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고장 났을 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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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였어도 기분이 좋았겠다
2024년 5월, 아프리카 에티오피아로 가는 비행기를 탔다. 13시간 정도 비행하고 나면 에티오피아의 수도 아디스아바바에 도착하는 여정이었다. 밤 10시경 이륙하는 비행기라서 밤새 한숨 푹 자고 나면 목적지에 도착하겠거니 생각했다. 인천국제공항 출국장에서 탑승수속을 밟는 중에 창구 여직원이 “혹시 영어로 대화가 가능하세요?”라고 물었다. 그래서 “아! 네! 간단하게 영어로 대화하는 것 정도는 가능합니다.”라고 대답했더니, 대뜸 “비상구 좌석을 배정해 드리려고 하는데 동의하시나요?”라고 물었다. 10여 년 전, 가족과 함께 비상구 좌석을 배정받아 장거리 비행을 편하게 했던 기억이 나서 “네! 동의합니다. 비상구 좌석으로 배정해 주세요.”라고 대답했다. 13시간가량의 비행을 비좁은 이코노미 좌석에 앉아 몸을 이리저리 뒤척이며 갈 생각에 살짝 염려스러운 마음이 있었는데 ‘잘되었다.’ 싶었다. 게다가 일행과 함께 비상구 쪽 3열 좌석 중에 마침 한 좌석이 비어 있어 가운데 자리를 비워 둔 채, 둘이서 세 개의 좌석을 쓸 수 있게 되었다. 비상구 좌석이라 앞뒤 간격이 넓을 뿐만 아니라 둘이서 세 개의 좌석을 쓰니, 옆 공간도 넓어 깊은 잠에 빠져들 수 있을 것 같아 얼굴에는 미소가 절로 번졌다. 약 서너 시간 비행 후, 새벽 2시쯤 되었을까? 누군가 내 몸을 툭 치는 것 같아 눈을 떴다. 편하게 가려고 비워 두었던 가운데 자리에 한 젊은 흑인 친구가 털썩 앉으며 나를 깨운 것이었다. 나와 나의 동행 사이에 앉은 게 계면쩍어서인지 하얀 이를 드러내 보이며 ‘씨익’ 하고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 그는 의자에 앉은 채로 두 다리를 허공에 휘휘 저으며 ‘여긴 넓어서 좋네요?’라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사실 세 개의 좌석 모두가 우리 둘의 자리는 아니어서 가운데 자리를 마치 내 자리라고 주장할 상황은 아니었다. 잠결이지만 그 젊은 친구가 없었을 때는 느끼지 못했던 불편감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자다가 자꾸 서로 어깨를 부딪치고 내 옆구리를 팔꿈치로 치기도 하고 도무지 깊은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살짝 짜증이 났다. ‘가운데 자리에 큰 가방이라도 올려 둘 걸 그랬나?’ 후회도 됐다. 잠을 설치는 도중에 다시 곰곰이 생각해 봤다. 만약 10시간이 넘게 장거리 비행을 하는데 내가 좌석의 앞뒤 간격이 넓은 비상구 좌석을 발견했다면 얼마나 기분이 좋았을까? ‘나였어도 기분이 좋았겠다.’라는 생각이 나의 뇌리를 번뜩하고 스쳤다. 거의 비행기 공짜 티켓을 얻은 기분이 아니었을까? 입장을 바꿔 생각해 보니, ‘이 청년이 이 넓은 자리를 보고선 무척 반가웠겠다.’라는 데까지 생각이 미쳤다. 청년의 입장에 서서 생각해 보니, 불평할 이유가 한순간에 사라져 버렸다. 뒤이어 내 입가에 저절로 미소가 번졌던 까닭은 ‘나였어도 그 청년의 마음과 같았으리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마음을 고쳐먹고, 다시 눈을 떠서 우리 일행 사이에 곤히 잠든 낯선 청년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이상하게도 그가 더 이상 밉게 보이지 않았고 오히려 평화로이 잠든 사랑스러운 내 아기와 같이 보였다고 하면 지나친 비약일까? 내 마음을 고쳐먹으니, 내 마음속에 자리했던 불평과 불만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렸고, 그 청년에게 괜스레 크게 인심을 쓴 것 같은 마음이 들며 내 마음도 편안해졌다.
고칠 일들
인생을 살면서 우리 주변에는 고칠 일들이 많다. 우리가 사는 집 안 곳곳도 고쳐 가며 살아야 편리하다. 전등이 망가졌는데도 전구를 바꿔 끼우지 않으면 어둑어둑한 집 안에서 불편하게 지낼 수밖에 없다. 변기가 망가졌는데도 수리하지 않으면 화장실에서 연신 고약한 냄새가 나고, 매우 비위생적인 환경이 될 수밖에 없다. 요즘 같은 여름철에 방충망이 찢어졌는데도 이를 수리하지 않고 방치하면, 집 안으로 각종 벌레와 모기가 들어와 역시 불편하게 지낼 수밖에 없다. 망가진 것을 고치고, 뒤틀어진 것을 바로잡으면 삶이 편리해진다. 자동차도 마찬가지다. 자동차 에어컨이 망가졌는데 이를 수리하지 않으면 요즘처럼 무더운 날씨에 운전하는 일이 보통 고역이 아닐 것이다. 자동차 오디오가 망가졌는데 이를 수리하지 않으면 자동차를 타고 이동하는 데는 전혀 문제가 없겠지만 삶의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고치면 모든 게 편리해지고 나아진다. 하다못해 우리가 평소에 입는 옷도 수선하면 옷맵시도 나고 옷을 편하게 입을 수 있다.
마음도 고쳐 가며 살아야
한평생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우리의 마음도 끊임없이 고치고 다듬고 수선하면서 살아야 한다. 우리네 마음이 항상 바른 마음, 정직한 마음, 올곧은 마음을 갖지 못할 때가 많다. 우리 삶의 다양한 국면에서 고치고 수리해야 편리한 것처럼 우리가 비뚤어진 마음을 가졌거나 그릇된 생각을 가졌다면 <마음을 고쳐먹어야> 한다. 집 안 시설이 파손되었거나 자동차가 고장 났을 때 얼른 손보고 고치듯, <마음이 고장 났을 땐> 얼른 바르게 고쳐야 한다. 내 마음이 좁고 옹졸했다는 생각이 들면 너그러운 마음가짐을 갖기 위해 노력하고, 내 마음이 고집스럽다는 생각이 들거나 누군가 나에게 고집스러운 면이 있다고 충고해 주면 이런 말에 귀를 기울이고 다른 사람의 말을 잘 경청하면 된다. 나의 어떤 행동이 이기적인 행동이었다는 생각이 들면 곧장 이기심을 내려놓으면 된다. 내 마음이 쉽게 분노하는 성격이라면 잠시 숨을 고르고 인내하는 습관을 들이면 된다. 남에게 인색했다면 관대한 마음을 갖기 위해 더욱 노력하고, 배려와 존중의 마음을 가지면 된다. 내 마음에 불평과 불만이 가득했다면 ‘내 삶에 감사할 일들이 얼마나 많은가?’를 헤아려 보자. 그러면 내 삶이 조금은 더 편안해지리라. 그래서 성경의 지혜자 솔로몬은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城)을 빼앗는 자보다 낫다.”라고 했나 보다.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城)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
(잠언 16장 32절)
- 박재만 시조사 편집국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