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율 쇼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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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중·고등학교들이 차례로 문을 닫고, 대학생과 군인이 줄고, 퇴직자의 연금을 대느라 정년 연장을 추진하고 있다. 이게 다 저출산 때문이다. 출산율 ‘세계 꼴찌’ 한국의 저출산 시계가 갈수록 빨라지고 있다.
통계청이 발표한 2022년 인구동향조사 출생·사망 통계에 따르면 2022년 한국과 서울의 합계 출산율은 각각 0.78명과 0.59명으로 기록되었다. 합계 출산율은 가임 여성 한 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기대되는 자녀의 수를 의미한다. 인구 이동과 사망률의 변동이 없을 경우 현재 수준의 인구 규모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합계 출산율은 2.1명인데 작년의 통계는 그보다 훨씬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또한 2022년도의 0.78명은 전년도인 2021년도의 0.81명에 비해 더 낮아진 수치로서 사상 최초로 출생아 수가 25만 명 이하로 떨어진 해가 되었다. 한국은 OECD 회원국 중에서 유일하게 출산율이 1명 아래인 국가이다. 2004년부터 16년째 출산율은 꼴찌를 기록하고 있다.
게다가 급감하는 출생아 수로 인해 인구의 자연 감소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인구는 전년 대비 12만 3,800명 자연 감소했다. 2020년 처음으로 인구 감소가 관측된 후 3년 연속 인구가 줄어들고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 감소 속도가 더 빨라지고 있는데 2020년 3만 2,000명이던 자연 감소 규모는 다음 해 5만 7,000명이 돼 두 배가량 증가했고, 지난해에는 증가세가 두 배를 넘었다. 이와 같은 급격한 인구 감소로 인해 한국은 이미 지구상에서 가장 먼저 사라질 나라로 꼽히고 있다. 영국의 옥스퍼드 인구문제연구소는 이미 지난 2006년, 한국이 지구에서 가장 먼저 사라질 나라라고 전망하기도 했다.
이처럼 ‘출산율 쇼크’라고도 불리는 현상이 오늘 한국 사회에 큰 위기로 다가오고 있는데 그 이유는 무엇일까?
일과 육아를 병행하기 어려운 환경, 높은 집값과 사교육비 부담 등이 아이 낳기를 꺼리게 하는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결혼 자체가 줄고, 결혼을 늦게 하는 추세도 저출산을 심화시키고 있다. 일각에선 경제가 팍팍해진 게 최근 출산율의 수직 낙하를 불렀다는 분석이 나온다. 2015~16년을 기점으로 경제성장률이 3%대에서 2%대로 내려갔고, 취업자 수 증가폭도 매년 30~40만 명 수준에서 20~30만 명 수준으로 줄었다. 젊은이들이 취업이 힘들고 돈벌이도 쉽지 않다 보니 결혼을 늦추고 출산을 미뤘다는 것이다. 특히 젊은 층이 사회적으로 부담해야 할 재정적인 짐이 너무 크다 보니 아예 결혼을 포기하고, 혼자 사는 비혼주의자가 늘어나고 있다. 혹 부모님의 권유로 결혼해도 자녀들을 출산하려고 하지 않고, 애완동물을 자녀처럼 생각하고 키우는 젊은 커플들이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대부분 젊은이가 결혼하면 부부가 같이 직장 생활을 해야 하는 형편이기 때문에 쉽게 직장을 포기하고 자녀들을 낳아 양육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큰 부담이 되지 않을 수 없다. 많은 회사나 직장이 출산휴가를 주지만 그것은 일시적인 방편이고 상사나 팀의 눈치를 보아야 하는 것이 현실적인 어려움이다. 좋은 직장의 경우 어린이들을 맡아서 탁아를 담당하는 곳도 있지만 직장 대부분은 그러한 혜택을 줄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가정관의 변화를 쉽게 되돌릴 수는 없을 것 같다. 아무리 젊은 부부의 가정에 사회 보장과 자녀 양육에 대한 복지 그리고 주거 시설 등의 편의를 제공한다고 해도 그것이 큰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그러나 깊이 생각해 보면 이러한 외부적, 환경적 조건들이 저출산 현상의 주요한 원인만은 아님을 알 수 있다. 그 근저에는 가족이라는 공동체에 대한 건전한 가치관의 인식 부족이 더욱 심화되고 있고, 더 나아가 가정의 소중함과 자녀 출산이 왜 중요한지에 대한 분명한 철학이 결여되었기 때문이다. 이들이 성장하는 동안 가정에 대한 교육이 부재했고, 막상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발을 내디딘 이후에도 결혼과 자녀 출산 부담에 대한 사회적인 분위기로 인하여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게 되었다. 이혼이 늘어가고 가정의 불화 그리고 실제 가정에서 부모와 자녀와의 올바른 소통을 통한 삶의 질이 떨어지는 것과 같은 현상들이 결혼을 늦게 하고, 늦은 결혼에 자녀를 낳는 것도 부담스러워하는 현상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시 127:3).
개역개정판과 개역한글판 모두 자식은 여호와의 기업이라고 기록했지만 현대인의 성경과 새번역 등 다른 번역본은 “자녀는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기록한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선물을 주시는데 그 선물들 중에서 가장 특별한 선물이 자녀이다. 부모는 자녀를 통해 하나님을 기억하고 감사하며 그 사랑을 누린다는 것이다.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 또한 하나님은 부모에게 자녀를 상으로 주셨다. 부모가 받는 상을 성경은 태의 열매라고 이야기한다. 이것은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따른 일이 잘한 일이라는 의미이다.
“젊은 자의 자식은 장사의 수중의 화살 같으니 이것이 그 전통에 가득한 자는 복되도다”(시 127:4~5).
화살은 고유의 역할이 있다. 첫째는 목표를 향해서 나아가야 한다는 것 그리고 둘째는 용사의 수중에서 떠나간다는 것이다. 결국 부모를 떠나 자신의 소명을 따라 살아가야 한다는 말씀이다. 부모도 용사처럼 화살을 잘 간직하고 부지런히 갈고 닦아서 결국 쏘아 보낸다. 화살은 무기이므로 적진을 향해 쏘아야 한다. 이처럼 우리의 자녀들도 잘 자라서 세상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지금은 어려서 부모의 수중에 있지만 나가서 세상에서 싸워 승리할 수 있도록 자립할 수 있는 힘과 용기를 키워 주어야 하는 것이다.
어린 시절 읽은 안데르센의 동화 ‘완두콩 다섯 알’ 이야기가 생각난다. 완두콩은 제각각 원하는 곳으로 날아갔다. 어느 콩은 더 멀리 날아가고 싶어 했고, 그냥 아무 데나 날아가겠다는 콩도 있었다. 그런데 막내 완두콩은 자기 도움이 필요한 곳으로 날아가기를 소원했다. 마침내 막내 완두콩은 병든 소녀의 창가에 떨어졌다. 그곳에서 싹을 틔우고 꽃을 피워 외로운 소녀에게 희망을 주었고 결국 병상에 누워 있던 소녀를 일으키게 된다.
부모는 완두콩 껍질과도 같다. 자녀들이 품에 있을 때 탱글탱글하도록 양육한다. 영양을 공급하고, 새나 벌레의 공격에서 보호한다. 그리고 이제 때가 되면 잘 익은 콩들을 튕겨 내듯이 세상을 향해 자녀들을 쏘아 보내야 할 시기를 맞이할 것이다. 그런데 지금 품에 있을 때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그런 사명을 가진 완두콩으로 만드는 일이 필요하다. 품에 있을 때 의미 있는 삶을 가르치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우리도 역시 어린 시절 부모님의 화살통에 있는 화살이었다. 그리고 이제는 부모의 곁을 떠난 화살처럼 오늘 우리는 우리의 자리에서 각자의 역할을 다하고 있다. 그러면서 우리의 부모님께서 그러셨던 것처럼 우리도 우리의 화살통 안에 자녀들을 낳고 키워 양육해야 한다.
우리의 자녀들은 장차 세상으로 나아가는 화살이 되어야 한다. 저출산 현상이 더욱 심화되고 있는 2023년의 대한민국의 현실을 바라보면서 시편 127편에서 말씀하는 자녀의 축복과 양육에 대하여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해 보게 된다.
- 주형식 본부교회 담임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