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피림의 시대를 살아가며
페이지 정보
본문
중산층의 기준
SNS에서 ‘선진국 각 국가별 중산층의 기준’이라는 글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이 글에서 프랑스 중산층의 기준은 ‘외국어를 하나 정도 할 수 있어야 하고, 직접 즐기는 스포츠가 있어야 하고, 다룰 줄 아는 악기가 있어야 하며, 남들과 다른 맛을 낼 수 있는 요리를 만들 수 있어야 하고, 약자를 돕는 봉사 활동을 꾸준히 해야 하고, 공분에 의연히 참여해야 한다.’였다. 영국의 중산층 기준은 ‘첫째, 페어플레이를 할 것, 둘째, 자신의 주장과 신념을 가질 것, 셋째, 독선적으로 행동하지 말 것, 넷째, 약자를 두둔하고 강자에 대응할 것, 다섯째, 불의, 불평, 불법에 의연히 대처할 것’이라고 한다. 미국 중산층의 기준은 ‘자신의 주장에 떳떳하고, 사회적인 약자를 도와야 하며, 부정과 불법에 저항하며, 테이블 위에 정기적으로 받아 보는 비평지가 놓여 있어야 한다.’라고 한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중산층의 기준은 어떠할까? ‘대출 없이 30평 아파트를 소유하고, 월 급여가 500만 원 이상이고, 2,000cc급 중형차를 소유하고, 은행 예금 잔고 1억 원 이상이고, 1년에 한 차례 이상 해외여행을 하는 사람’이 대한민국 중산층의 기준이라고 한다.
인생을 의미 있게 만드는 것
2021년 11월 미국의 한 리서치센터에서 “무엇이 인생을 가장 의미 있게 만드는가?(What do people value in life?)”라는 주제로 17개국 19,000명의 사람들에게 설문 조사를 하였다. 이 설문 조사의 결과가 당시 한국 사회에서 화제가 되었는데 그 이유는 한국인들의 조사 결과가 매우 특이했기 때문이다. 전 세계적으로 이 질문에 대한 가장 많은 답변은 ‘가족’이었다. 조사 대상 17개국 중 14개국에서 “가족이 나의 인생을 가장 의미 있게 만든다.”는 답변이 1위를 기록하였다. 서구 사회에서 가족이 주는 의미를 다시 한번 확인해 볼 수 있는데 호주, 뉴질랜드, 그리스, 미국 등은 답변자의 50% 이상이 ‘가족’이라고 답할 정도로 ‘가족’은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가족’을 1위로 뽑지 않은 국가가 17개국 중 3개국인데 그중 스페인은 가장 소중한 가치로 ‘건강’과 ‘가정’ 두 가지를 답했으며, 대만은 ‘사회(Society)’를 가장 소중한 가치로 답하였다. 그렇다면 ‘가족’을 가장 소중한 가치로 답변하지 않은 나머지 한 나라는 어디일까? 바로 대한민국이다. 그렇다면 대한민국 국민이 뽑은 가장 소중한 가치는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물질적 안녕(Material Well Being)’ 다시 말해서 ‘돈’이었다. 17개국 중에서 나의 인생을 가장 의미 있게 만드는 것을 ‘돈’이라고 답한 유일한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이었다. 이러한 기사들을 접하면서 오늘날 대한민국 사회가 ‘물질만능주의’가 지배하는 ‘돈’을 가장 큰 가치로 여기며 살아간다는 사실에 착잡한 마음을 숨길 수 없다.
멸망당한 네피림
“당시에 땅에는 네피림이 있었고 그 후에도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에게로 들어와 자식을 낳았으니 그들은 용사라 고대에 명성이 있는 사람들이었더라”(창 6:4).
성경은 하나님께서 세상에 죄가 가득하여 물로 심판하려 하실 때 이 땅에 네피림이라는 존재들이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 네피림이라는 것의 정체가 무엇일까? 성경에는 “네피림”에 대한 언급이 두 군데밖에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네피림이 어떠한 존재인지에 대해서 많은 의견과 주장들이 있어 왔다. 네피림은 성경에서 가장 난해한 해석들 중 하나이다. 어떤 이들은 천사과 인간이 동침하여 난 자녀들이 네피림이라고 주장하였고, 심지어 어떤 학자는 네피림을 외계인이라고 주장하기도 하였다. 노아 시대에 이 땅에 살았던 네피림들은 하나님께서 홍수로 세상을 심판하실 때 모두가 그 심판으로 말미암아 멸망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오랜 세월 후에 이 네피림이라는 말이 성경에 다시 등장한다.
네피림의 후손
“거기서 네피림 후손인 아낙 자손의 거인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이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민 13:33).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에 앞서 정탐꾼들을 보냈는데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온 정탐꾼들이 이렇게 보고하였다. 그런데 잘 생각해 보면 이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이야기이다. 노아 홍수 이전에 지구상에 살았던 이 네피림들은 노아 홍수 때 다 어떻게 되었는가? 노아의 여덟 식구만 홍수 때 생존할 수 있었으므로 네피림들은 다 멸망당하고 말았다. 그런데 어떻게 홍수 이전의 네피림들이 가나안에 존재할 수 있었다는 말인가? 이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다면 정탐꾼들이 보고한 ‘네피림의 후손들’의 정체는 무엇인가? 네피림은 ‘장부’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 단어는 ‘나팔(Napal)’이라는 어근에서 나왔는데 이 말은 육체적인 거인들을 뜻하기보다는 성격이나 지혜 등 다른 면에서 탁월하다는 의미로 이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아래의 글은 네피림에 대한 좋은 정보를 제공한다.
그들의 애정을 선물들을 주신 분에게가 아닌 선물들에만 둠으로써 그것들을 저주로 만들었다. 그들은 금은보석과 상품의 목재를 써서 그들 자신을 위하여 주택을 건축하였고, 그들의 가옥을 가장 공교한 솜씨로 아름답게 꾸미는 데 있어서 다른 사람들을 앞지르려고 노력하였다. 그들은 그들의 교만한 마음의 욕망을 만족시키기만을 추구했으며 쾌락과 사악의 길에 빠졌다”(PP, 90).
어떤 사람들인가?
“신장과 체력이 탁월하고, 지혜가 걸출하고, 가장 정교하고 놀라운 일들을 고안하는 데 재간이 있는 거인들이 많았다. 죄악을 엄격하게 제어하지 않는 데 있어서의 그들의 죄악은 그들의 재간과 정신적 능력에 비례하였다. 하나님께서는 홍수 전에 살았던 이 사람들에게 풍요한 선물을 많이 주셨다. 그러나 그들은 그분의 선물을 자신들을 영화스럽게 하는 데 사용했으며, 결국 이 네피림은 어떤 사람들이라고 이해할 수 있는가? 지혜로운 사람들, 똑똑한 사람들, 명성 있는 사람들 등 이런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성경은 이 네피림이라는 존재를 통해서 진정한 복이 무엇인지를 이야기하고 있다. 진정한 복은 세상의 능력과 돈과 명성과 권력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가인의 후예는 성을 쌓고 도시를 만들고 문명을 이끌었다. 하나님을 떠났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만들어 낸 문화와 문명은 놀라웠고, 그들에게서 인재들이 태어나 용사가 되고, 권력자가 되고, 스타가 되었다. 하나님에게 돌아올 이유가 점점 없어진 것이다. 세상에서 명성을 얻고, 돈을 많이 벌고, 좋은 집에서 편안하게 잘살게 되었다. 모두가 중산층 이상의 부동산과 현금을 소유하게 되었고, 돈과 명성이 그들의 최고의 가치가 되었다. 그런데 그것이 좋은 결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성경은 그러한 이들을 가리켜 “네피림”이라고 알려 주고 있다. 이들 네피림은 시대의 징조를 깨닫지 못하고 오늘을 즐기며 살아가다가 결국 어리석은 결말을 맞게 되었다. 성경은 그때와 마찬가지로 세상의 마지막 때에도 그러한 일들이 일어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네피림의 시대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마 24:37~39).
노아 시대의 네피림들은 홍수가 임하기 전에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갔다. 그들은 홍수의 심판이 닥칠 것을 상상도 하지 못하고 세상을 즐기며 사는 데 급급하였다. 그러한 네피림들은 홍수 이후에도 계속 등장하였다. 가나안 땅에 거주하는 이들은 오히려 노아의 후손들이었다. 그런데 그들이 “네피림”과 같다고 불렀다. 따라서 ‘네피림’은 어떠한 생물학적 유전자를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이 세상을 사랑하고, 재물과 안락함과 명예를 추구하는 유전자, 그 죄성의 유전자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셨고, 우주의 모든 권세와 영광을 가진 분이셨지만 인류의 구원이라는 소중한 가치를 위하여 사람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희생 제물로 자신의 생명을 바치셨다. 이렇게 인류의 구원이라는 소중한 가치를 위하여 자신의 생명을 드렸기에 인류는 구원의 소망을 소유할 수 있게 되었다. 재물과 명성과 힘의 우상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이 네피림의 시대에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소중하게 여기셨던 가치에 대하여 생각하면서 오늘 우리에게는 무엇이 가장 가치 있고 소중한 것인가를 깊이 살펴보았으면 좋겠다.
- 주형식 본부교회 담임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