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가 셋인 빨간 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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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세 목사는 아내 루시 사모의 부탁이라면 무엇이든 들어주는 사람이었다. 대부분은 그랬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부탁을 들어주지 않자 루시 사모가 호세 목사를 앉히고 최후통첩을 하기에 이르렀다. 선택의 여지가 없고 미룰 수도 없었다. 메릴랜드주에서 사택으로 사회복지사를 보내 옷장이며 문까지 하나도 빠짐없이 점검할 예정이었다. 위탁 아동들이 지내기에 목사의 가정이 적합한 곳인지 확인하러 오기로 한 것이다.
“수도꼭지, 냉장고 안도 살피고, 침대 밑까지 청소했는지 확인하실 거예요.” 루시가 호세 목사에게 말했다. “지하실로 내려가는 문도 확인할 텐데 걸쇠가 고장 났잖아요. 고쳐 달라고 한 지가 벌써 몇 개월이에요. 화요일 오후면 사회복지사가 올 테니 오전에는 문을 고쳐야 해요.”
시간을 맞추기가 너무 힘들었다.
뒤바뀐 계획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 자원봉사 사무국장인 호세 로하스 목사는 전 세계에 10만여 자원봉사자 파송을 도왔다. 그 덕분은 호세 목사는 뉴욕 유엔 본부에서 화요일 오전에 개최하는 유엔 ‘자원봉사의 해’ 기념 행사에 초청을 받았다.
그런데 루시 사모는 집에서 지하실 문을 고쳐야 한다고 ‘요구’하는 것이다.
목사는 이미 주도면밀하게 계획을 세워 놓았다. 기차를 타고 볼티모어에서 뉴욕으로 가서 세계무역센터 꼭대기의 ‘윈도스 온 더 월드’ 레스토랑에서 천천히 아침 식사를 즐길 생각이었다. 오래전부터 이 쌍둥이 빌딩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해 보고 싶었는데 기회가 온 것이다. 도시 꼭대기에서 창문을 통해 아침이 밝아 오는 모습을 지켜본 뒤 택시를 타고 유엔 본부로 가서 행사에 참석하면 된다.
‘문짝 수리’는 호세 목사의 화요일 계획에 없던 일정이었다.
두 사람은 이 문제로 실랑이를 벌였다. 호세 목사는 행사 참석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설명했다. 루시 사모는 목사가 철물점에 가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상기시켰다. 호세는 우선 문을 고치지 못한 것에 대해 사과했다. 하지만 교회를 대표해서 행사에 꼭 참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루시 사모도 목사의 사과를 받아들였지만 그가 집에 남아서 문을 고쳐야 한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다.
결혼 이후 최고의 다툼이었다. 아내가 그렇게 명확하게 요구한 적은 아마 처음이었을 것이다. 결국 호세 목사는 어쨌든 문을 고치는 일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결론지었다.
목사는 집에 남았다.
윈도스 온 더 월드 식당에서 아침을 먹는 대신 메릴랜드의 자기 집 부엌 식탁에서 루시 사모와 아침을 먹으며 뉴스를 시청했다.
그날이 바로 2001년 9월 11일이었다. 아침 뉴스를 보면서 호세 목사와 사모의 마음에 공포와 감사의 두 감정이 북받쳤다. 유나이티드 167편 제트 여객기가 세계무역센터 북부 타워의 레스토랑 바로 밑으로 충돌하여 화염이 솟는 모습을 바라보며 부부는 어안이 벙벙했다. 두 사람에게 이날은 훨씬 더 의미심장한 날이 되었다. 또 다른 비행기 한 대가 세계무역센터 남부 타워로 날아와 두 건물이 무너지면서 식당에 있는 모든 사람뿐 아니라 수천 명이 죽는 모습도 보았다.
“당신이 내 생명을 구했소.” 호세 목사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유일한 말이었다. 두 사람은 부엌에서 눈물을 머금고 서로를 부둥켜안았다. 전화가 여기저기서 걸려 왔고 기도가 이어졌다. 뉴스가 끊임없이 쏟아지는 와중에 가족 기도 모임이 이어졌다. 물론 지하실 문을 고치는 일도 진행됐다.
워싱턴 D.C.에서 세계 교회를 위해 일하는 동안 호세 목사는 세 미국 대통령의 국내 정책 자문 자원봉사자로 일했다. 그의 통찰력은 민주당원과 공화당원 모두에게 높이 평가받았고 지금도 그는 백악관의 작은 사무실에서 국내 정책 문제를 다루며 오후 시간을 보낼 때가 많다.
수요일 아침, 재림교회 지역사회봉사부장인 권성 박사가 호세 목사에게 함께 뉴욕으로 가서 위기에 처한 도시를 섬기는 일을 도와달라고 요청했다. 그들이 떠날 준비를 하고 있을 때 북동부합회와 그레이터뉴욕합회가 타워에서 실종된 이들의 가족을 방문하고 사역할 지원 목회자 50여 명을 확보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기관목회사역부 부부장인 마티 펠드부시 목사도 동행했다.
뉴욕에서 펠드부시 목사는 즉시 목회자들을 만나 공식 적십자 위기 상담 자격증을 취득하도록 훈련시켰다. 목사들은 곧 타워의 비극으로 피해를 입은 가족들을 지원하기 위해 도시 전역으로 흩어졌다. 합회 지도자들과 합동 모임을 마친 뒤 권 목사와 로하스 목사는 소그룹을 맨해튼의 ‘그라운드 제로’로 안내했다.
‘그라운드 제로'는 잔해와 유독성 먼지가 잔뜩 쌓인 거대한 더미를 이루고 있었다. 응급구조원 수백 명이 잔해 더미를 뚫고 생존자의 흔적을 필사적으로 찾고 있었다. 재난은 미국 전역 수천만 명의 마음에 깊은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여기저기서 많은 사람이 도움을 주고자 하여 ‘그라운드 제로’의 안전 문제가 대두되는 상황이었다. 일부는 수색 및 구조 분야에서 고도의 훈련을 받은 사람들이었고 경찰, 의사, 간호사, 크레인 운전사들도 있었다. 정치인들도 함께했다.
“우리는 생수, 간식, 과일, 식사, 주스 그리고 울 수 있는 공간을 갖춘 지원 본부를 마련했습니다.”라고 호세 목사는 회상했다. “고단백 식사를 후원하는 레스토랑이 특히 마음에 들었지만 가장 중요한 자원봉사자는 누군가가 울 수 있는 어깨를 제공하는 사람들이었다고 생각해요. 최초 구조대원과 수색자들은 잔해 더미 속에서 생존자를 한 사람도 발견하지 못했어요. 소방관들은 여러 시간 ‘더미 속에서’ 일한 뒤 물 한 병을 가지러 와서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사람의 품에 안겨 주체할 수 없이 흐느끼기 시작했지요. 이해해 주는 사람, 들어 주는 사람, 같이 울어 주는 사람의 품이 절실한 때였습니다.”
일하는 사람 모두 건물에서 여전히 피어오르는 유독성 먼지를 들이마시고 있었다. 석면, 탄소, 콘크리트, 석고, 불에 탄 플라스틱이 연기가 두꺼운 구름이 되어 목에 경련을 일으켰고 눈은 타는 듯했다.
“길 건너편에 은행이 있었고 그곳 지하실이 ‘영안실’ 역할을 하고 있었어요.” 호세 목사는 그 장소를 설명하면서 눈물을 훔쳤다. “수색 중 온전한 몸을 찾기는 어려웠어요. 대부분은 몸이 훼손되거나 불에 탔고, 구조대원들은 신체 일부만 가져오는 경우도 많았어요. 끔찍한 시간이었어요.”
그 잔해 더미 속에서 소방관들은 ‘탑 오브 더 월드’ 선물 가게의 기념품인 작고 빨간 곰 인형을 발견했다. 이후 두 개가 더 발견됐다. 이 작은 곰들은 그라운드 제로에서 희망의 상징이 되었다. 그 후 호세 목사가 네 번째 곰을 발견했는데 이 곰은 다리가 세 개밖에 없었다. 폭발로 한쪽 다리가 잘려 나간 것이다.
하나는 현재 워싱턴 D.C.의 스미소니언 박물관에 있고, 둘은 다른 9·11 테러 기념관에 있다. 다리가 절단된 네 번째 곰은 하나님께서 매일 우리 삶 가운데에서 어떻게 일하시는지를 끊임없이 상기시켜 준다.
“다리가 세 개인 그 작은 곰 있잖아요.” 루시 사모가 말했다. “그 곰을 생각하면 항상 눈물이 나요. 그리고 2001년 9월 11일에 호세 목사를 집에 머물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려요.”
딕 더크슨 목사이자 이야기꾼으로 미국 오리건주 포틀랜드에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