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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쓴맛을 달게 견디는 팔순 집사님의 착한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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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사미디어 등록일 2023.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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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꺼운 대학 노트를 책장에서 한 아름 가져왔다. 시루에서 방금 꺼낸 떡 덩이처럼 탁자에 쌓아 놓은 이들 기록물에는 인생의 양식이 촘촘히 담겨 있다. 이문동교회 김영자 집사가 한 글자씩 꾹꾹 눌러쓴 신구약 성경 말씀이다. 성경 필사를 시작한 것은 10여 년 전 희소병에 걸린 남편을 수발하면서부터다.



병원에서 시작한 성경 필사

“건강하신 분에게 어찌 그런 병이 생겼는지 알 수가 없어요.” 김 집사의 부군 윤병호 장로는 시조사에서 은퇴한 뒤 인근 보건소에서 금주·금연협회 일을 도우며 봉사했다. 대학, 구청, 경찰서에서 금연·금주 강의도 했고 ‘덕분에 술과 담배를 끊었다.’는 인사도 많이 받았다. 그러다가 그에게 병이 찾아왔다. 


2012년부터 윤 장로는 병원에 입원하는 일이 잦아졌다. 오랜 병시중에도 내외는 금실 좋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그런 관계를 지속할 수 있던 기술의 비결은 다름 아닌 성경의 ‘기술(記述)’에 있었다. “병원에 있으면서 성경 필사를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이 큰 책을 다 쓸 수 있을까?’ 싶었는데 ‘못하면 말지.’ 하는 마음으로 아주 우스운 노트에다 글을 적기 시작했어요. 장로님이 이렇게 편찮아도 성경 필사만 하면 그렇게 마음이 편해지더군요.”


윤병호 장로는 입으로 음식을 섭취할 수 없어서 허리에 호스를 달아야 했다. 10년 넘게 수십 번 호스를 교체하면서도 작년 12월까지 손수 차를 몰고 교회에 다녔다. “이런 환자는 다 누워서 산다는데 이 양반은 움직일 힘을 하나님께서 주셨어요. 안식일에는 교회 갔다 오면 편안해하셨지요. 결국은 그 병이 아니라 폐렴으로 호흡을 스스로 못해 돌아가셨지만요.”



우리 식구들 거기 다 있습디까?

지난 3월, 병원을 그렇게 싫어하던 남편이 갑자기 ‘나 병원에 가야겠어.’라고 먼저 입을 열었다. 병원에 가자 “이번에는 내가 살아서 나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라고 말했다. 호스 연결 부위 중 한 곳이 아물지 않아 윤병호 장로는 병원에서 두 달 동안 주사를 맞으며 호흡기를 끼고 지냈다. 남편과 헤어져 막막하고 외로운 시간을 보내면서 김영자 집사는 요한계시록을 써 내려갔고 5월 1일, 마침내 성경 필사를 끝마쳤다.


남편의 임종을 며칠 앞두고 면회하러 갔을 때였다. 아내를 다시 못 보고 죽는 줄 알았던 윤 장로는 ‘아이고 하나님 감사합니다.’라며 반가워했고 기도해 주는 교우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해 달라고 했다. 뒤이어 호주에서 사는 딸 내외가 밤중에 귀국해 곧장 병원을 찾아왔다. “아버지, 은주 왔어요.”라는 말에도 윤 장로는 눈을 뜨지 못하고 손에만 약간 힘을 주었다.


5월 12일, 김영자 집사는 아무 의식이 없는 남편의 손을 꼭 잡고 “돌아가셔도 예수님 재림하시면 부활의 아침에 만나요.”라고 말했다. 윤 장로의 한쪽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그것이 마지막 인사였다. 이튿날 이문동교회는 병원 근처에서 야외예배를 드렸는데 설교 시간에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안식일 낮 12시 34분에 윤병호 장로는 재림의 소망 속에 눈을 감았다.


“돌아가시기 얼마 전에 남편이 꿈을 꿨다고 말했어요.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꿈이요. 그래서 제가 ‘우리 식구들 거기 다 있습디까?’ 물었더니 ‘다 있는데 아들이 앞에서 우리 식구를 다 몰고 가면서 너무나 많은 무리가 구원받았다.’라고 하더래요. 그분의 마지막 꿈이었어요.”



후손에게 물려줄 정신적 유산

김영자 집사가 필사한 성경 노트에는 남다른 부분이 있다. 한글뿐 아니라 영어 성경 본문도 나란히 기록된 것이다. 페이지마다 5대 3대 2 비율로 접어서 세로로 칸을 나누고 왼쪽 칸은 영문, 가운데는 한글, 오른쪽 칸에는 영어 단어를 그 뜻과 함께 적어 놓았다


“며느리가 ‘어머니, 우리 아이들에게 성경을 영어와 한글로 써서 유산으로 남겨 주시면 안 되겠어요?’ 하더라고요. 그건 할 수 있겠다 싶어서 성경 필사를 시작한 거였어요. 말은 못 해도 영어로 쓸 수는 있으니까. 그런데 영어 성경은 지금도 왜 그리 단어가 외워지지 않는지. 그래서 옆에 모르는 단어를 써 놓았어요. 아이들이 보고 좋아하더라고요.” 한국의 아들 가정에 셋, 호주의 딸 가정에 둘 모두 다섯 손녀에게 물려 줄 소중한 신앙 유산이다.


필사하면서 무엇이 가장 기억에 남는지를 물었더니 “믿음의 조상들이 자기 길을 간 뒤에 다 잠들었다는 것”이라고 김영자 집사는 대답했다. “앞으로 마지막 재앙에 일요일 휴업령에 우리가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르잖아요. 사별의 아픔은 클 수밖에 없지만 지금 이후로 주 안에서 잠든 자는 복이 있다는 말씀에서 위로를 얻어요. 살면서 힘이 들 때는 성경을 써 보세요. 말씀을 생각하면 평안이 찾아옵니다.” 


시린 가슴을 안고 사는 세상에서 팔순을 넘긴 노 집사가 소개하는 최고의 선물이다.



​김효준 ​교회지남 편집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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