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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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년월호 2024년 3월호 예언의 신 알아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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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7장 21절에서 예수님은 신자들 간의 연합을 위해 기도하셨다.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요한복음 17장 21절에서 예수님은 신자들 간의 연합을 위해 기도하셨다. 


예언의 선물이 교회의 연합 즉 교인들뿐 아니라 교회 기관들 사이의 연합을 장려하는 역할을 했던 사례를 엘렌 화잇의 저술에서 많이 볼 수 있다. 잘 알려지지 않은 한 예가 1899년 엘렌 화잇이 우리의 주요 출판사 여섯 곳의 책임자들에게 쓴 증언에 포함되어 있다. 화잇은 9쪽 분량의 편지를 다음의 말로 시작했다. 

“나는 우리 출판사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경쟁의 정신에 대해 경고받았다. 그런 정신은 우리의 가장 오래된 출판사들 사이에서 가장 많이 나타나고 있지만 어느 곳에서나 동일한 정신이 활동하고 있다. 어디든 그 정신이 나타나는 곳을 하나님은 불쾌히 여기신다. 그냥 두면 그 정신은 점점 커지고 강해질 것이며 결국 선교 정신은 사라질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의 성령은 슬퍼하시며 하나님의 은혜를 간직한 사람들을 돌보고 동역하도록 보냄 받은 천사들은 그 기관과 일꾼들을 떠날 것이다.”1

우리 출판사의 지도자들이 어쩌다 그런 신랄한 증언을 받게 되었을까? 적어도 한 경우에서 우리는 그 답을 알고 있다. 다음은 헨리 프란츠 슈베르트가 전한 증언이다.2 


딱 맞은 시간에

헨리는 1868년 독일에서 태어나 미국으로 이민했고 20대 초반에 캘리포니아의 오클랜드대회에서 성경 교사와 문서 전도자로 일하기 시작했다. 1889년 생애 첫 야영회에서 그는 도시 선교 책임자였던 너새니얼 매클루어 목사의 소개로 엘렌 화잇을 만났다. 화잇 여사는 그에게 “도와주실 수 있다면 제가 오클랜드에서 머무는 동안 한 자매가 제게 빌려준 말과 마차를 돌봐 주시겠습니까?”라고 요청했다. 헨리는 기쁜 마음으로 그렇게 하겠다고 했고 종종 그녀의 방문과 그녀가 부탁하는 심부름을 하러 마차를 몰았다. 

언제나 그렇듯 화잇은 이 청년의 미래에 관심을 표했다. 화잇은 배틀크리크 대학에서 곧 운영할 독일어 학부에 다닐 것인지를 물었다. 헨리는 그럴 가능성이 있는지 기도하고 있다고 대답했지만 그는 필요한 자금이 부족했다. 그의 아버지는 헨리가 재림교인들과 함께하는 동안 어떤 재정적인 도움도 주지 않았다.

엘렌 화잇은 “그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당신을 보살피고 배틀크리크로 데려가겠습니다.”라고 대답했다. 화잇은 거기서 대총회 총회에 참석하러 갔고, 학교가 시작하려면 3주가 더 있어야 해서 헨리는 화잇 여사의 집으로 초대를 받았다. 그는 총회 주간의 경험을 통해 “결코 잊을 수 없는 생생하고 깊은 감동을 받았다.”라고 적었다.

엘렌 화잇이 1899년 출판사 지도자들에게 보낸 증언으로 돌아가 보자. 자신의 학업을 마치고 헨리는 당시 네브래스카의 유니언 대학교에서 가르치다가 1894년에 독일로 돌아가 달라는 요청을 받아 독일 함부르크에 새로 개교한 15세 이상의 학생들을 가르치는 학교로 향했다. 그는 또한 L. R. 콘라디 목사와 함께 함부르크 출판사를 책임지게 되었다. 다음은 헨리가 직접 쓴 글이다. 

“그 기관[출판사]의 직원들과 약간의 어려움이 있었다. 그것은 근무를 마친 후에 도시에서 선교 사업을 행하려는 계획과 관련이 있었다. 나는 확실한 계획을 가지고 일을 수행했고 그 일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런데 특히 한 형제가 그 제안을 거부했고 다른 사람들이 그에게 동조했다. 분열의 정신이 우리 모임에 들어왔고 나를 아주 힘들게 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어느 일요일, 나는 다른 직원들에게 특별 회의를 하려고 하니 월요일 저녁 채플에 와 달라고 요청했다. 나는 어떻게든지 이 어려움을 조정해야만 한다고 느꼈다. 월요일 아침, 나는 내 책상으로 갔다. 한쪽 모퉁이에 ‘엘렌 G. 화잇’이라고 찍힌 호주 우표가 붙은 편지 하나가 있었다. 나는 그 편지를 개봉했다. 그 편지에는 우리 출판사를 어렵게 한 바로 그 문제를 해결할 화잇 여사의 메시지가 있었다. 

그날 밤 모임에서 직원들에게 ‘제가 이 모임을 요청한 때가 언제였지요?’라고 물었다. 그들은 ‘어제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렇군요. 오늘 아침 저는 호주에 있는 화잇 여사에게 편지로 이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그것은 제가 여러분에게 말하고자 하는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라고 나는 말했다.

나는 그들에게 그 증언을 읽어 주었다. 그런 다음 주어진 권면과 나 자신의 관계에 대해 말했다. 어려움을 일으켰던 한 형제가 곧바로 일어나서 훌륭한 그리스도인 태도를 취했다. 다른 사람들도 연이어 그렇게 했고, 주께서는 모든 곤경에서 벗어나도록 우리를 도우셨다.

내가 화잇 여사와 아주 친하기 때문에 호주에 있는 그에게 내가 편지를 썼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 당시 함부르크에서 호주로 편지가 배달되는 데는 약 6주가 걸렸다. 그리고 그 모든 어려운 일은 바로 3주 전에 일어났다. 따라서 화잇 여사가 보낸 메시지는 함부르크에서 그 힘든 일이 벌어지기 약 3주 전에 출발해서 내가 도움이 필요한 바로 그날 아침에 딱 맞춰 도착한 것이다.”

헨리는 즉시 엘렌 화잇의 아들 W. C. 화잇에게 시의적절한 권면에 대해 감사를 표현하는 편지를 썼다. 

“친애하는 형제에게. 저는 우리 직원들과 모임에서 읽을 만한 증언을 찾으려 했던 바로 그날 아침 9월 25일에 당신의 편지와 [화잇 여사로부터 온] 증언을 받았습니다. 저는 주님께 도움을 구하기 위해 모임 시간을 바로 그날 저녁으로 정했었습니다. 그런데 그 증언은 딱 필요한 시간에 도착했고 모든 선을 이루었습니다. 우리 모두는 그 메시지를 우리가 필요로 했던 바로 그것이라고 인정했으며, 우리는 바른 빛 안에서 우리 자신을 볼 수 있었고, 잘못을 고백하고 용서를 받을 수 있었음에 감사했습니다.”3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엡 4:13).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계 22:20).


1 Ellen G. White, Lt 148, 1899 (Sept. 24)

2 H. F. Schuberth, “My Confidence in the Spirit of Prophecy,” Review and Herald, June 1, 1939, 15

3 H. F. Schuberth to W. C. White, Nov. 8, 1899


팀 포이리어 엘렌 G. 화잇 유산관리소 부소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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