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엔 봉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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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타클로스 할아버지가 있다고 믿었던 시절엔 내게 선물이 오지 않았다. 착한 일을 하지 않아서일까? 내년에 더 착하게 살면 받을 수 있을까? 산타클로스 할아버지가 이제 더 이상 없다는 것을 알게 된 해에는 아버지의 사정이 조금 나아지셨는지 무려 24가지 색의 크레파스를 선물받았다. 하지만 이 선물이 아버지가 주시는 것이란 걸 난 이미 알고 있었고, 산타클로스 할아버지가 세상에 없다는 사실이 조금 아쉽기도 했다. 성인이 된 오늘, 산타클로스 할아버지를 생각하면 실제로 없어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 마을에서 나만 선물을 받지 못했다면 앞으로 1년간 주변의 시선을 어떻게 감당하며 살아가겠는가?
크리스마스에는 일 년 동안 착하게 살아온 아이들이 보상으로 양말에 들어갈 정도의 선물을 받는다. 기독교인이 아니더라도 이러한 크리스마스의 전통은 다들 한 번쯤 경험해 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3월에 크리스마스를 생각하며 나쁜 일을 멈춘 기억이 있는가? 나는 아니더라도 주변에서 4월에 “이런 일을 하면 크리스마스에 선물을 못 받아요!”라고 하면서 어떤 행동을 멈추는 아이들을 본 적이 있는가? 최소한 내 기억에는 없다. 다 잊고 살다가 12월에 크리스마스트리를 장식하면서 양말을 보면 문득 선물을 받기에 내가 합당한가 생각해 보게 된다. 하지만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돌아본 나의 1년은 선물을 받기에 부족함이 많다. 더 놀라운 것은 12월에 이것을 깨달은 순간부터 크리스마스 날까지라도 착하게 살아야지 결심하지만 이마저도 지켜 본 적이 없다. 나는 왜 이렇게 의지가 약한 걸까?
크리스마스엔 왠지 누군가를 도와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아마도 수많은 영화와 TV 등을 통해 학습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일 년간 남을 도운 적이 없어도 왠지 연말에는 누군가를 도와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연탄 봉사와 같은 힘든 일은 못하겠지만 기부금이라도 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이렇게 연말에 겨우 한 번 한 봉사나 기부 행동이 과연 나를 착하게 변화시킬까?
심리학자들은 사람의 마음과 행동을 연구하는 사람들이다. 심리라는 단어가 인간의 마음만을 연구하는 듯 보이지만 엄밀히 말하면 심리학자는 인간의 행동을 연구하는 측면이 더 강해서 심리학을 행동과학으로 분류한다. 심리학자들은 마음을 직접 볼 수 없으므로 행동을 관찰함으로 마음을 추론하게 된다. 어찌 보면 인간의 행동에 가장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 바로 심리학자들이다. 그래서 심리학자들은 사람이 가진 마음가짐 즉 태도와 그 마음 그대로 행동하는가에 대해 매우 큰 관심을 기울여 연구하고 있다. 두 차례의 큰 세계 대전이 종결되었다. 전쟁이 끝나면 포로들도 모두 자기 나라로 돌려보내 준다. 그런데 일부 포로들이 자신의 나라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것이다. 가족이 있는 고국으로 돌아가기를 거부하다니, 무슨 이유가 있는 것일까? 그들은 대부분 포로 기간 중에 자신이 포로로 집힌 나라에 의해 강제로 자신은 잘 살고 있으며 그들의 이념이나 사상이 좋다는 편지나 방송을 했던 사람들이다. 그들의 그러한 행동은 아마도 마음속에서 우러나왔다기보다는 포로 된 자로서 강제로 한 행동이었을 것이다. 자신의 마음과 다른 행동을 한 이들이 전쟁이 종식된 후에도 자신의 마음을 따라 가족들에게 돌아가기보다는 자신의 행동에 따라 포로 된 나라에 남기로 한 것이다. 어이없어 보이지만 심리학자들은 이것을 인지부조화 이론으로 설명한다. 인지부조화란 태도와 행동이 불일치할 때 느끼는 불균형진 감정의 상태이다. 사람은 이러한 부조화 상태를 해소하기 위해 태도를 바꾸어 행동에 맞추거나 행동을 바꾸어 태도에 맞춘다. 사람들은 보통 어떤 방법을 선택할까?
일반적으로 사람은 자신의 행동에 태도를 맞추어 인지부조화를 해소한다. 행동보다는 태도를 바꾸는 게 더 쉽기 때문이다. 만일 이미 벌어진 행동이 취소가 불가능하다면 이러한 경향은 더욱 강해진다. 포로들이 썼던 편지와 방송들은 취소가 불가능하고, 그렇다면 태도를 바꾸어 부조화를 해소하게 된다. 그래서 나쁜 사람들은 주변인에게 나쁜 일을 직접 하게 시킨다. 나쁜 말을 직접 하게 시킨다. 그 행동은 태도의 변화를 불러올 테니까. 그렇다면 그 반대의 경우도 가능하지 않을까?
성경에서 예수님은 하늘로 승천하시며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셨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마 28:19~20). 처음 이 성경절을 읽었을 때 이상함을 느꼈다. 성경을 배우고 하나님의 말씀을 잘 지키면 비로소 제자가 되어 침례를 받는 게 아닐까? 그러나 예수님의 명령은 달랐다. 제자로 삼고 침례를 받는 행동이 먼저였다. 침례를 받고 나서 그리스도인다운 행동을 하지 않을 때 우리는 인지부조화를 경험하게 된다. 그러나 우리가 교인이라는 사실이 공고하다면 다시금 회개하고 태도를 바꾸게 될 것이다. 모태 교인, 신앙 교육, 집사 및 장로 안수를 받은 행동들은 우리를 다시금 회개하고 주님께 돌아오게 할 것이다.
다시 이 글의 처음으로 돌아가서, 한 번도 한 적 없는 봉사를 크리스마스에는 왠지 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아직도 드는가? 일 년 내내 봉사를 생각해 본 적도 없다가 크리스마스에 한 번 헌금하고, 한 번 연탄을 나른다고 우리가 착한 사람이 될까? 심리학자들의 대답은 ‘그렇다’이다. 행동하라. 그것이 좋은 일이라면 아직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더라도,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지 않더라도 행동하라. 그리하면 우리의 마음도 변화될 것이다.
산타할아버지가 실재가 아니라서 천만다행이다. 우리 마을에서 나만 선물을 받지 못했다고 생각하면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바라볼지 섬뜩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예수님은 실재하신다. 우리 마음은 예수님을 맞이하기에 충분히 준비되었는가? 그렇지 않다면 먼저 작은 행동을 시작해 보자. 조금 일찍 나가서 집 앞을 청소하고, 새벽에 오시는 청소부 아저씨에게 이번 크리스마스엔 선물을 드려 보자. 금요일에 시간이 조금 난다면 교회에 일찍 가서 청소를 해 보자. 너무 바빠서 시간이 없다면 남들을 도울 수 있도록 특별 헌금을 드려 보자. 교회에 가고 싶은 마음이 들면 가는 것이 아니라 지각을 하더라도 일단 참석해 보자. 작은 행동들이 우리의 마음을 변화시킬 것이다.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아이들이 산타클로스 할아버지를 기다리듯 우리도 작은 봉사를 하며 예수님을 기다리는 설렘을 함께 느껴 보면 어떨까?
- 정구철 상담심리학과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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