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을 기대하며 찾아간 곳에서
페이지 정보
본문
선교지를 떠나 복학한 지 석 달이 되었지만, 작년 한 해 동안 만난 큰 하나님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1000명선교사 58기로 서인도네시아에 파송되어 공항으로 가던 중 코로나에 걸려 3개월은 지나야 음성 확인이 된다고 했지만 놀랍게도 3주 만에 음성 결과가 나왔던 일, 비행기 이륙 5분 전에 환승 게이트가 바뀌었지만, 인도네시아어 방송을 영어로 설명해 준 친구를 만나 가까스로 비행기를 탈 수 있었던 일들로 확신을 얻고 현장으로 향했다.
300 가구 정도가 모여 사는 마을 ‘빠룬달리안’은 80%가 모슬렘, 20%가 기독교인, 재림교인은 딱 두 가정이 있었다. 재림교회 예배당은 없었다. 말도 안 통하는 데서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지만 한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도 엄청난 접근성을 보장받았고, 할 수 있는 것을 하나씩 찾아 나갔다. 교우들과 정기적으로 예배 드리고 기본 교리를 공부했고 영어 교실, 한글 학교를 열어 성경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군대에서 머리 몇 번 깎아 본 경험으로 이발 봉사도 하고, 사진도 찍어 주고, 환자들, 진리에 갈급한 이들도 찾아갔다. 감사하게도 선교지에 오자마자 준비된 영혼 두 가정을 보내 주셔서 재림교인은 4가정이 되었고 모슬렘 마을에서 교회 건축을 추진하며 자금도 모았다. 이렇게만 보면 참 많은 일을 한 듯싶지만 나의 본모습은 보잘것없고 하나님께서 큰 기적을 베푸신 것이다. 그 큰 하나님을 전하고자 한다.
파트너가 떠나간 뒤
사실 나는 하나님의 큰 기적을 체험하고자 선교사로 지원했다. 전도회 때 쏟아지는 비가 기도했더니 그치는 기적, 먹을 것을 채워 주시는 기적, 선교사 곁에 천사가 동행하는 모습을 마을 사람들이 목격했던 기적, 그런 것들을 기대했다. 하지만 전도회 기간에 비를 그치게 해 달라고 기도해도 비는 멈추지 않고 빗줄기는 더욱 강해졌다. 흰옷 입은 천사가 내 옆에 있는 모습을 봤다고 말하는 주민은 한 명도 없었다. 1년 만에 인도네시아어로 소통할 수 있게 된 것이 고무적이었지만, 인도네시아어 설교를 한 번도 완벽히 이해한 적은 없고 매 순간 눈치로 대충 파악했다. 그 와중에 연장자인 인도네시아 파트너와 문제까지 생겨 파트너 형은 선교지에서 두 달 만에 집으로 돌아갔다.
한 선배 선교사의 조언을 들으며 나의 문제를 짚어 보았다. “오직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고 선대 하며 아무것도 바라지 말고 꾸어주라”(눅 6:35). 나는 파트너에게 많은 반응을 바랐다. 나의 요리에 감사하기를 바랐고, 영어 교실을 도와주기를 바랐고, 내가 인도네시아어를 배울 때 도와주기를 바랐다. 나의 그런 자아가 그를 압박했던 것 같다. 파트너가 떠난 이후 나는 집을 옮겨 혼자 지냈다. 이사한 집은 나무집이고 벌레와 모기는 더 많고 무엇보다 물을 구하기가 힘들었다. 하루에 3통씩 떠서 날랐지만 요리, 샤워, 빨래하기에는 너무나 부족했다. 그래서 방문 가기도 전에 지치고, 늦게 돌아와 씻지 못하고 자야 할 때도 많았다. 아침에 일어날 힘도 잃고 무기력과 게으름 속에서 자신과의 싸움은 커져만 갔다. 아이들이 찾아와 “해준이 형, 놀자.” 하고 불러도 ‘제발 그냥 지나가 줘. 이틀째 씻지도 못했단 말이야. 내일 다시 와 주라.’ 하는 생각도 들었다. 선교지에서 기적을 체험하면서 온전히 하나님께 1년을 드리겠다는 결심은 무너지고 기적은커녕 자꾸 나의 자아, 죄 된 모습들만 보였다.
예전 같으면 진작 짐을 싸고 돌아왔겠지만 나를 포기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있었다. 바로 파송식 전날의 ‘세족식’이었다. 그날은 58기 동기생 중 하나이자 신학과 선배인 형이 나의 세족식 파트너였는데 그 형은 진심으로 내 죄가 씻기기를 바라며 나의 발을 닦아 주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내 더러운 발을 씻기고 내 죄를 씻겨 주고 싶어 하셔서 안달 나신 예수님의 마음에 공감하게 되었다. 그날 내 마음속의 모든 죄책감이 녹아내리면서 많이 울었다. 이후로 나는 죄를 지으면 죄책감에 시달리고 포기하고 싶기보다는 ‘괜찮아. 그래도 예수님은 날 사랑하시고 용서해 주고 싶어 하셔.’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 경험 때문에 나는 고독한 선교지에서 버틸 수 있었다. 완벽한 기적을 구하러 선교지에 왔던 나에게 결국 하나님은 가장 완벽한 기적이 무엇인지 보여 주셨다. 그것은 용서의 기적이었다.
"네가 아니라 내가 하는 거란다"
하나님은 나의 허물을 알고도 나를 용서하시고 이런 나를 계속 사용해 주셨다. 교회 건축과 모금이 진행되고 모슬렘 마을에 재림교회가 세워지게 역사하셨다. 2년간 학생 전도사로 섬겼던 광나루교회에서 봉사대가 찾아와 전도회를 개최하게 하셨다. 의료 선교, 문화 체험, 전도회로 구도자 7가정이 생겼고 일가족 2명이 침례를 받았다. 그런데 마냥 기쁘지만은 않았다. 그 2명은 내가 단 한 번도 진리를 전하거나 제안한 적이 없는 이들이었기 때문이다. 앞서 전도 훈련을 받을 때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모슬렘 가정의 부모에게 진리를 전했지만, 부모는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고 내가 진리를 전한 적이 없는 그 집 딸아이 하나가 삼육학교에 다니며 진리를 받아들였다. 이번 전도회 때도 부족 언어밖에 할 줄 몰라서 나와 전혀 말이 통하지 않는 할머니 한 분과 내가 한 번도 진리를 전하지 않은 학생만 침례를 받은 것이다.
‘하나님, 왜 제가 진리를 전한 사람들은 반응이 없고 제가 손도 대지 못하는 사람들만 진리를 받아들이나요?’
결국 하나님은 어느 목사님을 통해 이런 메시지를 주셨다. 해준아, 네가 하는 게 아니라 내가 하는 거란다.” 성경에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고전 3:6) 하셨다는 말이 있다. 나는 물을 주고 씨를 뿌릴 수 있지만 그 씨가 자라게 할 수는 없다. 이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일이다. 나는 그 일까지 하고자 했던 것이다.
사실 하나님은 언어도 통하지 않는 나를 사용해 주셨다.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백성을 이끌어 내라”(사 43:8). 모슬렘들이 전도회에 참석할지 확신할 수 없는 상황에서 여러 행사를 마련하고 전도회에 초청하며 그들에게도 씨앗을 뿌리게 하셨다. 원래 모슬렘은 교회에 들어오는 것조차도 꺼린다. 예수님은 선지자일 뿐 신이 아니며 성경은 오염됐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들은 재해로 집을 잃고 교회에서 텐트를 나눠 주어도 보급 물품을 버린다. 그런 모슬렘들이 마지막 전도회 때 히잡을 쓰고 직접 교회에 찾아와 많은 행사에 참여했다. 매일 밤 모슬렘 아이 30여 명이 부모의 허락하에 어린이 전도회에 참여하고 교회에서 찬양했다. 이 씨앗이 나중에 어떻게 열매 맺을지는 아무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