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성산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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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과 멋이 있는 귤 사랑
초등학교 다닐 적(1980년대 지리산 자락 운봉읍 수~철리 고향) 어머님께서 주홍빛 귤을 한 봉지 건네시며 “너희들 나눠 먹으라.” 함박웃음을 지으며 행복해하셨던 기억이 있다. 귤을 까서 한입 넣었는데 이렇게 상큼 시큼 달콤한 과일이 있다니 너무도 시원한 맛이었다. 5남매가 나눠 먹고 있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시는 어머니 입에 한 조각 넣어 드리고 같이 드시자고 했더니 “아이 시다!” 하시면서 손사래를 치셨다. 제주 서귀포시 성산에 와서 적은 숫자에 사랑 많으신 삼춘(제주에선 손윗분들을 삼춘으로 친근하게 호칭한다.)으로 구성된 성산교회를 섬기게 되었다. 첫해 가을 삼춘(장로님, 집사님)들이 귤을 얼마나 많이 주시는지. 제주도에 오면 육지에 있는 가족들에게 귤을 보내 주는 거라면서 사랑을 풍성히 베풀어 주셨다. 어릴 적 생각에 시골 부모님께 약 두 달 정도 떨어지지 않게 귤을 보내 드렸다. 늦은 가을이면 주홍빛으로 익어 가는 귤 안에 어릴 적 어머니의 사랑과 삼춘들의 따뜻한 인심이 한가득 섞여져 마음을 풍요롭게 하고 행복하게 한다.
성산의 아침
신혼여행 때 와 보고 아내와는 처음으로 제주에 온 것이다. 어느 날 오후, 아내와 함께 가까운 월정리 해수욕장에 갔는데 바당 색깔이 얼마나 고운지. 저녁 하늘에 노을은 얼마나 화려한지. 이런 자연이 너무도 좋아 아침마다 산책을 하기 시작했다. 아침 산책로 성산일출봉 코스, 섭지코지 코스, 말미오름 코스, 대수산봉 코스, 지미오름에서 하도리 해안 코스, 시흥리 해안 코스, 광치기 해안 맨발걷기 코스 일곱 코스 어디에서건 아름다운 일출을 볼 수 있다. 지금껏 오 년여 살면서 단 한 번도 똑같은 그림의 일출을 본 적이 없다. 새벽이면 실시간 유튜브 방송으로 성도들과 새벽 기도를 하고 함께 산책하며 보는 일출의 장면은 저절로 천지를 창조하실 뿐만 아니라 매일 새로운 그림을 선사하는 하나님의 솜씨에 감동하여 절로 찬양을 부르게 한다. 성산에 사는 성도님들은 평생 많이 받아서일까?! 주는 것을 좋아하신다. 97세 부 집사님은 전 재산을 정리하여 기부를 하시고, 90세 된 한 장로님은 오시는 목사님들 손님들에게 밥 사 드리는 것을 좋아하시고, 80세 된 수석장로님의 주머니엔 돈이 오랫동안 견디지를 못한다. 이번에 80~90세로 구성된 10여 명의 성도님들이 30여 년 된 교회를 오는 이들에게 좋은 쉼터가 되게 해 드리자며 큰돈을 들여 새롭게 단장하고 있다. 나누면서 살아가시는 삼춘들의 모습은 늘 밝고 행복해 보인다.
현무암으로 된 담이 정겨운 마을
제주는 바당, 하늘, 숲으로 이루어진 참 아름다운 곳이다. 제주에 푹 빠져서 그렇게 한 일 년 지나자 제주의 사람, 방언, 문화, 마을이 다르게 다가왔다. “바람 부는 제주에는 돌도 많지만 인정 많고 마음씨 고운 아가씨도 많지요 감수광 감수광 나 어떵허렌 감수광 설룬 사람 보낸시메 가거들랑 혼저옵서예.” 고려 가요 ‘가시리’를 현대적 음악, 제주 방언으로 재해석한 것이란다. 교회에서 가까운 오조리는 옛 모습을 많이 간직하고 있는 마을이다. 친구가 찾아왔을 때 아침 일찍 일어나 산책을 나갔다. 마을 올레길로 걸으며 오조리 포구 그리고 식산봉까지 돌아왔다. 제주는 자연도 아름답지만 사람이 살아가는 마을은 얼마나 포근한지. 서로 한 가족처럼 살아간다. 그래서 이들을 괸당(괴다: 특별히 귀여워하고 사랑하다.)이라 한다. 이제 오 년 정도 살았으니 우리도 괸당인가?! 예수님의 사랑 안에 거하면 때로 모양과 결이 달라 티격태격하지만 서로 조화를 이루어 살아가는 모습은 천상 괸당이다. 힘들고 어려울 때는 서로 돕고 의지하며 살아가는 모습이 말이다.
소랑햄수다
성산에 와서 한 이 년은 이색적이면서 아름다운 자연과 사람에 빠져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보낸다. 그러다가 삼 년째엔 사람이 그리워진다. 세월과 함께 정이 깊게 든 사람과의 삶이 그리워진다. 그래서 그런지 제주에선 한 달살이, 일 년살이, 길어지면 이 년 삼 년살이 해 볼까나 하는 말을 자주 듣는다. 관광지라 좋아서 왔다가 그리워서 떠난다. 그리고 추억 찾아 또 찾는다. 그렇게 벌써 성산에 5년째 살고 있는데 제주에 조금씩 빠져드는 것 같다. 가까운 지인이 자신은 12년째 제주에 머물고 있는데 제주에 빠지면 못 떠난단다. 아름다운 자연과 사귀기엔 시간이 걸려도 넓은 바당처럼 듬뿍 사랑을 주며 살아가는 제주 삼춘들 때문이란다. 몇 년만 정을 주고도 매해 가을이면 수첩에 이름 적어 놓고 주홍빛 귤을 사랑과 함께 택배로 보내고야 마음이 평안해지는 이들이니 말이다. 주님께서는 공생애를 마치며 요한복음 13장 34절에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셨다. 제주 방언으로 ‘소랑햄수다’(사랑합니다.)이다. 무뚝뚝한 성산 성도들이 쉽게 꺼내는 말은 아니지만 전하고 싶다. “삼춘 소랑햄수다! 느영 나영(너랑 나랑) 함께 오래 살면 좋겠습니다.”
- 마승용 성산교회 담임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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