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의 자식 자랑과 민자건의 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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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의 부당한 대우나 말씀을 무조건적으로 따르자고 하는 것은 아니다. 사람의 관계가 시대에 따라 변화하듯 부모 자식 간의 관계도 변화한다. 그렇지만 자신을 이땅에 살 수 있게 해 주신 은혜를 생각하고, 부모를 사랑하고 존중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은 여전히 관계 형성에 핵심 요소일 것이다. 민자건의 사례를 보면서 우리는 온 마음을 다해서 부모님의 뜻을 거스르지 않으려는 노력을 본받으려 한다.
아무리 자식이 못난 짓을 하고 사고를 쳐도 부모 눈에는 늘 어여쁘고 걱정스러운 아이에 불과하다. 환갑이 넘은 자식에게 늘 차 조심하고 물 조심하라는 잔소리를 하는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어디나 마찬가지다. 집에 들어와서는 다른 집 아이와 비교하면서 들들 볶지만 밖에 나가면 세상에 그렇게 착하고 똑똑한 자식이 없다. 누가 툭 건드리기만 해도 자식 자랑이 줄줄이 흘러나온다. 콩깍지가 씌는 건 연인 사이에만 그런 게 아니다. 부모 눈에 씌인 콩깍지는 평생토록 벗겨지지 않는다. 어찌 보면 그게 부모 마음이 아니겠는가.
공자의 제자 중에 민자건(閔子騫)이라는 사람이 있다. 그와 관련된 이야기가 『논어』에만 네 차례 나온다. 하나하나가 모두 아름답고 훌륭해서, 공자의 제자를 네 부문(흔히 孔門四科라고 하며, 덕행, 언어言語, 정사政事, 문학文學을 말한다.)으로 나누어 대표적인 인물을 꼽을 때 덕행(德行)에 민자건이 꼽힐 정도였다.
춘추 시대 말기 노나라의 권력자였던 계강자(季康子)가 평소 민자건을 존경해서 자신의 권력 아래로 불러오고 싶어 했지만 민자건은 단호하게 거절했던 일화는 『논어』에 인상적으로 기록되어 있다. 당시 계강자는 노나라의 중요한 요충지였던 비읍(肥邑)의 책임자로 민자건을 불렀지만 그는 강제로 자신을 관리로 부른다면 다른 나라로 가 버리겠노라고 단호하면서도 강경하게 답변을 했다. 자신을 부르러 온 관리에게 민자건은 자신을 위해 사양해 달라고 부탁하면서, 만약 다시 또 부르러 온다면 자신은 문수(汶水)가에 가 있을 것이라며 명확한 의견을 전달한 바 있다.
공자의 제자에 대한 기록이 워낙 단편적이어서 모든 제자의 행적을 파악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그렇지만 민자건이 당시 노나라 권력자뿐 아니라 백성에게도 큰 존경을 받았던 사실은 분명해 보인다. 한 사람의 훌륭한 수행자로서 스승인 공자의 가르침을 충실히 익히고 실천하는가 하면, 백성의 어려움을 외면하지 않고 늘 그들의 어려움을 생각하면서 정책을 판단했으며, 권력자의 강압에 당당한 모습으로 자신의 생각을 펼치고 저항했던 모습이 민자건에게 모두 보인다. 이러한 기록을 보면서 우리는 민자건이 왜 당시 권력자와 백성 그리고 스승인 공자에게 존중과 사랑을 받았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이렇게 멋지고 당당한 모습을 보였던 민자건에게도 가정적인 아픔이 있었다. 그는 어려서 어머니를 잃고 계모 밑에서 자랐다. 계모는 민자건의 아버지에게 시집올 때 이전 남편 사이에서 얻은 두 아들을 데리고 왔다. 세상의 모든 계모가 그러한 것은 아니지만, 민자건의 계모는 그에게 가혹했다. 한나라 때 유향(劉向)이 편찬한 『설원(說苑)』에 보면 마음 아픈 일화가 나온다.
매우 추운 겨울날이었다. 민자건은 아버지를 태운 수레를 몰고 가다가 그만 손에 쥐고 있던 말고삐를 놓치게 된다. 아버지는 수레를 모는 일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아들에게 화를 내면서 아들 손에 들려 있던 말고삐를 받으려고 하다가 깜짝 놀란다. 아들의 두툼한 솜옷이 아버지의 손에 닿자마자 푹 꺼지는 것이었다. 이상한 마음에 확인을 해 보니 민자건이 입은 겨울 솜옷은 솜을 넣은 것이 아니라 갈대솜을 넣은 것이었다. 갈대꽃은 얼핏 보면 솜처럼 북실북실하지만 그것이 어찌 겨울의 매서운 추위를 막을 수 있었겠는가. 갈대솜을 넣은 옷을 입은 민자건은 너무 추운 나머지 말고삐를 쥘 수조차 없었던 것이었다. 확인해 보니 계모는 자신이 데리고 온 두 아들에게는 솜옷을 해 주고 민자건에게는 갈대솜옷을 해서 입혔던 것이다. 화가 잔뜩 난 아버지는 계모를 쫓아내려 했다. 그러나 민자건은 아버지에게 울면서 계모를 쫓아내지 말라고 호소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한다.
“어머니가 계시면 아들 하나만 추위에 떨지만, 어머니가 떠나시면 세 아들이 힘들어집니다.”
이런 일화가 언제 형성되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적어도 한나라 이후에는 민자건이 효행의 상징으로 동아시아 문화권에 널리 알려져 있었던 것은 분명하다.
『논어』에서도 민자건의 효행을 공자가 칭송하는 대목이 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효성스럽구나, 민자건이여. 그 부모 형제가 말하는 것에 대해서 다른 사람들이 이의를 제기하지 못하다니.”(子曰, “孝哉閔子騫! 人不間於其父母昆弟之言.” <先進>)
앞서 말한 것처럼 아무리 못난 사람이라도 부모와 형제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늘 좋은 말만 한다. 자식 자랑은 팔불출이라는 말이 있는 것도 모두 이유가 있다. 그렇지만 민자건의 부모와 형제들이 민자건에 대해 하는 말은 사람들이 트집을 잡거나 의심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그만큼 민자건에 대한 사람들의 신망, 특히 그의 효성스러움에 대해서는 아무도 토를 달지 않는다.
부모의 부당한 대우나 말씀을 무조건적으로 따르자고 하는 것은 아니다. 사람의 관계가 시대에 따라 변화하듯 부모 자식 간의 관계도 변화한다. 그렇지만 자신을 이 땅에 살 수 있게 해 주신 은혜를 생각하고, 부모를 사랑하고 존중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은 여전히 관계 형성에 핵심 요소일 것이다. 민자건의 사례를 보면서 우리는 온 마음을 다해서 부모님의 뜻을 거스르지 않으려는 노력을 본받으려 한다.
- 김풍기 강원대학교 국어교육과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