가 발효됐다. 기상청은 10~16m/s의 매우 강한 바람과 3~6m의 높은 물결이 일겠다고 알렸다.
목적지인 신남마을과 가까워질수록 태풍이 할퀴고 지나간 상처가 확연하게 눈에 들어왔다. 운전 중에 아찔한 상황이 반복됐다. 동해 톨게이트를 얼마 앞둔 지점의 도로 옆 야산 절개면은 낙석으로 무너져 내려 속도를 줄여야 했다.
근덕면 초곡마을 부근 국도변에는 가지가 꺾이고 뿌리가 뽑힌 나무가 흉물스럽게 쌓여있었다. 밀려든 토사의 무게를 버티지 못하고 무너진 펜스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궂은비가 내리는 가운데서도 중장비가 응급복구 작업에 한창이었다.
국도 7호선 장호터널은 초입까지 토사가 들어차 차량들이 거북이걸음을 했다. 갈남 인근에는 수박만한 돌덩이 수십 개가 도로를 점령해 서행해야 했다. 움푹움푹 패인 포트홀로 인해 운전에 각별히 주의했다. 군데군데 붉은빛 흙탕물이 웅덩이를 이루고 있어 제 속도를 내지 못했다. 대기 중 수증기와 전날 밤 내려간 기온으로 인해 가시거리가 채 200m도 되지 않을 정도로 짙게 낀 안개도 운전을 방해했다.
빗줄기가 거세질수록 내비게이션의 목적지 도착시간은 계속 늦어졌다. 신남마을은 행정구역상 삼척이지만, 삼척 IC와는 약 30Km 더 떨어진 강원도의 끝자락. 경상북도와 경계를 이루고 있다. 해신당공원과 빨간 등대가 그림처럼 예쁜 해수욕장으로 유명하다. 낚시꾼들의 발길도 잦다. 철마다 전국에서 대형 버스로 관광객이 찾아들곤 한다. 하지만 이번 태풍으로 쑥대밭이 됐다.
예배 후 김영일 집사의 안내로 마을을 찾아 내려갔다. 태풍이 남긴 피해는 생각보다 훨씬 깊었다. 순박한 이웃들이 옹기종기 모여 살던 아름답던 마을은 단 이틀 만에 처참한 폐허로 변해버렸다. 어디서부터 손을 써야 할지 모를 정도로 막막해보였다. 무질서하게 쌓여 있는 엄청난 양의 토사와 껍질이 벗겨진 나무들이 당시의 상황을 짐작케 했다. 장화를 신지 않고는 좀처럼 걸음을 내딛을 수 없을 만큼 진흙이 발목까지 푹푹 빠졌다.
이 일대에서 제일 높은 다락골 산자락에서 산사태가 나면서 마을을 초토화시켰다. 양쪽 갈래로 서 있던 집이 거의 다 완파됐다. 주택 7채가 진흙과 자갈에 파묻혀 지붕만 겨우 드러내고 있었다. 1채는 지붕까지 날아가 아예 모습이 사라졌다.
‘굿해피니스 사회복지센터’라는 간판만이 이곳이 불과 며칠 전까지 다양한 봉사활동을 하던 기관임을 알아볼 수 있게 했다. 종이처럼 구겨진 컨테이너는 도로 한쪽에 처박혀 있었다. 쌓인 토사가 족히 3-4m는 돼 보였다. 그 많은 양이 대체 어디서 그렇게 밀려왔는지 쉽게 납득이 가지 않았다.
아랫마을의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바닷가 주변에 세워두었던 차량은 거의 다 침수됐다. 폭우로 불어난 급류에 떠밀려온 차량들이 쓰레기와 뒤엉켜 있었다. 물에 빠지거나 부서진 차를 견인하는 레카차가 경광등을 켜고 어디론가 바삐 이동했다. 방파제 너머 바다엔 아직도 성난 파도가 거칠게 몰아쳤다. 포크레인과 덤프트럭 등 중장비는 쉴 새 없이 흙을 퍼 날랐다. 마을을 가로지르던 하천엔 개울물 대신 시뻘건 흙탕물이 흘렀다.
복구 현장에서는 군장병과 자원봉사자들이 구슬땀을 흘렸다. 지자체마다 직원들을 비상 소집해 피해조사와 응급복구에 대거 투입했다. 우비를 입은 군인들은 땀을 뻘뻘 흘리며 부지런히 삽질을 했다. NH농협 등 자원봉사 단체에서는 따뜻한 차와 간단한 요깃거리를 제공했다. 소형 트럭에서 식수와 생필품 등 구호물품을 나르는 손길도 바빴다. 삽으로 흙을 퍼 나르던 군인들이 “아직도 물이 빠지지 않은 곳이 많다”며 혀를 내둘렀다.
피해주민들은 제 모습을 다시 찾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물에 젖은 장판을 걷어내고, 진흙이 덕지덕지 묻은 가구를 씻어냈다. 가전제품과 가재도구를 정리하고, 쓸 만한 것과 못 쓰게 된 것을 이리저리 분리했다. 물청소를 하면서 냉장고와 조리도구를 부지런히 밖으로 옮겨 말렸다.
한 마을주민은 “날씨가 좋아도 심란한데, 비까지 내려 더 속이 상한다. 진흙이 굳으니 잘 떨어지지도 않는다. 전자기기는 다 바꿔야 할 판”이라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항구 주변에서 건어물상회를 하는 한 상인은 “20년 가까이 장사를 했는데,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며 혀를 찼다. 그러면서도 “다시 일어서야지 어떻게 하겠냐”며 밀려든 개흙을 치워냈다.
김 집사는 만나는 사람마다 “안녕하세요?” 대신 “괜찮으세요?”라고 인사했다. 그는 “그나마 복구를 할 수 있는 집은 다행이다. 토사가 지붕까지 덮친 곳은 아예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빨리 대피해서 인명피해가 없었던 것으로 감사하는 형편이다. 앞으로 정부 보상 절차가 어떻게 진행될지 모르겠지만, 집을 아예 새로 지어야 할 가구가 많다”고 귀띔했다.
교회로 돌아가는 길, 다시 굵은 빗줄기가 내렸다. 복구 작업에 한창이던 자원봉사자들이 원망스러운 듯 하늘을 쳐다봤다. 야속한 날씨는 좀처럼 개일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토사를 가득 실은 덤프트럭은 어디론가 계속 오고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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