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하는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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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하는 손
저스틴 김
뒤러 씨의 집에는 자식이 16명이었는데 그중 두 아들은 미술 공부를 더 하고 싶었다. 하지만 가난한 금 세공사인 아버지에게 자식을 뒷바라지할 돈이 있을 리가 없었다. 그래서 동전 던지기를 해서 한 명은 미술 학교에 진학하고 다른 한 명은 광산에서 일하기로 했다. 그런 다음 한 명이 공부를 마치면 역할을 바꾸기로 했다.
동전 던지기를 해서 이긴 사람이 바로 알브레히트 뒤러였고 그는 뉘른베르크에 가서 4년간 미술을 공부했다. 그 사이 동생 알베르트가 광산에서 일하며 학비를 댔다. 훗날 화가로 유명해진 알브레히트가 집으로 돌아오자 집안과 마을에서 환영 잔치를 열었다. 바로 그때 알브레히트는 동생의 꿈도 이루어 주기 위해 역할을 바꾸어 주려 했다. 이제 자신은 광산으로 갈 테니 동생에게 학교로 가라고 했다.
잠시 침묵이 흐른 후 알베르트가 알브레히트의 제안을 거절했다. 그러면서 눈물을 흘리며 두 손을 들어 올렸다. 보아하니 광산에서 일하면서 관절염으로 손가락이 망가져 예전처럼 그림을 잘 그릴 수가 없게 되어 버린 듯했다. 알베르트는 형의 성공을 기뻐하며 유명해진 형을 통해 대리 만족하며 살았다. 알브레히트는 동생의 이타심과 희생을 기리고자 동생 손을 모델로 삼아 ‘기도하는 손’이라는 제목의 스케치를 그렸는데 오늘날 잘 알려진 이 작품은 현재 오스트리아 빈에 보관되어 있다. 이 그림을 잘 모른다 해도 보고 나면 어디선가 본 적이 있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집이나 사무실에 복제본이 걸려 있거나 기독교 서점에서 파는 기념품에 이 그림이 찍혀 있는 경우도 많다.
일화의 세부 사항이 사실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이 기도하는 손은 기독교 기념품 그 이상으로 상실과 자기희생, 너그러운 형제애를 상징한다. 순종이 희생보다 낫다고 성경에 나오지 않았냐고 반문할 수 있다(삼상 15:22). 그런데 이 말씀의 요지는 진심으로 희생하며 순종하는 것이 불순종하며 희생하는 척하는 것보다 낫다는 데 있다. 다시 말해 다른 사람을 위해 희생하는 죽음 심지어 십자가에서의 죽음은 바로 예수님의 겸양과 순종에서 비롯했다(빌 2:8).
이러한 정신을 기도하는 손 모양으로 얼마나 완벽하게 표현했는가! 하나님 나라에서 유통되는 화폐는 바로 희생이다. 겉으로 그리스도인인 척하는 사람과 참된 그리스도인을 구별하는 것이 바로 희생이다. 재림 운동의 시작점도 바로 희생이고 재림 운동의 끝점도 바로 희생이다.
가족을 위해 젊음을 희생하든 조직을 위해 재산을 희생하든 해외 선교를 위해 인생 전성기를 희생하든 복음을 위해 있는 힘을 다 희생하든 우리 교회의 재림 운동을 위해 목숨을 희생하든지 간에 우리는 지금 우리를 위해 두 손 모아 기도하고 계신 하나님의 아들을 본받고, 따라 하고, 그분께 영광을 돌리며 제자로서 이 일을 한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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