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에도 습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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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vs 아테네
사람들은 바깥 온도의 변화에는 매우 민감하지만 비교적 <습도의 변화>에는 둔감한 편이다. 아침 출근길을 나서면서도 아침 기온과 한낮 기온을 체크하고 어떤 옷차림을 해야 하는지 결정하지만 좀처럼 오늘의 습도는 얼마나 높은지에 대해서는 크게 관심을 두지 않는다. <온도와 습도>는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에 습도가 높으면 훨씬 덥게 느껴지고 불쾌지수도 높아지게 마련이다. 대체로 사람들이 쾌적감을 느끼는 온도는 여름철에는 섭씨 25~28도, 겨울철에는 섭씨 18~22도이며, 쾌적감을 느끼는 습도는 40~70% 정도라고 한다. 대한민국 서울과 그리스 아테네는 서로 비슷하게 북위 37~38도에 위치해 있다. 그리고 여름 평균 기온도 큰 차이가 없다. 그런데 습도는 서울과 아테네가 정반대이다. 서울은 여름이 시작되는 6월에 70%의 습도로 시작해서 한여름에는 80%를 넘었다가 9월에 들어서야 다시 70%대를 회복한다. 하지만 아테네는 6월에 60% 미만이지만 7월과 8월에는 오히려 40%대로 떨어진다. 이런 까닭에 지중해 해변의 도시들이 서울과 같은 위도에 위치해 있음에도 한여름에 쾌적감을 느낄 수 있다. 습도 높은 7월과 8월의 여름 달력을 넘기고 나서 습도가 조금 떨어진 9월을 맞으니 심리적으로 가을의 문턱에 성큼 다가선 느낌이 든다. 날씨에 습도가 있듯이 우리말 가운데 “감성이 메말랐다.” “감성을 촉촉이 적신다.”라고 말하듯 사람들은 감성에도 마치 습도가 있는 것 같은 표현을 쓰곤 한다.
촉촉한 감성 vs 메마른 감성
1년 전, 몽골을 여행하다 푸른 초원에 지은 하얀 솜덩이 같은 ‘게르’(몽골식 천막)에서 묵은 일이 있다. 매일 도심 한복판에 자리한 사무실로 출근해서 자동차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분주하게 오가는 모습만 보다가 사방을 둘러보아도 넓디넓고 푸르디푸른 초원 한가운데 드러누우니 말로 형언할 수 없는 행복감이 밀려왔다. “자연과 동화된다”는 것이 이런 걸까? 밤이 되어 잠자리에 들었는데 새벽녘에 내리는 빗소리에 잠을 깼다. ‘후득 후득 후드득 후득’ 하고 게르 지붕을 두드리는 빗소리에 잠을 깼는데 다시 잠을 청하기 어려웠다. 비몽사몽간에 빗소리를 즐겼다. 초원의 풀도 젖고, 내 마음의 감성도 덩달아 촉촉이 젖는 듯했다. 이와 달리 오늘날에는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많은 사람의 마음속 감성이 산업화와 도시화로 인해 메말라 가고 있다. 예전보다 사람들이 자연에 머무르는 시간이 매우 적어졌다. 대자연으로 나가 자연을 즐기는 대신 도시에서 스마트폰과 같은 디지털 기기를 조작하는 <디지털 라이프>가 일상이 되어 감성이 점점 메말라 가고 있는 것 같아 매우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지난 5월에는 아프리카 대륙 남쪽에 위치한 말라위(Malawi)를 여행한 일이 있었다. 어느 날 오후, 현지 선교사의 도움으로 자동차를 타고 선교지를 방문하러 가는 도중에 그만 자동차가 고장 나서 길가에 멈춰 섰다. 운전석 앞바퀴 쪽의 작은 축 하나가 부러진 것이다. 하필 외딴 지역이어서 가까운 곳에 자동차 정비소가 있는 것도 아니고 쉽게 부품을 구할 수도 없었다. 자동차는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이어서 매우 난감했다. 어느덧 해는 졌고, 발을 동동 구른다고 해서 상황이 달라질 리 없었다. 멀리 떨어진 마을에서부터 수리기사가 자동차 부품을 구해 오기로 해서 하염없이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어느새 저녁을 훌쩍 넘겨 점점 밤이 깊어 갔다. 내가 염려한다고 해서 별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았고, 자동차를 수리하는 일은 내가 관여할 부분이 아니었다. 그러다 문득 아프리카의 청정한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냥 맨눈으로도 수천, 수만 개의 별이 밤하늘을 가득 수놓은 것을 보았다. 요즘 MZ세대의 표현을 빌리자면, 정말 “가슴이 웅장해지는 경험”을 했다. 자동차 수리에 대한 생각은 어느새 까맣게 잊었고 밤하늘을 총총히 밝히는 별을 감상하며, 나의 감성은 ‘촉촉이’를 넘어 ‘흠뻑’ 젖었다.
감성 습도를 높이는 법
사람들은 사는 동안 누구나 감성이 촉촉이 젖거나 감성이 메마른 경험을 한 일이 있을 것이다. 때로는 빗소리를 들으며, 때로는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면서 방전되는 느낌의 삶에서 재충전의 경험을 하며 삶의 활력을 되찾는다. 감성 습도가 높으면 생각도 단순해지고 왠지 마음에 여유도 생기며 다른 사람들을 대할 때도 너그러운 마음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감성이 메말라 감성 습도가 낮으면 부쩍 짜증도 많이 내고 마음의 여유도 없으며 다른 사람들과 치열하게 경쟁하려 한다. 매사에 조급해하고 불안해하며 자신의 감정은 물론 타인의 감정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감성 습도를 높이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는 게 좋다. 감성 습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틀에 박힌 일상을 떠나 여행을 떠나면 좋다. 여행을 통해 감성 습도도 높이고 스트레스도 해소할 수 있다. 멀리 여행을 떠나기 어렵다면 그저 가까운 자연을 찾아 푸른 하늘을 바라보고 두둥실 떠가는 구름을 멍하니 바라보며 시간을 보내는 것만으로도 감성 습도를 높일 수 있다. 자연에는 창조주 하나님의 능력이 곳곳에 나타나 있다. 인간은 자연 속에서 창조주를 만날 수 있다. 그리고 그곳에서 우리의 감성 습도는 얼마든지 높아질 수 있다. 뺨을 스치는 산들바람을 느끼며 호젓한 오솔길을 걷는 것, 산새들이 지저귀는 노랫소리를 들으며 작은 숲에 잠시 머물러 있는 것, 캄캄한 밤하늘을 환하게 밝히는 달구경을 하는 것만으로도 감성 습도는 오른다. 우리는 자연 속에서 창조주 하나님을 만날 수 있고, 감성 습도를 높일 수 있기에 선지자 이사야도 우리에게 이렇게 권고한 바 있다.
- 박재만 시조사 편집국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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