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이제라도 ‘기록의 사역’에 힘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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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태 기자
kbtlove@kuc.or.kr
입력 2019.12.16 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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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 개인의 삶을 신앙유산으로 전승할 기록이 필요하다
고인은 분단 이후 재림교인이 된 (확인 가능한)유일한 생존자였습니다. 북한에 지하교회가 있음을 증언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였습니다. 그가 목숨처럼 아끼고 소중하게 간직했던 성경은 이를 지켜보는 이들에게 깊은 감동과 울림을 던져줬습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그의 일대기를 정리한 공식 기록은 전무합니다. 그가 한국에 와 정착한 게 15년이나 됐지만, 약력마저 남은 게 없는 실정입니다. 그저 권정행 목사나 김선만 목사, 김균 장로와 박인경 집사 등 지근거리에서 그를 도왔던 이들의 증언과 기억만 있을 뿐입니다. 그러다보니 북한에서의 신앙생활이나 지하교회에 대한 정확한 기록이 없습니다.
침례를 받은 해가 1956년인지, 1957년인지 증언자마다 다르고, 성경을 감췄던 장소와 순서가 엇갈리기도 합니다. 어머니를 모시고 사선을 넘어온 아들은 암으로 투병하다 지난 2016년 먼저 눈을 감았습니다. 할머니는 인생의 말년을 치매로 고생하며 대부분의 기억을 잃었습니다. 좀 더 일찍 대필이라도 해 두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 건 그래서입니다.
결과적으로 그의 극적인 삶이 이젠 구전으로만 남게 됐습니다. 더 이상 그의 입을 통해 증언을 남길 수 없게 됐습니다. 그나마 잊히지 않도록 하기 위해선 생전의 증언과 자료를 모아 퍼즐 맞추듯 일화를 조각해야 합니다. 제한적이고 한정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정확도도 떨어집니다. 이 땅에서 채 듣지 못한 할머니의 간증을 하늘에서 듣기 바란다는 소망은 위안이 아닌, 핑계로 들립니다.
그런 면에서 보면 우리는 기록이 대단히 취약한 집단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교회에 가도 연혁만 있을 뿐, 그 안에 담긴 사연이나 스토리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합회 정도나 돼야 특별한 이벤트 때 기록으로 남겨 기념할 뿐입니다.
말은 물처럼 흐르고, 글은 돌처럼 새겨집니다. 말에는 이 사람 저 사람의 생각과 상상이 가미되어 과장될 위험이 큽니다. 그러나 순수 그 자체의 글에는 왜곡이 개입될 여지가 상대적으로 적습니다. 기록으로 남지 않은 말은 훗날 전설에 그치지만, 글은 역사가 됩니다. 설(說)과 사(史)의 무게감은 감히 견줄 수 없습니다.
말은 잊히고 퇴색되지만, 글은 세월이 흐를수록 가치를 더합니다. 미지의 땅 조선에 와 헌신하던 샤펜버그 선교사가 병에 걸려 숨을 거뒀다는 소식에 당시 조선합회 평의원회가 “사랑하는 우리의 누나”라며 추모했다는 사실을 오늘의 우리가 알 수 있는 건 1920년 1월호 <교회지남>에 기록으로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기독교는 약속의 종교이기도 하지만, 기록의 종교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십계명을 글로 새기셨습니다. 성경에도 중요한 부분은 ‘기록 되었으되’라는 말씀으로 언급합니다. 예수님은 기록된 성경을 강조하셨습니다. 광야에서 금식하며 사탄의 시험과 싸우시던 때도 “기록 되었으되”라는 말씀으로 유혹을 물리치셨습니다. 우리는 그분이 다시 오실 것이라는 약속을 기록을 통해 확인하며, 믿습니다.
이번 이순옥 할머니의 별세가 우리에게 기록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산 교훈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어쩌면 우리 주변엔 지금도 제2, 제3의 이순옥 할머니가 있는지 모릅니다. 또 한 세대가 저물어 가기 전, 그들의 삶을 신앙유산으로 전승할 기록의 사역이 필요합니다. 이제라도 기록에 좀 더 힘을 줘야 하는 까닭입니다.
방법은 여러 가지입니다. 시대와 기술이 좋아져 큰 비용을 들이지 않고도 할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작업이 ‘아카이브’(archive)입니다. 오랜 세월 동안 보존해 두지 않으면 안 되는, 가치 있는 자료를 기록하는 것 또는 기록보관 파일이나 레코드를 뜻하는 말입니다. 어느 지역이나 특정의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록으로 남기는 것입니다. 그 자체로 자전적 글이자 기록이며 역사가 됩니다.
진도의 어느 교회는 바닷가에 고기잡이를 나갔던 어부가 풍랑에 목숨을 잃으며 받은 보상금으로 지은 교회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지금은 은퇴한 최홍석 교장은 한 집회에서 과거 자신이 가르쳤던 말썽꾸러기 제자가 어느 날 예언의 신을 읽고 변화하더니, 군대에서 수류탄 폭발사고가 일어났을 때 자신의 목숨을 희생하고 다른 병사들의 생명을 구했다는 간증을 전했습니다. 요즘 해외선교사를 많이 파송하는데, 과연 한국 재림교회가 파송한 최초의 해외선교사는 누구인지도 궁금합니다. 이런 숨어 있는 스토리를 발굴해 잊히지 않도록 기록으로 남겨야 합니다.
개인의 삶을 기록할 수 있습니다. 작게는 일기가 될 수도 있고, 크게는 자서전이 될 수 있습니다. 나이가 많은 노인들을 위해서는 구술방식의 개인기록을 기획하면 됩니다. 아들 딸 혹은 손자 손녀가 부모님이나 할머니 할아버지의 삶을 기록으로 남기는 작업은 이제 흔한 일이 됐습니다. 실제로 청소년이 어르신들의 자서전을 대신 쓰고 책으로 엮은 단행본을 서점에서 그리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저마다의 신앙적 경험을 갖고 있으니 일반인보다 훨씬 더 생생하고 감동적인 삶의 자취를 남길 수 있을 겁니다. 교회마다, 가정마다, 개인마다 자기 역사를 ‘기록’하는 일은 그래서 더 값어치 있습니다. 시간이 흐른 뒤 단지 추억에 머무를 퇴색한 기억을 아쉬워하지 말고, 후대에 기록으로 전했으면 좋겠습니다.
한국연합회는 회기를 시작하며 ‘영성회복 및 영적 유산 전승’을 <희망 2020> 사업의 목표 가운데 하나로 정했습니다. 이를 위해 영적 유산을 발굴하고 교육하는 일에 투자하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지금, 얼마나, 어떤 형태로 진행되고 있는지 되돌아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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