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코로나 완치’ 조장원 선교사의 인사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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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태 기자
kbtlove@kuc.or.kr
입력 2020.10.18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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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 속 성도들의 기도 시작되자 갑자기 증상 완화”
지난 8월 19일 일시 귀국해 지방의 한 도시에서 요양 중인 조장원 목사는 <재림마을 뉴스센터>와 만나 근황을 전하고 “큰 어려움에 처했을 때, 진실한 기도와 응원으로 격려해주셔서 정말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과 가족 모두 현재는 어떠한 코로나19 증상도 남아 있지 않다며 다만 “망가진 폐 기능의 일부가 아직 완전히 낫지 않아 당초 예정했던 시기보다 출국을 잠시 늦췄다. 지금은 회복을 기다리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코로나19에 걸렸을 때, 두려움은 없었지만 증상이 워낙 힘들어 극심한 고통을 참아내야 했다. 그런데 성도들의 기도를 듣는 순간, 마치 하나님께서 나의 어깨를 감싸주는 듯한 느낌이 들면서 안정과 평안이 찾아왔다. 안식일을 준비하던 금요일 오후부터 호흡이 좋아지고, 급격한 피로감과 고열이 떨어지는 등 증상이 갑자기 완화됐다”고 당시 상황을 소개했다.
▲ 안녕하십니까? 먼저 이 방송을 보시는 국내외 성도들에게 인사의 말씀을 전해주십시오.
- 성도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동인도네시아 1000명선교사훈련원장으로 봉사하고 있는 PMM선교사 조장원입니다. 저와 제 가족이 어려움을 당했을 때, 정말 진실한 기도와 응원으로 저희를 격려해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 귀국은 언제 하셨고,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습니까?
- 지난 8월 19일 귀국했습니다. 2주 간의 자가격리 후에 지금은 아내, 아들과 함께 아주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습니다. 참으로 많은 분들에게 감사인사를 드리고 싶고, 만나고 싶지만 연락을 드릴 때마다 ‘지금은 시기가 조심스러우니 다음에 보자’는 분들이 많아서 연락을 주시는 분들만 찾아뵙고 있습니다. 이렇게 영상으로나마 여러분들께 감사인사를 올리게 되어 대단히 기쁩니다.
▲ 많은 분들이 놀랐는데, 지금 목사님과 가족들의 몸 상태는 어떻습니까?
- 현지 병원에서 퇴원하고, 한국에 귀국한 이후 저와 제 가족은 어떠한 코로나19 증상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가슴이 답답하거나 피로감이 전혀 없이 모든 신체리듬이 다 정상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래서 저는 지난 9월 중순쯤 다시 인도네시아로 돌아가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의사인 친구가 꼭 CT(컴퓨터단층촬영)를 찍어보라고 권유해서 촬영을 했습니다.
진단 결과, 코로나19 감염으로 망가진 폐 기능의 일부가 아직 회복되지 않았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완전히 나아지는데 3개월 정도 걸린다고 합니다. 그래서 출국 시기를 한 달 정도 늦추고, 지금은 회복을 기다리는 중입니다.
▲ 감염 당시 상황이나 증상이 어떠했나요?
- 제 기억으로는 7월 13일이었습니다. 월요일이었는데, 그날 오후부터 갑자기 두통과 오한이 오면서 몸살 증상이 느껴졌습니다. 저는 단순히 몸살이 걸렸다고 생각하고, 며칠 쉬면 낫겠다 싶어 그렇게 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돌이켜보면, 일반적인 몸살과 코로나19의 증상이 달랐습니다. 몸살은 목이 칼칼하면서 아프고, 그 다음에 두통이 오거나 하면서 증상이 점차적으로 나타나는 반면, 코로나19는 모든 증상이 한꺼번에 왔습니다. 갑자기 39도가 넘는 고열이 시작됐고, 두통과 오한이 오고, 온 전신에 극심한 통증이 느껴졌습니다.
너무 아프고 괴로워서 그날 밤 잠을 이루지 못하고, 하나님께 울부짖었습니다. ‘제발 저의 이 고통을 감해 달라’고 말입니다. 그렇게 밤새 애타게 기도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다음날부터는 후각상실 증상이 나타났습니다. 냄새를 맡지 못하고, 식감이 사라졌습니다. 저희가 인도네시아에서 한국이 그리울 때마다 종종 먹는 음식이 라면입니다. 제가 아파서 방에 누워 있는 동안, 주방에서 아내와 아들이 라면을 끓여먹고 있었는데, 저는 전혀 몰랐습니다. 거실로 나왔다가 그 장면을 보고 ‘어, 라면 먹고 있었네?’라고 물으니 아내가 냄새를 못 맡았냐고 하더군요. 그제야 ‘이제 내가 냄새를 못 맡는구나’라고 깨달았습니다.
한번은 아내가 죽을 끓여줬는데, 너무 싱거운 거예요. 그래서 소금을 쳤는데 여전히 제 입맛에는 싱거웠습니다. 좀 많다할 정도록 소금을 넣었습니다. 그랬더니 짠맛은 안 나고, 오히려 쓴맛이 나는 겁니다. 그제야 제가 식감마저 잃어버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입맛이 너무 없어서 그래도 좀 무언가 먹어보자는 생각에 인도네시아에서도 인기가 많은 한국의 매운맛 라면을 끓여 먹었습니다. 그런데, 그마저도 하나도 맵지 않고, 그저 약간 쓴맛 정도만 느껴졌습니다. 제가 식감을 완전히 잃어버렸다는 것을 그때 알게 됐습니다. 먹는 것을 잘 먹고, 영양을 보충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해 힘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또 하나의 증상은 호흡 곤란입니다. 첫날부터 폐렴증상이 나타나면서 폐 기능이 많은 손상됐습니다. 숨을 깊게 쉬고 싶은데, 그렇게 하면 마치 폐가 오그라드는 느낌이 들어 자꾸 기침을 하게 됐습니다.
하지만 기침을 하면 또다시 온몸에 통증과 두통이 동반되면서 고통을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숨을 아주 얕게 쉴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9일 동안 증상을 겪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도 차도가 없고, 증상이 계속 심해지니 아내가 ‘저러다 내 남편 죽겠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아는 의사 친구에게 연락해 물어보니 ‘아마 코로나19 같다. 당장 입원해라’라고 조언해 그날(7월 21일) 밤, 병원에 입원했습니다.
▲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고 마음이 어떠했나요?
- 병원에 입원한 후, 여러 증상을 살펴보고 검사를 받았습니다. 사실 이미 코로나19에 감염됐다는 걸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었기 때문에 확정 판정을 받았을 때도 그다지 놀라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아내와 아들이 함께 검사를 받고, 양성 판정이 나왔을 때는 너무 걱정이 됐습니다. 이렇게 힘든 경험을 가족들이 한다면 제가 그것을 어떻게 감당해야할 지 몰랐습니다.
그런데, 정말 하나님께 감사하게도 아내와 아들은 그냥 지나가듯이 코로나19를 앓았기 때문에 그렇게 큰 충격은 없었습니다. 이제 돌이켜보면 가족들은 코로나19 감염에 대한 심리적인 충격으로 인해 놀란 가슴을 추스르는 시간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 저희가 생각했던 것보다 완쾌가 빨라 깜짝 놀랐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빨리 쾌유할 수 있었습니까?
- 병원에 입원하자마자 한국에 있는 가족과 지인, 몇몇 친구들에게 연락을 했습니다. 그분들이 걱정을 하며 저에게 연락을 주셨습니다. 저의 확진 소식이 그렇게 한국에 알려지고, <재림마을>을 통해 성도들에게도 전해졌습니다. 그러면서 갑자기 많은 분들에게 연락이 오고, 기도하고 있다는 격려를 받았습니다.
코로나19에 걸렸을 때, 사실 두려움은 없었지만 증상이 워낙 힘들어서 극심한 고통을 참아내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 기도를 듣는 순간, 놀랍게도 하나님께서 제 어깨를 싹 감싸주는 듯한 아주 강한 마음의 안정과 평안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때부터 갑자기 증상이 완화됐습니다. 호흡도 점점 좋아지고, 몸의 급격한 피로감도 회복되고, 고열이 떨어지고, 음식도 잘 먹게 됐습니다.
금요일 오후에는 산소마스크와 링거를 떼고, 고열과 두통 증상도 사라져 정말 편하게 안식일을 맞을 수 있었습니다. 성도들의 간절한 기도가 저를 회복하게 했다는 사실을 결코 부인할 수 없습니다. 이 자리를 통해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여러분의 기도 덕분에 제가 더 힘을 내 기도할 수 있었고, 회복이 빨라졌다고 생각합니다.
▲ 현지에서 코로나19가 확산할 때쯤, 귀국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습니까?
- 3월 중순, 선교사 파송식을 마치고, 새로운 프로모션을 준비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 즈음부터 갑자기 인도네시아에서 코로나19 감염이 확산했습니다. 정부가 교회의 예배를 금지하고, 학교 수업도 중지되기 시작했습니다.
저희도 외부 활동이 금지돼 모두 캠퍼스 안에만 머물렀습니다. 15명 정도의 식구들끼리 모여 마스크를 쓴 채 사회적 거리를 유지하며,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렇게 한 달 정도 지나 4월 중순쯤, 한 성도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안식일에 예배를 드리지 못하는데, 혹시 우리 집에 와서 함께 예배를 드려줄 수 있냐’는 요청이었습니다.
저희가 회의한 결과, 그들의 요청이 왔으니 선교사로서 가야하지 않겠냐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그곳을 방문하자 성도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고, 함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너무나 감사하고 행복했습니다. 이날의 경험을 토대로 ‘어쩌면 이런 분들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연락을 취하니 정말 많은 가정에서 저희에게 요청이 왔습니다.
그래서 다음 주 안식일부터 12명의 직원이 각 지역으로 뿔뿔이 흩어져 봉사를 했습니다. 모이는 사람은 대여섯 명밖에 되지 않았지만, 게다가 정부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 어떤 분들은 산에서 예배를 드리고, 어떤 분들은 밭에서 예배를 드리고, 어떤 분들은 텐트를 치고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렇게 서너 달을 지내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하다 보니 한국에 들어갈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아! 이것이 내가 선교사로서 해야 할 책임이 아닌가’라는 생각으로 봉사하고 있었습니다.
솔직히 학교가 문을 닫고, 정상적인 수업이 이뤄지지 못할 때는, 아이의 학업을 위해 한국으로 돌아갈까라는 생각을 잠깐 했지만, 한국도 어차피 온라인 수업을 하고 있으니 인도네시아나 한국이나 비슷하겠다 싶어 현지에 계속 머무르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래서 훈련이 시작되기 바로 직전까지, 제가 아프고 나서도 저희 선교사들은 성도들의 가정을 방문해 돌보았습니다. 때문에 한국으로 귀국하겠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 다음에 계속 -
■ 인도네시아 1000명선교사훈련원 후원계좌
농협 307077-56-031139(예금주 조장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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