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라함, 삼손 그리고 느부갓네살의 하나님
페이지 정보
본문
아브라함, 삼손 그리고 느부갓네살의 하나님
우리 모두의 하나님이시다.
남수단에서 개최된 어느 세계 선교 훈련 프로그램의 아침 기도 시간에 나는 전혀 예상치 못한 경험을 했다. 참석자들에게 기도 제목을 묻자 강당 뒤쪽에 있던 한 청년이 손을 들었다. “알샤바브를 위해 기도합시다.”
알샤바브라고? 나는 이 극단주의 단체가 동아프리카에서 발생한 수많은 테러 공격에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며 생각했다.
그러자 또 다른 남성이 손을 들며 “좋아요. 보코하람과 ISIS를 위해서도 기도해요.”라고 덧붙였다.
진심인가? 나는 그것이 아프리카와 세계 여러 지역에 고통은 준 테러 단체로부터 안전을 지켜 달라는 기도라고 생각했다. 그래야 말이 되었다.
잠시 후 나는 지역 세계선교부장 중 한 명인 기도 동역자와 함께 무릎을 꿇었다. 그가 기도하기 시작했다. “주님, 오늘 아침 특별히 알샤바브와 보코하람을 위해 기도합니다. 주님께서 느부갓네살의 하나님이심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주께서 꿈과 비전을 보이시고 그 테러리스트 왕의 마음을 바꾸셨습니다. 느부갓네살에게 하셨듯 오늘날 세상에 존재하는 이 악한 무리의 마음에 역사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그들에게 꿈과 비전을 보여 주옵소서. 주님의 능력을 드러내 주소서.”
그는 단지 테러리스트로부터 보호받기 위해 기도하는 게 아니었다. 그들의 변화를 위해 기도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에게 그러한 믿음으로 기도할 용기를 준 이야기는 바로 하나님과 느부갓네살에 관한 이야기였다(단 1~4장).
테러리스트를 위해 기도한다고?
나는 테러리스트를 위해 기도한다는 그 생각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하나님께서 돌보시고 변화시킨 테러리스트는 느부갓네살만이 아니었다. 시리아 사람 나아만(왕하 5장)도 있었다. 하나님은 나아만을 위해 ‘창의적인 방법’을 사용하셨다. 그분은 한 테러범의 습격으로 잡혀가 나아만의 종이 된 이스라엘의 어린 소녀를 전도자로 활용하셨다. 니느웨 사람들은 또 어떤가?(요나서 참조) 그들의 잔인함과 악행에 대한 기록을 보면 ISIS의 행위는 덜 심해 보인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니느웨 사람들에게 그분을 알 기회를 주시고자 고집과 편견으로 꽉 차 있고 반항적인 선지자 요나와 함께 일하셨다. 요나는 관심 없었지만 하나님은 달랐다. 하나님께서 그 악한 자들에게 얼마나 많은 관심을 쏟으셨는지를 생각해 보면 숙연해진다. 나는 오늘날의 테러리스트들을 위해 기도한다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다. 나도 요나처럼 하나님께서 그들을 구원해 주실 거라고는 전혀 기대하지 않았다. 그들을 위해 기도할 정도로 충분한 관심을 가져 본 적도 없었다.
남수단에서 드린 이 기도 경험은 내 기도에 새로운 초점과 새로운 능력을 불어넣었다. 나아만과 니느웨와 느부갓네살의 하나님이 그들을 돌보시며 그들에게도 자신을 알리고자 하신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서 나는 전 세계 테러리스트들을 위해 정기적으로 기도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이야기는 하나님께 너무 힘든 일은 없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준다. 또 하나님에게는 사람들의 마음에 다가가는 놀라운 방법과 수단들이 있음을 보여 준다.
기독교인으로 성장한 우리는 종종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을 섬기며 기도한다. 이 선조들의 하나님께 기도할 때면 평범한 사람을 부르시고 좋은 때도 힘들 때도 그들을 이끌어 주시는 하나님께 내 믿음이 뿌리내리고 있음을 느낀다. 그분은 용서하시고 인도하신다. 또 불가능한 일도 가능하게 하신다.
기도의 폭을 넓히다
그날 남수단의 경험 이후로 성경에서 하나님과 교류했던 다른 이들의 이야기를 기억하고 적용하자 나의 모든 기도가 확장되고 풍성해졌다. 이 놀라운 이야기들에 등장하는 하나님 안에 기도의 뿌리를 두자 나의 믿음은 측량할 수 없을 정도로 커졌다. 아래에 나열된 이야기들이 그 예다.
불가능해 보이는 상황에 놓였을 때 하나님께서 사라(창 20~21장)와 한나(삼상 1장), 엘리사벳(눅 1장)에게 복 주신 이야기를 유심히 살펴보면 강한 힘이 생긴다.
기드온(삿 6장), 삼손(삿 13~16장), 베드로(요 21:15~19)의 이야기에서는 불완전한 사람들과 함께 일하시며 그들의 결점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복을 내리시는 하나님의 의지가 분명히 드러난다.
모세(출 3장), 이사야(사 6장), 예레미야(렘 1장)를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에 관한 이야기에서는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나의 믿음을 강화하며 부족함을 채운다.
버림받았다고 느낄 때 나는 요셉과 엘리야와 다윗의 하나님을 기억한다.
하나님과 므낫세왕의 믿을 수 없는 이야기(대하 33장)는 하나님께 돌아오면 가장 극악무도한 죄라도 그분은 용서하신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요나의 하나님도 계시고, 야고보와 요한의 하나님도 계신다. 그분은 불완전하고 성급하며 심지어 복수심을 품은 제자들에게도 인내하신다.
막달라 마리아, 삭개오, 나병 환자, 사마리아 여인의 하나님은 사회에서 소외된 자들을 보살피는 하나님이시다.
위에 열거된 이야기들은 시작에 불과하다. 성경에 기록된 수백 가지 이야기는 하나님께서 온갖 상황의 각 인간과 어떻게 협력하셨는지를 보여 준다. 그 이야기들은 믿음을 세우는 풍부한 ‘기도 재료’가 된다. 그것들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께서 과거에 행하셨던 일과 현재와 미래에도 기꺼이 행하실 일을 우리 자신(그리고 하나님)에게 상기시킬 수 있다.
그분은 참으로 아브라함과 삼손과 느부갓네살의 하나님이시며 우리 모두의 하나님이시다.
퍼트리샤 거스틴 미시간주 베리언스프링스에 있는 앤드루스 대학교 세계선교연구소장을 역임하고 은퇴했다.
- 이전글어금니와 음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