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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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할아버지께서 일제 강점기에 관해 들려주셨던 기억이 난다. 할아버지는 강제로 일본어를 배워야 했고 이름까지 바꾸도록 강요받으면서 한국 문화 대부분이 뿌리째 뽑히는 경험을 하셨다. 2등 시민으로 취급받았던 이야기를 하실 때마다 그분에게 여전히 아픔이 서려 있음을 느꼈다.
식민주의의 영향은 우리 조부모 세대의 마음속에 지금도 뚜렷하게 남아 있다. 식민주의자들이 한 국가를 집단적으로 유린하면서 남긴 비극의 감정은 그 골이 깊다.
나는 미국에서 태어났고 식민 통치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난 세대이지만 다른 면에서 여전히 불편을 겪는다. 어느 신학 심포지엄에서 한국 재림교인 학자에게 십 대 시절의 경험을 들은 적이 있다. 그의 어머니는 그가 예언을 공부하기를 바라셨는데 그는 예언을 공부한 뒤 어머니에게 “엄마, 왜 한국은 안 나오죠?”라고 따졌다고 한다. 예언에 언급되지 않은 나머지 세상은 어떻게 된 것인가? 예언에서 ‘개발도상국’과 ‘남반구’는 완전히 배제된 듯하다. 이 해석은 그저 유럽 중심인 듯싶다.
서유럽 열강이 나머지 세계를 식민화했을 때 그들은 기독교도 함께 들여왔다. 그들이 성경에 대한 유럽 중심적 해석을 함께 도입했을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 예를 들어 다니엘 2, 7~8장의 전통적인 예언 해석에는 그리스, 로마, 서유럽 국가들이 포함된다. 그 외의 세계는 바벨론, 메대-페르시아를 빼면 완전히 배제됐다. 과거의 유럽 중심적 사고방식이 해석학적 전제로 작용했기 때문은 아닐까? 다니엘서에 대한 우리의 해석은 식민주의의 잔재에 불과한 것일까?
식민 통치를 경험한 사람의 성경 해석학
이 질문에 답을 시도하기 전에 나는 성경을 믿는 그리스도인으로서 다니엘서가 식민주의 문제와 맺고 있는 관계의 중요성을 간과할 수 없다. 다니엘 자신도 식민 체제의 희생자였다. 그는 포로로 잡혀갔고 이름도 바뀌었다. 그는 거세당했고 그의 문화는 체계적으로 근절되었다. 더구나 로마 제국의 식민 통치하에 계시던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24장 15절에서 말세에 다니엘서를 읽고 연구하라고 당부하시면서 다니엘서를 책으로 인정하셨다. 예수님과 다니엘 모두 식민주의를 알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들에게 이것은 단순히 역사적인 참고 사항이 아니라 현실의 일부였다.
다니엘서는 식민주의를 옹호하는 것이 아니라 부인하고 있다는 것이 나의 주장이다.
다니엘서는 언급된 권력에 대한 다니엘의 해석 체계를 부정하지 않는다. 다니엘 2장 38절에서 식민 정책의 피지배자인 다니엘은 신상의 금 머리가 바벨론을 상징한다고 해석한다. 다니엘 2장과 7~8장의 틀은 같다. 다니엘 2장이 그 기초라면 다니엘 7장은 같은 주제에 대해 더 자세한 내용을 담고 있으며, 다니엘 8장은 반복·확대하고 있다. 따라서 다니엘 2, 7~8장에 나타난 강대국들의 출발점은 바벨론이다.
식민 지배를 받았던 당사자 다니엘이 다니엘 2, 7~8장 이상의 출발점이 바벨론이며 메대-페르시아(단 6장; 8:20), 그리스(단 8:21)로 이어진다고 해석한 것으로 미루어 그의 해석 체계는 다른 나라를 예속하고 식민지화하는 지정학적 권력의 역사 기록을 따랐음을 분명히 한다. 이것은 식민주의 옹호와 거리가 멀다. 다니엘서는 역사적인 사실 전개를 예언해 놓았을 뿐이다.
신약 성경으로 가면 누가복음 2장 1절에 메대-페르시아를 뒤따르는 세력에 대한 기록이있다.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가 칙령을 내려 “온 세상이 조세 등록을 하게” 했다(눅 2:1, 킹흠정). 세금을 부과한다는 것은 세상을 다스리고 있다는 뜻이다. 예수님의 출생지를 결정한 이 사건은 예수님이 로마 제국의 식민 지배를 받고 있는 나라에서 태어났다는 뼈아픈 증거였다. 다니엘은 이 권세가 “모든 것을 산산조각” 낼 것이라고 말한다(단 2:40, 킹흠정).
식민지 시대에 살았던 다니엘의 성경 해석학은 바벨론, 메대-페르시아, 그리스, 로마의 식민 세력을 놀랍게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거기서 끝나지 않고, 다니엘 7장은 신약 성경이 서유럽의 10개 왕국으로 분열된다고 묘사한다. 즉 식민주의는 계속될 것이다. 그러나 식민지화하는 세력이 단지 하나의 세력이 아니라 서유럽의 여러 세력이 될 것을 예언했다.
칠레, 콜롬비아, 파나마, 페루의 공식 언어가 에스파냐어인 이유는 무엇일까? 브라질과 모잠비크의 공식 언어가 포르투갈어인 이유는 무엇일까? 가봉, 과들루프, 말리, 마르티니크의 공용어는 왜 프랑스어인가? 그리고 가나, 감비아, 나미비아, 잠비아의 공용어가 영어인 이유는 무엇일까? 답은 간단하다. 서유럽이 세계를 식민지화한 것이다.
은혜의 기적
다니엘서의 예언은 바벨론에서 시작하여 서유럽 식민화로 끝나는 세계의 식민화를 부정할 수 없도록 정확히 묘사한다. 이것은 유럽 중심의 해석학이 아니라 식민지화의 참화를 실시간으로 경험하고 있는 한 남자의 해석학이다. 다니엘서 예언은 역사관을 담고 있는 게 아니라 서술하고 있을 뿐이다.
그걸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이후에 등장하는 나라가 인간의 식민 체계를 완전히 끝낼 것이기 때문이다. “이 열왕의 때에 하늘의 하나님이 한 나라를 세우시리니 이것은 영원히 망하지도 아니할 것이요 그 국권이 다른 백성에게로 돌아가지도 아니할 것이요 도리어 이 모든 나라를 쳐서 멸하고 영원히 설 것이라”(단 2:44). 하나님의 나라는 식민 통치를 영원히 끝낼 것이다. 이것이 식민 통치를 경험한 사람인 다니엘의 성경 해석학이다.
새 왕국에서 생명나무의 잎사귀는 “만국을 소성”(계 22:2)하기 위해 있다. 즉 치유해야 할 국가적 상처가 있음을 새 왕국의 지도자가 알고 있다는 것이다. 생명나무는 영혼의 개인적인 치유의 근원일 뿐 아니라 모든 나라와 족속과 방언과 민족의 집단적 치유의 장소가 된다. 새 왕국에서는 하나님이 우리의 집단적·국가적 트라우마의 치료자이시므로 짐바브웨가 영국과 함께, 브라질이 포르투갈과 한국이 일본과 유대인이 독일인과 함께 예배할 수 있다.
다니엘서는 식민주의를 지지하는 것이 아니라 부인하는 성경이다. 그러나 식민 철학을 거부한 탓에 다니엘은 독특한 길을 걷게 되었다. 다니엘 4장에서 그는 압제자를 위해 꿈을 해석하는 임무를 받았다. 느부갓네살은 다니엘을 부모와 떨어뜨리고 쇠사슬에 묶어 바빌론까지 사막을 가로질러 1,600km를 행군시킨 사람이다. 아마도 그의 부모는 그의 앞에서 잔인한 대량 학살로 희생됐을 것이다.
다니엘은 신체적·심리적·정서적 학대의 피해자였다. 그의 유다 문화는 바빌로니아 문화로 대체되었고 그의 정체성은 체계적으로 해체됐다. 그의 도시는 폐허로 변했고 사랑하는 성전은 파괴됐다. 다니엘에게 느부갓네살은 유대인에게 있어 히틀러와 같았을 것이다. 느부갓네살은 전형적인 식민지 개척자이자 정복자이자 폭군이었다.
다니엘이 자기 백성을 염려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삶의 중심을 두었다. 하루 세 번씩 예루살렘의 회복을 위해 기도했다. 굵은 베옷을 입고 재를 뒤집어쓰고 하나님께 자기 백성이 회복되어 포로 상태에서 벗어나게 해 달라고 간구했다(단 9장). 다니엘은 미래에 관한 이해할 수 없는 환상을 보고 기절했고 먹지도 못했다(단 8:27). 식민지화의 영향은 그의 정서적 정신과 경험의 깊은 부분이 되었다. 다니엘이 식민지화를 싫어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다니엘이 자기 백성의 정복자를 미워했는가? 그는 압제자와 어떤 관계를 맺었는가?
다니엘 4장에서 느부갓네살에게 또 다른 꿈이 주어진다. 자신의 죽음을 예고하는 꿈이었다. 왕이 회개하지 않으면 정신을 잃고 7년 동안 짐승이 될 것이었다. 정의, 설욕, 보복. 느부갓네살왕이 받아 마땅한 일이었다. 마침내 왕은 자신에게 닥칠 일을 겪게 될 것이었다.
다니엘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다니엘은 왕에게 경고의 꿈을 해석해 준 뒤 그의 영혼을 위해 호소한다(단 4:27). 다니엘은 분명 압제자의 구원에 깊은 관심을 기울였다.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식민주의를 거부하는 다니엘이 어떻게 자기 민족을 유린한 당사자를 사랑할 수 있단 말인가? 이것은 은혜의 기적이다. 우리에게 절실한 식민지 트라우마의 치유를 위해 굳이 새 땅을 기다릴 필요가 없다. 우리는 지금 그 치유를 받을 수 있다. 다니엘의 마음을 치유하신 하나님은 오늘 내 마음도 치유하실 수 있다. 하나님은 마음의 위대한 치료자이시다. 하나님의 치유로 우리는 민족적 원한을 초월하고, 그것을 은혜로 가득한 영혼 구원의 역사로 바꿀 수 있다.
다니엘서에는 다니엘이 기록하지 않은 장이 하나 있다. 그 장은 식민 통치자가 기록했다(단 4장). 엘렌 화잇은 느부갓네살이 “철저히 회심”하였으므로 하늘에 있을 것이라고 암시한다.*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이다. 이것이 식민지 인간의 성경 해석학이다.
*엘렌 G. 화잇, 『애드벤티스트 리뷰 앤드 사바스 헤럴드』, 1906년 1월 11일
데이비드 신 목회학 박사이자 강연가, 교육가, 행정가이다. 앤드루스 신학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연구하며 그 진리와 원칙을 힘써 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