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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혜의 interview-e] 최태현 목사 증손녀, 최미현 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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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혜 기자 wisdomble@kuc.or.kr 입력 2024.06.07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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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자의 가슴에 품은 ‘忍’ ... 5대손도 재림신앙 안에
‘한국 재림교회 최초의 순교자’ 최태현 목사의 증손녀인 최미현 집사가 세 자녀와 함께 증조부 묘소에서 기도하고 있다.

출석교회 이름만으로 연락처를 알아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여러 사람의 도움을 받아 그녀의 영어이름이 ‘미쉘’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한국과 미국의 시차를 고려하며 소통하다 보니 연락이 닿기까지 꼬박 나흘이 걸렸다. 


그 어느 때보다 힘들게 만난 인터뷰이는 그래서 더 반갑고 귀했다. 주인공은 ‘한국 재림교회 최초의 순교자 최태현 목사의 증손녀’ 최미현(Michelle Song) 집사다.


마침 자녀들의 홈스쿨 방학을 맞아 남편(송기환 Ki)과 함께 세 자녀(송지훈 Eliyon. 송영훈 Nathaniel, 송혜미 Emilia)를 데리고 한국을 찾았다. 시부모님이 계신 강원도 횡성, 아버지의 모교인 한국삼육고등학교, 삼육대학교에 있는 증조부 최태현 목사의 순교를 기리는 도서관을 방문하기 위해서다. 


최태현 목사의 묘소가 있는 포천재림공원묘원은 기자와 동행했다. 포천으로 향하는 길, 최 집사가 남편과 잠시 통화하는 말투도, 아이들과 나누는 대화도 차 안의 분위기를 한결 따뜻하게 만들었다.

 

서로에 대한 배려와 사랑이 ‘밖으로 뿜뿜’ 하는 느낌이었다. 메신저 프로필사진에서도 이미 느껴진 온도였다. 이들의 삶에는 정말로, 기쁨이 넘치는 듯 보였다. 얼마 전 설교를 통해 들은 말씀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지상의 가정은 하늘의 가정을 상징해야 한다’.

 

그녀는 1981년 최승국 장로와 강영은 집사의 맏딸로 미국 LA에서 태어났다. 그동안 한국에 여러 번 방문했고 14살에는 서울에 2년간 머물며 영어를 가르친 적도 있다. 결혼 후 아이를 낳기 전까지는 미국 테네시주 칼리지데일에 있는 삼육초등학교에서 7년간 교사로 일했다. 첫 아이가 태어난 12년 전부터 지금까지 홈스쿨링으로 아이 셋을 교육하면서도 교회에서는 패스파인더 교사, 어린이합창 지휘, 영어교사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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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집사는 어렸을 때부터 할아버지 최옥만 장로와 증조부 최태현 목사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듣고 자랐다. 


“증조부는 스무살 때까지 침례교회 전도사였고 촉망받는 지도자로 인정받았다고 들었어요. 그런데 어느 날 우연한 계기로 재림교회의 스미스 선교사가 개최하는 장막집회에 2주간 참석하면서 진리를 접했다고 하시더라고요”


최태현 목사는 다니엘서의 예언과 안식일 기별을 깨닫고 재림교회로 개혁했다. 당시 캐나다 출신 침례교회 책임자가 “나는 본국으로 귀환해야 하니 내 뒤를 이어 침례교회를 맡아 달라. 전 재산을 줄 테니 침례교회를 떠나지 말라”고 부탁할 정도로 촉망받는 신학도였다. 하지만 “성경의 진리를 깨달은 이상 세상의 어떤 재물과 명예도 나에게는 중요하지 않다”며 단호히 거절했다. 


최미현 집사는 “1888년은 재림교회에서 아주 중요한 해인 것으로 알고 있다. 존스(AT Jones)와 왜고너(EJ Waggoner)가 대총회에서 재림교회의 핵심 기별인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를 선포하던 해이기 때문이다. 증조부가 이 해에 한국에 태어나신(11월 4일 원산 출생) 것을 우리 가족은 매우 큰 의미로 받아들인다”고 했다.

 

그는 최태현 목사의 8남매(옥선, 옥인, 옥만, 승만, 희만, 옥희, 옥화, 옥련) 중 셋째이자 장남인 최옥만 장로의 손녀다. 


“증조부는 일본 경찰로부터 모진 고문을 받으며 10번이나 기절했다가 깨어나길 반복하셨어요. 고문이 점점 심해지자 할아버지(최옥만)는 흰 종이에 참을 인(忍)자를 크게 적어 동생(최승만)에게 줬고, 증조부가 다른 고문장으로 끌려갈 때 작은할아버지가 옷 속에서 그 종이를 꺼내 펼쳐 보였다고 해요. 증조부는 그 글자를 보고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고문을 끝까지 견뎠지만 결국 1943년, 54살의 나이로 돌아가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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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막내딸 옥련은 12살이었다. 어린 나이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그들이 원하는 대로 교회를 해산하고 신사참배 요구에 서명하고 나서 다시 회개하면 되지, 왜 바보같이 죽은 것이냐”며 원망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나 후에 ‘참된 믿음은 죽도록 하나님께 충성하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고, 아버지의 순교를 자랑스럽게 생각하게 됐다. 


최미현 집사의 아버지 최승국 장로도 틈날 때마다 가족에게 최태현 목사의 순교를 이야기하며 “나도 하나님을 위해 목숨 바칠 일이 생기면 너희 증조부와 똑같은 길을 갈 것”이라고 말하고는 했다.


문득, 증조부의 순교가 그녀에게 어떤 의미인지 궁금했다. 최 집사는 “순교자 집안에 태어난 것은 큰 특권이며 이것을 매우 자랑스럽게 여긴다”고 했다. 그러면서 “부모님께 들었던 증조부의 놀라운 신앙과 충성, 믿음으로 견딘 인내는 내 신앙생활에 큰 버팀목이다. 증조부처럼 하나님을 위해 끝까지 충성하고 싶다”고 밝혔다.

 

그녀는 “아이들도 ‘엄마 아빠를 너~무 사랑하지만 예수님을 더 많이 사랑해요’라고 말한다면서 고조부의 믿음을 잘 전승하려는 것 같아 감사하다”고 덧붙였다.

 

혹, 선교 120주년을 맞은 한국 재림교회 성도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 물었다.


“고문 현장에서 순교한 증조부의 믿음이 우리 가족에게는 물론, 재림성도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리라 믿습니다. 신앙생활을 할 때 만나는 시련과 어려움이 많지만, 세상과 타협하지 말고 하나님을 끝까지 신실하게 믿으며 재림성도만이 가진 진리와 영감의 글을 더 열심히 연구하는 성경학도들이 되면 좋겠어요. 우리 모두 순교자의 삶을 살다가 하늘에서 다같이 만나요”


일정을 마치고 끝인사를 나누기 위해 차에서 내리는데 6살 된 막내아이가 본인 얼굴보다 큰 헤드셋을 끼고 있었다. “성경이야기 듣는 중이에요”라는 최 집사의 설명과 막내아이의 뒷모습이 한동안 자주 떠오를 것 같았다. 최태현 목사의 묘소 옆 돌판에 새겨진 ‘죽도록 충성하라’라는 문구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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