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용되는 성경구절 –요한복음 3장 16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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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3장 16절은 성경 가운데 가장 사랑받고 자주 인용되는 구절 중 하나이다. 많은 사람이 본 구절을 일컬어 ‘성경 전체의 요약’이요 ‘복음 중의 복음’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본 구절은 삼위일체 반대론자들에 의하여 가끔 뜻밖의 오해를 받곤 한다. 반(反)삼위일체론자들은 본 구절 속에서 “하나님이…독생자를 주셨으니”라는 표현에 집착한다. 한마디로 그들의 주장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자신의 독생자(외아들)를 세상에 주셨다’라는 것이다. 이들의 주장에는 두 가지 전제가 있다. 첫째, 하나님이 영원 전 어느 시점에 외아들(예수)을 ‘낳았’으며 둘째,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셔서 자신의 독생자(하나밖에 없는 아들)를 인간을 위하여 내어 주셨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해는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크신 사랑’ 혹은 ‘하나님의 고귀한 사랑 표현’을 위하여 본 구절을 사용하는 많은 설교자에 의해 부지 중에 지지받아 왔다.
그러나 본 구절을 하나님이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세상에 주신 일이 얼마나 고귀한 것인지 강조하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인간적인 아버지의 사랑으로 묘사하는 것에는 문제가 있다. 설교를 통하여 전달되는 이러한 해석은 감동적이기는 하지만 삼위일체이신 하나님에 관한 올바른 이해를 제대로 담고 있지 않다. 따라서 반(反)삼위일체론자들의 주장과 논리에 말려들기 쉽다.
본 구절에 대한 바른 이해를 위하여 가장 중요한 것은 “독생자”라는 표현에 대한 올바른 이해이다. 먼저 “독생자”라는 말은 그리스어 모노게네스(monogenēs)를 번역한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두 그리스어 단어를 합성한 것인데, 모노스(monos)는 ‘유일한’ 또는 ‘홀로’의 뜻을, 게네스(genes)는 ‘종류’ 혹은 ‘부류’, ‘가족’, ‘인종’ 등을 의미한다(영어 단어 ‘gene’[유전자]가 이 헬라어 단어에서 파생한 것임). 간단히 말해서, 모노게네스는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말하기보다는 ‘유일한 혹은 독특한(unique)’ 아들 또는 ‘같은 종류 가운데서 하나(one of a kind)’인 아들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모노게네스라는 단어는 하나님보다 조금 열등한 존재로서의 아들을 의미할 수 없다. 오히려 그 단어는 아버지 ‘하나님과 동등’하신 분이시지만(요 5:18) 자신의 신적인 본성을 완전히 보유하시면서 육신을 지닌 인간이 ‘되기 위하여 [이 땅에] 오신’ 성육하신 아들 예수의 독특성을 나타낸다. 이것은 이삭을 아브라함의 ‘독생자’라고 부르고 있는 히브리서 11장 17절의 사례를 통하여 확인할 수 있다. 바울은 이삭이 아브라함의 외아들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얻은 ‘유일무이한’ 아들임을 말한다.
다음으로 우리는 ‘아버지’ 하나님과 ‘아들’ 하나님이라는 성경의 표현을 분명하게 이해해야 한다. 이러한 표현을 ‘아버지’이신 하나님이 ‘아들’ 예수를 낳았다거나, ‘아들’ 하나님이 더 이전부터 존재하던 ‘아버지’ 하나님에 의하여 창조되었다는 의미로 이해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를 낳는다. 이러한 극히 인간적인 면에서의 이해는 성경이 가르치는 삼위일체에 정면으로 배치된다. 예수께서 하나님을 “자기의 친아버지”(요 5:18)라고 주장하신 것은 하나님 아버지는 더 위대한 신이요 자신은 더 열등한 신이라고 말하기 위함이 아니다. 오히려 예수께서는 “하나님을 자기의 친아버지라 하여 자기를 하나님과 동등으로”(요 5:18) 삼고 계셨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표현은 아버지가 파생시키거나 창조된 일종의 반신(半神)으로서의 아들의 관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영원을 통해서 ‘동등자’로서 항상 존재하는 영원하고도 심오한 친밀성을 의미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본 구절은 ‘하나님께서 그분이 창조하신 자신의 독생자(외아들)를 세상에 주셨다’라는 것을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세상을 사랑하는 표현으로 자신 스스로 인간이 되셨다’라는 것을 보여 준다.
- 지상훈 신학박사, 토론토교회 담임목사, 아시아-태평양 국제대학교 신학 교수 및 예언의 신 연구원 원장 역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