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란한 세상을 밝히는 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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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가 많은 해
2024년 11월 5일은 미국의 선거일이다. 대통령과 부통령, 435명의 하원, 24명의 상원 그리고 13명의 주지사 자리를 놓고 치열한 경쟁이 펼쳐지고 있다.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 경선이 뉴스에 잘 보도되지 않는 상황은 현직 대통령인 바이든이 이미 후보로 거의 굳어진 것을 반영하고 있다. 공화당은 수퍼 화요일이 지나며 다른 후보들은 하차하고 전임 대통령인 트럼프가 공화당 후보로 거의 확정되어 트럼프와 바이든이 다음 대통령 자리를 두고 각축을 벌이고 있다.
트럼프는 다섯 개의 재판에 연루되었는데 뉴욕의 민사 사기 건과 입막음 뇌물 건에서 벌금형이 확정되었으며, 법무성이 제소한 쿠데타 건과 비밀 문서 건, 조지아의 리코 건이 진행 중이다. 트럼프는 법정에 소환되기도 하면서 힘겨운 선거 운동을 이어 가고 있다. 여러 조사 기관의 통계에 따르면 트럼프의 당선 가능성이 높게 점쳐지고 있다. 그러나 법적 문제로 인해 그가 선거에서 압승을 거둔다 해도 대통령으로 인정받을 수 있을지에 대한 의견은 분분하다. 아무리 더 훌륭한 지도자를 선택하려고 할지라도 두 후보 중 누가 대통령이 되든 미국 국민의 불안은 해소될 수 없을 것이다.
단지 미국만 선거를 치르는 것이 아니라 전 세계 60여 개국에서 올해 다양한 선거를 치르기 때문에 약 40억의 사람들이 투표권을 행사하게 된다. 많은 사람이 최선의 지도자를 혹은 자신의 취향에 맞는 인물을 선출하려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새로운 지도자가 국민의 안녕과 번영을 가져올 수 있을까? 새로운 지도자에게 희망을 걸어 보지만 얼마나 자주 국민은 실망과 좌절을 경험하는가? 인간 지도자의 한계가 점점 더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외교적 상황
한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가 미국 대통령 선거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으며, 누가 당선되는 것이 자국에 더 유리할지 내심 계산하고 있다. 미국은 전통적으로 자국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외교 정책을 추구해 왔기 때문에 좋은 관계를 유지하다가도 언제든지 이익이 되지 않으면 무슨 구실을 찾아서라도 경쟁 관계로 전환할 수 있다.
미국과 중국 사이의 관계 악화는 이러한 상황을 잘 보여 준다. 닉슨 대통령 시절, 낙후된 중국은 미국의 중요한 시장으로 편입되었다. 하지만 이제는 중국이 성장하여 미국의 경계 대상이 되었고 결국은 동반자가 경쟁자로 전환되었다. 중국은 미국의 비위를 맞추기보다 추월하려는 의지를 노골적으로 드러냄으로써 강력한 견제를 받고 있다.
군사적 상황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는 전쟁을 멈출 줄 모르고 있으며, 하마스의 습격에 대한 반격으로 가자 지구에 대한 이스라엘의 공격 또한 계속되고 있다. 이런 와중에 평화 협정을 한다고 하니 천만다행이다. 그러나 평화 협상도 산 넘어 산이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점령하여 완충 지대를 확보할 수 있을까?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공격을 막아 내고 독립을 유지할 수 있을까? 나토와 미국은 개입할 것인가? 미국은 중국을 견제하느라 정신이 없어서 우크라이나를 돕는 데 한계를 느낄 것이고 또한 우크라이나를 돕다가 러시아를 적으로 만들어 중국에 힘을 더 실어 주기를 원하지 않을 것이다.
환경적 상황
지구의 온난화로 인해 많은 지역이 홍수, 폭설, 태풍, 돌풍 등 수많은 재해로 몸살을 앓고 있다. 온난화는 에너지 사용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으며 화석 연료 사용 감소와 탄소 배출 감소에도 불구하고 예상치 못한 결과로 실망하는 경우가 많다. 그야말로 한 치 앞도 제대로 내다볼 수 없는 불확실한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지구 온난화의 진행을 어느 정도 늦출 수는 있겠으나 지구가 이미 너무 큰 악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궤도 수정은 더 어려울 수밖에 없다. 청정 에너지 사용으로 탄소 발자국을 줄일 수 있겠지만 어떤 종류의 에너지든지 에너지 사용 자체가 문제가 될 수도 있지 않겠는가? 또한 대기 오염으로 발생하는 질병의 예방과 치료는 중대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정보 시대의 문제
산업 시대를 넘어 정보 시대에 돌입한 인류는 국가마다 정보화 사회를 구축하기 위해 매진하고 있다. 지식과 정보가 제품보다 더 높은 부가가치를 지닌 시대에 고급 정보를 훔치고 빼앗는 절도와 강도질이 넘쳐날 뿐만 아니라 사회와 세계를 혼란에 빠뜨리려는 목적으로 수많은 거짓 정보를 유통시키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적어도 한국에서는 한때 언론은 사회의 목탁이라는 개념이 중요하게 정립되어 있었지만 그리고 정론을 제시하는 것이 언론의 과제라는 기본 틀이 있었지만 이제는 미국이나 여러 나라의 전철을 따라 편향된 언론으로 축소되어 가고 있다. 사건과 현상에 대한 깊은 역사적·정황적 이해 없이 모두 한편으로 치우치는 현상은 참으로 슬픈 현실이다.
진정한 박애 정신이 사라지고 있다. 모든 사람이 상대를 이용해 먹는 데만 혈안이 되어 있다. 아무나 방송을 할 수 있는 유튜브 같은 플랫폼은 편향성에 의해 완전히 지배되고 있다. 가짜 뉴스가 범람하고 속임이 난무하는 거짓의 시대가 도래한 것 같다. 여행, 자연, 취미 등은 별로 거짓 없이 기획되는 데 비해 정치와 종교 분야에서는 거짓이 너무 많다. 지식 사회는 좋은 지식을 제공하는 인프라를 구축할 수 있지만 또한 그것을 사용하여 가짜 지식을 퍼뜨리는 것이 너무 쉬워졌다. 인공 지능의 발전은 큰 우려를 가져왔다. 이것이 범죄에 사용되면 사회는 걷잡을 수 없는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되고 말 것이다.
희망의 빛
들리는 소식마다 우리의 머리를 무겁게 한다. 이런 어두운 시기에도 희망의 빛은 있을까? 우리의 눈을 밝게 하는 좋은 소식은 없을까? 과학 지식이 발달하면서 인류가 더 훌륭하게 발전할 것으로 기대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많은 사람이 유토피아를 꿈꾸었다. 그러나 18~19세기에 이루어진 많은 발명과 진보는 인간의 도덕성을 높이기보다는 오히려 인간 속 깊이 숨어 있던 이기심을 극대화시키는 도구로 사용되었다.
인간성에 관한 이러한 긍정적 이해와는 달리 성경은 오랜 세월 인간의 부정적인 측면을 지적해 왔다. 성경의 이러한 부정적 이해는 인류의 침몰을 바라기 때문이 아니라 인류의 고질병을 치료하여 새로운 사회를 구현하고자 하는 의도 때문에 제시된 것이다. 그것은 각자의 생존을 위하여 목숨을 걸고 하는 무한 경쟁과 이기심으로 질주하는 인간을 자아 희생과 극기의 정신으로 새롭게 무장시켜 더 밝은 사회를 이루도록 하기 위한 시도였다.
라인홀트 니버는 도덕적인 개인은 있지만 도덕적 사회는 없다고 설파하였다. 도덕적 개인이 절대 다수가 된다면 그런 사회가 어느 정도 이룩될 수 있으리라 기대하지만 인간의 계획과 노력으로 그것을 구현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그러한 도덕성의 회복은 인간 속 깊이 도사리고 있는 죄와 이기심을 제거하는 그리스도의 속죄와 은혜의 빛을 통해서만 가능할 것이다. 그리스도의 재림이라는 궁극적 사건을 통해 그러한 나라, 그러한 사회가 도래할 것이다. 우리 사이에서도 안 보이는 빛, 우리 내면에서도 볼 수 없는 빛, 그 희망의 빛은 저 멀리 하늘에서부터 비추일 것이다.
- 도현석 신약학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