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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 설정과 관심의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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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사미디어 등록일 2023.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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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삶을 움직이고 있는 원동력 혹은 나의 내면의 바탕에 흐르고 있는 가치관은 무엇일까?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물으면 저마다 다른 대답을 할 것이다. 자신이 꿈꾸는 미래의 소망, 현재 자신의 삶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혹은 과거에 그 중요성을 모르고 잃어버린 것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과 별개로 자신도 모르게 삶의 중심에 다른 것을 놓고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나의 삶의 중심에 무엇이 있는지를 파악하는 것이 자신의 삶의 방향을 설정하는 데 필수적인 과업일 것이다. 


사람은 필연적으로 ‘관계’와 ‘관심’ 사이에서 줄다리기하며 살아간다. 누군가와 관계가 깊어지면 관심 또한 달라진다. 이전에 남남이던 남녀가 연애를 시작하여 결혼하게 되면 바늘과 실의 관계로 발전되어 가는 것이 이러한 이치일 것이다. 관계와 관심에 비례하여 삶의 태도, 재정의 사용, 시간의 할애, 힘의 분배 등 삶의 전반에 걸쳐 변화를 가져오고 그 비중이 결정된다. 



이를테면 성경의 아브라함처럼 오랜 기간 아이를 원하던 부부에게서 아이가 태어나면 이전에 없던 새로운 관계 즉 태어난 아이와의 관계로 인해 그들의 삶은 송두리째 바뀌게 된다. 지금까지는 부부의 재정, 시간, 힘 등이 부부 중심으로 사용되어 왔지만 앞으로는 누가 그 모든 것을 차지할 것인가? 말할 것도 없이 아직 옹알이조차 하지 못하는 그 아이가 홀로 다 차지할 것임을 우리는 모두 안다. 부모의 관심 역시 이 아이에게 집중될 것이다. 관계에 변화가 일면 관심에도 변화가 생기게 마련이다. 



이 공식을 역으로 이용하여 내 관심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현재 내가 누구와 가장 깊은 관계를 맺고 있는지 알 수 있다. 한번은 모 금융 그룹에서 ‘하늘 같은 아버지, 든든함’이라는 제목으로 실험을 진행한 적이 있다. 40개월 미만의 자녀를 둔 젊은 가장들에게 설문 조사를 했는데 실제로는 아버지에 대한 친밀도를 조사한 실험이었다. 먼저 설문 초반에는 자녀에 관한 문항의 답을 쓰도록 요청했다. 답을 써 내려가는 젊은 아빠들은 거침이 없었다. 이후 동일한 질문에 대해 질문 대상만 아버지로 바꾸어 작성하도록 했다. 그러자 자녀를 대상으로 했을 때와는 달리 젊은 가장들은 많은 시간을 보내며 고민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후 아버지의 사전 인터뷰 영상이 흘러나와 평소에 잘 대하지 못했던 아버지에 대한 진정한 사랑을 느끼며 눈물을 흘리는 모습으로 실험은 마친다. 이 실험을 본 사람은 모두가 젊은 가장들의 마음을 누가 차지하고 있는지 단번에 알 수 있다. “네 보물 있는 그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마 6:21). 그 아빠들 마음을 채우고 있는 보물은 바로 아이들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누구와의 관계를 우선시하며 살아가겠는가? 관심을 통해 깊은 관계를 맺고 있는 대상을 찾을 수 있는 것이다.


이 공식을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에 대입해 보자. 먼저 하나님은 누구에게 관심을 갖고 계실까? “너희를 범하는 자는 그의 눈동자를 범하는 것이라”(슥 2:8). 눈동자처럼 우리를 지키고 계시다는 말씀은 하나님의 마음은 우리에 대한 관심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눈동자뿐 아니라 하나님은 우리에 관한 모든 것을 그분의 손에도 새기셨다.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사 49:16). 그렇다면 하나님은 우리와의 관계를 유지하고 회복하기 위해 무엇을 희생하셨는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 5:8). 


전당포에 물건을 잡힌 사람이 그 물건을 되찾을 때는 받은 돈보다 더 많은 웃돈을 내야 되찾을 수 있다. 실제 물건값과는 관계없이 전당포 주인이 가치를 매겨 터무니없이 높은 금액을 요구해도 울며 겨자 먹기로 지불해야 한다. 그런데 전당포에 맡겨 놓은 물건을 되찾아 올 때 쓰는 영어 단어가 있는데 바로 ‘redeem(리딤)’이라는 단어다. 부채를 상환하거나 무언가를 만회할 때 사용하는 단어인데 이 단어가 성경에서는 “구원”이라는 단어로 사용된다. 사탄이라는 전당포 주인에게서 그분의 죽으심으로 우리가 지은 죗값을 치르고 우리를 되찾아 오는 것이 구원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요일 4:10). 하나님은 우리와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음을 증명하셨다. 관계적인 면이나 관심사에서 모두 하나님은 우리를 첫째로 두신다.


이제 우리가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우리 삶의 중심은 무엇이 차지하고 있는지 살펴봐야 하겠다. 필자는 최근 필리핀에 있는 한 작은 마을에 전도회 강사로 다녀왔다. 그곳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장난감을 보고 내 아이를 떠올리며 그 장난감을 사다 주고 싶었다. 시간이 남는 틈을 타 장대비를 뚫고 트라이씨클을 타고 시장에 도착했다. 한참을 묻고 돌아다녀 바가지를 쓴 것을 알면서도 비싼 값을 주고 그 작은 장난감을 구해 왔다. 전도회 강사로 가 있으면서도 내 관심은, 내 관계의 중심은 마땅히 높여야 할 하나님이 아닌 내 아이였다. 우리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신 6:5)지 않는 한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는, 그분과의 관계가 삶에서 최우선이 될 수 없는 죄인임을 발견하게 된다.


말세를 살아가는 백성에게서 나타나는 여러 증상 혹은 징조 중 한 가지는 바로 그들의 마음에 창조주 하나님을 두기보다는 썩어 없어질 피조물을 두기 원한다는 것이다.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롬 1:28). 하나님과 관계를 맺기 위해 시간과 재정과 노력을 투자하는 것을 아까워하는 세대이다. 하나님을 올바른 시간에 올바른 방법으로 경배하고, 그분을 마음에 모시는 것을 우선순위로 두고 사는 삶을 마치 구시대적인 발상인 것처럼 여기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성경은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딤후 3:4)고 있다고 말씀한다. 종교적 모임, 예배 참석보다 더 중요한 일이 많다는 것이다. 예수님의 모본은 분명하다. “안식일에 늘 하시던 대로”(눅 4:16) 교회에 가셨다. 교회에 가지 않는 것이 당연한 것일까?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보다는 쾌락을 좇아가게 만드는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마 24:24)는 사탄의 전략이 우리에게서 성취되고 있는 건 아닐까?


요한계시록 14장의 첫째 천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계 14:7)고 명령한다. 여기서 “두려워”한다는 말은 어렵고 무서워하라는 말이 아닌 숭배심과 경외심을 갖고 하나님을 예배하며, 하나님께 대한 절대적인 충성과 그분의 뜻에 철저히 복종함을 의미한다. 어찌 보면 이 세대와 전혀 맞지 않아 보이는, 자기중심적으로 살아가는 우리에게 매우 혹독한 요구처럼 들린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이를 경배하”(계 14:7)라는 것은 우리를 위한 초청이다. 창조주가 아닌 피조물을 중심에 두고 살라고 우리를 부르신 것이 아니다. 현재의 관계의 설정을 신속히 조정해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의 재정을 사용하고, 시간을 할애하고, 능력을 발휘하는 것이 누구를 위한 것인가? 하나님의 약속은 분명하다. 어떤 어려움, 어떤 환난에도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는 “넉넉히 이”(롬 8:37)긴다는 것이다. 이런 좋으신 창조주 하나님과의 관계가 우리 삶의 중심에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김정유 ​강서교회 담임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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